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참전용사와 가족 등 114명이 한국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지난 7일 방한했습니다. 이 중 캐나다에서 온 참전용사인 클로드 쁘띠(Claude Petit) 씨의 사연을 이정은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한국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한 클로드 쁘띠(Claude Petit) 참전용사.
쁘띠 씨는 지난 1952년 17세의 나이로 캐나다 육군의 패트리샤 공주 캐나다 경보병연대(PPCLI) 소속 훈련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쁘띠 씨는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임진강 북단에 위치한 해발 200미터 남짓의 후크 고지를 지켜내기 위해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것이 한국에서의 첫 기억 중 하나라고 회고했습니다.

클로드 쁘띠 (Claude Petit) 씨: 영국의 블랙워치(the British Black Watch) 부대가 북한군에 압도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반격 임무를 맡았습니다. 후크 고지에서 중공군을 몰아냈습니다. 그것이 한국에서의 처음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갓 17세였습니다.
후크 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쁘띠 씨는 1952년 12월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서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전방으로 복귀해 1953년까지 참전했다고 말했습니다.
쁘띠 씨는 또 언론 매체를 통해 러시아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를 보면 한국전쟁 당시가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소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모습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더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으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며 북한의 지도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핵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클로드 쁘띠 (Claude Petit) 씨: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이곳 한국에서도 일어났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북한 지도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핵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에 대해선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은 어디서 일어나든 지옥과 같다며 무기를 마련할 돈으로 전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클로드 쁘띠 (Claude Petit) 씨: 전쟁은 지옥과 같습니다. 어디서 일어나든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를 사서 서로 죽이는 대신 전 세계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캐나다의 전국원주민퇴역군인협회(NAVA) 회장을 맡고 있는 쁘띠 씨는 자신이 캐나다 원주민의 하나인 메티(Métis)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450여 명의 메티가 모여 살던 고향 마을에서 총 8명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클로드 쁘띠 (Claude Petit) 씨: 고향 마을에서 8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저와 제 형, 제 삼촌 그리고 5명이 더 왔습니다. 450여 명이 사는 이 작은 마을에서 8명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평화와 한반도에서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할 것을 회원국에 권고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전쟁에는 22개국 출신 청년 195만여 명이 유엔군으로 참전했고 이 중 3만7천여 명이 사망하고 11만 3천여 명이 실종되거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기자 이정은,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