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전문가들 “미북 협상 예견된 결렬...북 ‘협상술’ 가능성도”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위해 스웨덴에 온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등 북한 대표단이 6일(현지시간) 숙소였던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을 나서고 있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위해 스웨덴에 온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등 북한 대표단이 6일(현지시간) 숙소였던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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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결렬로 끝난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과 관련해 한국 내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양측 간 이견이 커 논의 진전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며 예견된 결과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5일 스웨덴, 즉 스웨리예 스톡홀름에서 하노이회담 이후 7개월여 만에 열린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

결국 결렬로 끝난 협상과 관련해 한국 내 전문가들은 준비기간 동안 미북 양측의 기존 입장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며 예견된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가 시작된 만큼 결렬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불과 회담 3일 전 북한이 SLBM, 즉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하나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SLBM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사거리가 중요합니다. 이번에 발사한 SLBM은 사거리 2000~3000킬로미터 정도의 확실한 준중거리 미사일이거나 그 이상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용납될 수 있는 한계선을 밟은 것은 확실합니다. 만약 분위기가 좋았다면 그 정도의 고강도 도발을 미리 할 필요가 없었겠죠.

조 선임연구위원은 실무협상 자체가 정상회담 등에 앞선 일종의 예비회담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하루 전인 4일 실무협상에 대한 또 다른 예비접촉을 가진 것도 하나의 신호였다고 분석했습니다.

양측이 미리 합의에 근접한 상태에서 회담장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영변 뿐 아니라 현재 북한이 갖고 있는 핵시설과 핵물질을 전부 폐기하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에 대한 상응조치가 북한이 원하는 것보다는 작았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된 '석탄 · 석유 수출 제재 3년 유예 '방안 정도로는 비핵화의 대가로써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다만 북한 측 실무협상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회담 후 성명을 통해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연말까지 숙고해 볼 것을 권고’한다는 유연한 표현을 쓴 것은 올 연말 전 추가 실무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이번 실무협상에서 북한의 요구사항을 ‘비핵화에 앞선 선 상응조치’, ‘경제제재 완화와 안전보장’,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의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이번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최대한의 요구조건을 제시한 것이라며 애초에 결렬까지 염두에 둔 일종의 협상술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 : 최대치를 제시해서 자신들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협상을 일단 결렬시킨 후에 다음 번 협상을 대비하는 복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제시한 사항들은 미국으로서는 절대로 받을 수가 없는 것이고 대화를 더 이상 진전시킬 수도 없는, 그 앞 단계에서 막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는 미북 양측이 오는 11월 중 실무협상 형식으로 다시 만날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한 쪽이 먼저 물러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7일 발간한 ‘스톡홀름 미북 실무회담 평가와 향후 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논의를 중단시킨 배경에 지금까지 미국에 가해온 압박이 효과가 있었다는 자체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대화 없이 미국을 계속 압박한다면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북한에 계속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 등 무력도발을 이어간다면 미국이 먼저 협상 종결을 선언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또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나 핵실험 등을 재개하지 않더라도 비핵화 대화가 정체되면 경제발전이 어려워진다면서 향후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거부 등을 명분 삼아 이른바 ‘최대압박정책’을 다시 도입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이날 내놓은 논평을 통해 북한에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습니다.

정 본부장은 미북 양측이 수시로 만나 협의를 해도 비핵화 합의안을 도출하기 어려운 상황에 미국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오라고 떠넘긴 북한의 태도는 비핵화 협상 의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은 핵프로그램의 일부만을 포기하고 대북제재 완화를 이끌어내 핵보유국으로 남으면서도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싶겠지만 이는 한미가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이라며 북한이 비핵화의 개념 정의와 방법, 일정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거부한 상황에서 미국이 ‘부분적인 비핵화’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최소한 ‘부분적인 비핵화’를 거쳐 ‘전면적인 비핵화’로 나아가겠다는 일정표에 합의하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현재 북중관계가 좋다고 해서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강행한다면 심각한 오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진지하게 나서겠다고 대외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나선다면 북한은 2018년 이전의 고립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