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은 지난해 북한에서 55개 상자에 담겨 미국으로 송환된 미군 유해 중 2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22일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이날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알링턴국립묘지에서는 신원이 확인된 한 미군 유해 안장식이 거행됐습니다. 이상민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22일 오전 미 육군 군악대의 연주 속에서 고 윌리엄 후버 존스(William Hoover Jones) 일병의 유해를 담은 관이 6마리의 흑마가 옮겨운 운구 마차에서 내려졌습니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에 덮인 관은 정복을 입은 8명의 미군들에 의해 옮겨져 존스 일병의 친누나 3명과 그 가족들이 모인 자리 앞에 놓였습니다.
미 육군 25사단 소속이었던 존스 일병은 1950년 11월 당시 19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중공군과 전투 중 실종됐습니다.
존스 일병의 첫째 누나인 엘리자베스 오흐리(Elizabeth Ohree. 95) 씨는 2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존스 일병을 첫 이름인 ‘윌리엄’ 대신 중간 이름인 ‘후버’로 불렀다며 후버의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오흐리
: 후버가 한국으로 간 후 3개월동안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실종됐다는 소식이 왔고 정말 슬펐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 일이 없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 측이 보내준 전쟁포로 명단 가운데 존스 일병의 이름이 없자 미 육군은 1953년 12월 존스 일병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후 가족들은 그의 유해라도 찾기를 희망했습니다.
존스 일병의 가족들은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에 유전자 표본을 제출하고 북한에서 송환되는 유해들 가운데 혹시나 자신들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유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69년을 기다렸고 그 사이 아들의 유해라도 찾기를 바랬던 존스 일병의 어머니를 비롯, 가족들은 사망했고 현재 존스 일병의 8명 남매 중 누나 셋만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해 1차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후 북한이 55개 상자에 미군 유해를 담아 돌려보내면서 존스 일병의 누나들은 그 가운데 동생의 유해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존스 일병의 신원이 55개 상자에 담겨 송환된 미군유해들 중 2번째로 확인됐고 가족들은 그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존스 일병의 둘째 누나인 아이다 디킨스(Ida Dickens, 92)는 2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흥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디킨스: 그들이 전화를 해서 찾았다고 말했어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정말 행복했습니다.
가족들은 존스 일병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결정했고 이날 존스 일병의 유해 안장식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히 치뤄졌습니다.
존스 일병의 관을 덮었던 성조기는 그의 첫째 누나인 오흐리 씨 품에 전달되었고 이어 켈리 맥키그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 국장 등이 가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했습니다.
멕키그 국장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69년동안 이들은 자신의 남동생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른채 불확실한 가운데 살았다며 이제 그들은 답을 찾았고 지금은 평안 가운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멕키그 국장: 미군 유해를 55개 상자에 담아 돌려보내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인도주의적 표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이 모든 국가들과의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인도주의적 협력의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이런 협력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한편,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 대변인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지난해 북한에서 55개 상자에 담겨 미국으로 송환된 미군 유해 중 2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은 지난 1일 북한에서 55개 상자에 담겨 미국으로 송환된 유해에 대한 유전자 검사 결과, 250여명의 유해가 있었고 그 가운데 80여명은 한국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