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선생님, 요즘 너무 더워요.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갑게 느껴질 정도인데요. 그런데 이런 뙤약볕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오늘의 주인공도 무더위에 괜찮으실까 걱정되는데요?
마순희: 그러게나 말입니다. 무더위라해도 냉동기(에어컨)가 빵빵한 실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오늘의 주인공 김민철 대표의 경우는 다르죠. 강원도 횡성군에서 고사리농원을 경영하고 있는 농사꾼이기에 무더위가 힘든 복병 중의 하나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무성한 고사리 숲에서 고사리 순을 꺾는 일을 해서 좀 낫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맞아요. 농사짓는 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궂은 날씨에도 일을 하죠. 그만큼 힘든 일인데 김민철 씨는 어떻게 귀촌을 하게 됐나요?
마순희: 사실 김민철 씨가 한국에 온 처음부터 귀촌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2003년에 한국 땅을 밟은 민철 씨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도 해보고 회사생활도 해보고 또 자영업도 해보면서 지냈는데 그 과정에서 때로는 많은 돈을 벌기도 하고 때로는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더군요. 그렇게 부대끼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복잡한 도시보다는 산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랍니다. 귀촌에 대해 생각하던 중 2010년, 남북하나재단에서 지원하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을 접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제일 선참으로 신청하고 귀농교육을 받았다고 해요. 김민철 씨는 귀농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먼저 배워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고 절박감이 크다 보니 교육생들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후에는 전국을 다니면서 실습을 했는데 직접 농가에서 일을 하며 배우는 겁니다. 그렇게 실습을 다니다가 전라남도 남해군의 대규모 고사리 농장을 견학하게 됐는데 일을 배우면서 자신도 고사리농사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답니다.
김인선: 그런데 김민철 씨가 전국을 돌면서 실습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 과정에서 여러 작물을 접했을 텐데 그 중에서도 고사리를 선택했어요. 고사리 재배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뭘까요?
마순희: 네. 김민철 씨가 고사리농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북한 남성들이 거의 다 그러하듯이 김민철 씨도 10년 넘게 군사복무를 했는데 대부분 산에서 생활하며 지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산나물이나 약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게 됐는데 북한에서 고사리는 깊은 산 습지대에서 자라는 고급 산나물, 귀한 식자재입니다. 그렇게 기억하는 고사리를 귀농교육을 받던 중에 접하게 된 거죠. 북한에서는 고사리를 산에서 채취하기는 하지만 재배한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 했거든요. 김민철 씨는 고사리를 농가에서 재배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고 충격적이기도 했다는데요.
산나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신이 조금만 노력하면 고사리를 재배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래요. 그래서 무보수로 고사리 농원에서 일을 해 주면서 하나하나 배웠고 1년 후 마침내 강원도에서 고사리 농사를 시작하게 된 거죠. 북한에서 고사리는 깊은 산에서만 자라는 귀한 몸이라 결혼식, 환갑잔치, 돌생일 같은 대사 때에나 먹는 고급 식자재로 혹은 외화벌이로 알고 있었는데 남한에 와보니 음식점에서 반찬으로도 쉽게 내주는 평범한 식자재더군요. 우리 탈북민들은 남한에 와서 고사리를 실컷 먹고 있답니다.
김인선: 이런 걸 안목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사물을 봐도 어떤 사람은 가격을 가늠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치를 찾는다고 하잖아요. 고사리를 직접 재배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민철 씨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 같네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안목으로 농작물 선택을 했어도 귀농한 사람들 중에 처음부터 성공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거든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성공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곡절 없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성공한 사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민철 씨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처음 강원도 횡성에 도착했을 때에는 집도 없어서 낡은 농막을 수리해서 지내야 했답니다. 비록 거처는 초라했지만 고사리 농사는 임야 3천 평, 한 정보로 시작했는데요. 무더위에는 찬물로 몸을 식혀가며 일했고 엄동설한에는 고사리 모종이 얼까봐 나뭇잎을 모아 밭에 덮어주며 밭에서 떠나지를 못 했답니다. 오죽하면 한파 주의보가 내렸는데 산에서 나뭇잎을 긁어 모아 고사리 밭을 덮고 있는 그를 보고 경찰차가 달려와서 ‘이러다 큰 일 난다고 어서 내려가시자’고 억지로 데리고 내려오기까지 했겠습니까? 그 정성에 보답하듯 봄이면 토실토실 살 오른 고사리들이 주먹을 꼭 쥐고 키돋음 하듯 솟아 올랐답니다. 그렇게 한 정보로 시작한 고사리 밭이 이제는 1만 2천 평, 네 정보로 늘어났고 현대적인 가공시설을 갖춘 고사리 농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김인선: 네. 시작보다 4배가 커졌으니 할 일이 더 많아졌을 것 같아요. 고사리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4~5월에 채취한다고 들었거든요. 강원도는 어떤지 모르지만 최근에 김민철 씨가 엄청 바빴겠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도 4월에 제주도에 놀러가서 고사리를 꺾었었는데요. 강원도는 4월말부터 5월 사이가 가장 수확이 많은 계절이라고 합니다. 민철 씨가 그만큼 바쁘고 힘들었을 기간이었던 거죠.. 그런데 고사리는 워낙 포자번식을 하기 때문에 한 번 꺾어도 비가 오고 날씨가 좋으면 계속 새로운 싹들이 올라오기 때문에 1년에 4-5회 정도 수확한다고 하니 민철 씨는 앞으로도 엄청 바쁠 수 있습니다. 민철 씨의 집 마당 앞에는 저온저장고 건물이 있고 그 뒤로 건조기도 두 대가 설치되어 있는데요. 채취한 고사리를 잘 삶아서 건조시키고 소금에 절여 보관시키는 공간인 겁니다. 김민철 씨는 1년 12달을 고사리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인선: 탄탄하게 농원을 꾸려가고 있는 김민철 씨, 주변에서 비결 좀 알려달라는 분들도 많겠는데요?
마순희: 많죠. 비결을 묻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신이 귀농을 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경험에 대해서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김민철 대표는 귀농을 하면 어떤 지원이나 혜택이 있는지부터 묻는 사람들은 제대로 귀농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이라고, 마음이 귀농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런데 민철 씨를 찾는 사람 중에는 귀농을 바라지 않고 그저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 놀려 오는 탈북민들도 많답니다. 친구들끼리 오기도 하고 혹은 단체 식구들끼리 혹은 명절이나 평일이나 늘 전화하고 찾아가는 곳이죠. 김민철 씨의 집 앞마당엔 시골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예쁜 가설막이 쳐 있고 주인을 닮은 믿음직한 통나무로 만든 탁자며 의자들이 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마치 북한에 두고 온 고향집 같은 정취가 저절로 풍기는 곳이랍니다.
김인선: 항상 고향 사람들에겐 열려있는 공간이네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김민철 씨의 안목이 참 남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목의 차이는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도 하는데요. 김민철 씨는 어떤 안목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듣기로 하겠고요. 오늘은 이만 마순희 선생님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