한국 전문가 “대내외 정세 반영한 새로운 통일방안 마련해야”

0:00 / 0:00

앵커: 기존 한국 정부의 통일구상이었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대신 대내외 정세를 반영한 새로운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주최로 19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왜 자유민주주의인가’ 학술회의.

발표에 나선 오경섭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한국 정부가 대내외 정세 변화에 맞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정ㆍ보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94년 8월 15일 김영삼 정부 때 재개정된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자주ㆍ평화ㆍ민주 원칙 아래 남북 화해ㆍ협력 단계,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의 통일국가 완성을 추진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습니다.

오 실장은 먼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명칭을 ‘자유와 평화번영의 한반도통일방안’으로 수정하고 북한 주민의 자유선거에 기초한 민주 정부 수립,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기반한 남북 단일국가 건설을 위한 정책 방안을 담을 것을 제언했습니다.

또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이른바 ‘단일민족기반 통일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생각이 약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정체성은 통일의 당위성을 강력하게 제공한다며 민족적 정체성 회복을 통일의 목표로 설정할 것을 제시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8월 17일 발표한 2023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29.8%로 2007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높았고 특히 20대(19~29세)의 경우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 비중이 41.5%로 다른 세대에 비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 컸습니다.

오 실장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제안하는 점진적ㆍ단계적 통일은 실현되기 어렵다고 진단했고 통일 이후 헌정질서는 1체제 1정부의 단일국가, 대통령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북 통일과정에서 예상되는 다양한 시행착오와 혼란을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제도를 실험하는 대신 한국 정부에 익숙한 정부 형태와 권력구조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오 실장의 주장입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특히 중요한 것은 단일국가를 이룩해야 된다는 것과 대통령 중심제를 실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연방제를 갖고 통일한국을 운영해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정치적 비용을 부과하는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에 나선 탈북민 출신의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북한인권센터장은 “한국이 통일에 대해 주저하면 북한에 의해 통일을 당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는 미국과 핵 치킨게임을 끝까지 진행하고 이기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고 “이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북한인권센터장:끝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해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겠다는 것은 핵 치킨게임을 하겠다는 겁니다. 다른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이 길밖에 없다며 그 길로 가는 겁니다. 끝까지. 그건 뭐냐. 통일하겠다는 것이죠. 이제 극복과 변화의 패러다임으로 대북 정책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김 센터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북한 주민들을 속박ㆍ통제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통일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급작스럽게 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또다른 토론자인 박형중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한국이 통일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려면 상대적 국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높은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국제적으로도 자유평화 질서가 확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석좌연구위원은 특히 미국적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만 한국이 주도하는 자유평화와 남북통일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에서 승리하거나 중국이 대만을 수중에 넣게 될 경우 북한이 통일할 기회를 갖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남과 북의 1대1 게임이 아니라 두 개의 국제질서 간 게임인 것이고 우리가 속한 진영이 승리하면 말 그대로 자유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속하지 않은 진영이 승리하게 되면 그때는 아마 북한이 한국을 통일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한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21일 한국 통일부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성찰과 대안 모색’ 학술회의에서 “통일방안의 형성 시기와는 달리 북한의 핵 문제가 심각해져 남북 간 군사안보 대립이 심각하다”며 “북핵 문제 협상안과 통일 방안이 유리된 채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취임 전인 2018년에 쓴 책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통일한국의 정치체제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에디터 목용재,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