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직접 만남 대신 통화로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미관계의 상징성을 고려해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났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대통령실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직접 만남이 불발된 이유에 대해 표면적으론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을 꼽았습니다. 양측의 소통 방식을 전화 통화로 결정한 것은 사전에 긴밀하고 충분한 조율에 따른 것이라며 “갑자기 만들어진 일정이 아니다”란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최영범 한국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방 일정을 잡기 어렵다고 사전에 설명했고 펠로시 의장 측도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며 “주요 동맹국 의회의 수장이 방한한 만큼 직접 면담이 어렵더라도 전화라도 인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을 고려해 양측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냐는 질의에는 “한국의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며 “한국은 미 행정부의 외교적 결정을 당연히 존중하고 한미동맹 관계를 최우선에 둔다는 입장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실 관계자도 2주 전 양측의 만남과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며 “윤 대통령의 지방 휴가계획이 확정돼 있었기 때문에 양해가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인한 중국의 거센 반발이 있기 전, 이 같은 일정이 확정됐다는 겁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펠로시 의장이 전화통화에서 미국에서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며 “‘가족이 먼저(Family is first)’를 몇번이나 강조했기 때문에 면담이 없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한국 내에선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지만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의제를 적절히 조율해 만났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4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는 한중관계를 위해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겠지만 양측이 만나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만 조율하면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 (펠로시 의장과) 김진표 한국 국회의장이 만나서 공동언론발표문을 보면 대만 문제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상, 하원을 통과한 반도체 법안, 그와 관련된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얘기가 주로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도 한미동맹을 과시하는 차원에서도 양측이 대면하는게 좋았을 것이란 견해를 밝혔습니다. 특히 펠로시 의장은 이번 순방에서 한국을 제외한 국가들의 정상들을 모두 직접 만났기 때문에 한국으로선 이른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이를 계기로 중국에 잘못된 신호가 발신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오히려 나쁜 사인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 가운데) 굉장히 약한 고리라는. 중국이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인도 태평양 지역에 있는 국가들을 각개격파해 들어갈 때 1차적인 대상이 누가될까요. 구체적으로 공동성명을 내지 않더라도 잠깐 만나서 환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상징의 문제이거든요.
다만 차 센터장은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의 통화는 사전에 긴밀한 조율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요소로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펠로시 의장의 행보는 의회 외교 차원이기 때문에 행정부의 수반인 윤 대통령을 반드시 만날 필요도 없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정치권에서도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동맹국인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기 때문에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라면서도 미중 간 마찰이 있는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을 반드시 만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내 전문가들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미국의 강력한 대중 압박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분석합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우방국 및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차원의 행보였다는 겁니다.
다만 미국 행정부가 현재 시점에서 중국과의 추가적인 마찰은 지양하는 기조가 있어 펠로시 의장과 엇박자가 났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김현욱 교수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에 강경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은 현 미국 집권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불필요한 마찰은 지양하는 입장인 것 같지만 펠로시 의장의 행보를 어느정도 용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차두현 센터장은 “펠로시 의장이 아시아순방을 하면서 내놓은 메시지는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 인권 중시 정책과 방향이 같다”면서도 “다만 중국에 대한 메시지 수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미 행정부와 펠로시 의장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대만 국적의 학생들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어떤 문제도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대만 학생(28, 한국어번역 전공)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대만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대만의 외교적 위상이 올라간 계기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대만 학생 : 하원 의장의 신분으로, 이런 분이 대만에 오는 것만으로도 (대만이) 외교, 정치적으로 큰 발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에 따른 위험도 있겠죠. 중국이 대만에 스트레스를 계속 주는 거니까요.
이 학생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이 무력시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선 “중국의 그런 반응은 이미 충분히 예상된 것”이라며 “대만인들 사이에선 중국이 또 저러는구나란 말들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자유아시아방송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이어 한국을 방문한 데 대한 입장을 묻고자 주한 중국 대사관측에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자 목용재,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