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횡성 고사리농원 대표, 김민철 씨의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2003년 남한 땅을 밟아 2010년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강원도 횡성으로 귀촌한 김민철 씨, 낡은 농막을 수리해 살면서 고사리 농사를 시작해 이제는 1만 2천여 평(4정보)의 고사리 농원을 운영하는 성공한 영농 탈북민으로 손꼽힌다는 이야기까지 나눴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김민철대표님의 집 마당 앞에는 저온 저장고 건물이 있고 그 뒤로 건조기도 두 대나 설치돼 있습니다. 낮은 야산을 등지고 있는 김민철 씨의 집은 오래전 떠나 온 북한의 고향집 생각이 절로 날 정도라서 더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탈북민 사이에서는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고 묵어가는 농원이라고 할까요?
김인선: 수시로 드나들고 묵어갈 정도로 많은 탈북민들이 찾아오나 봐요?
마순희: 네. 딱히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민철 씨네 고사리농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 친구들끼리 오기도 하고 단체 식구들끼리 혹은 명절이나 평일이나 늘 전화하고는 찾아가는 곳이죠. 복잡한 일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쉬고 싶을 때 누구나 찾아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김민철 씨의 고사리 농원입니다. 물론 귀농을 희망하는 탈북민들도 직접 찾아와서 배우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농원을 찾는데요. 그때마다 민철 씨는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나 경험들이 귀농을 희망하는 탈북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밑거름이 된다면 그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경험을 나누어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우리 탈북민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인사들도 많이 찾아왔었더라고요. 텔레비전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으로 유명한 최불암 배우를 비롯해서 드라마 ‘주몽’에서 모팔모 역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계인 배우와 함께 찍은 사진이 민철 씨의 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사리 농원을 찾게 된 동기는 달라도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돌아갈 때에는 민철 씨가 건넨 고사리 제품을 선물로 받아간다는 겁니다. 실컷 대접받으며 잘 놀고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고사리 제품을 선물로 안겨주기까지 하는 김민철 씨는 우리 탈북민들의 농촌 휴양소 소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김인선: 참 좋을 것 같은데요. 반면에 공짜로 재워주고 또 농사비결도 알려줬는데 고사리는 사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남들 다 퍼주면 부인이 엄청 싫어할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리 민철 씨 바가지 긁히겠어요!
마순희: 부창부수라는 말이 있죠? 김민철 씨의 아내 장진혜 씨도 푸근한 인심을 가진 사람인데요. 한 가지라도 더 대접해 보내려고 또 하나라도 더 들려줘 보내려고 남편보다 오히려 장진혜 씨가 더 극성일 정도였습니다. 이들 부부의 인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희들도 찾아갈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는 않고요. 하지만 주인 보태주는 나그네 없다잖아요? 늘 푸근한 인심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한 보따리 씩 안고 오곤 하지요. 부부가 한 마음으로 정을 나누며 지내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 보였는데요. 민철 씨는 퉁퉁 부은 아내의 두 다리를 주물러 주느라 최근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사리 철이 되면 일꾼들 식사를 보장하랴, 농원에서 함께 고사리 채취하랴 허리 한 번 펼 새가 없는 아내가 있기에 고사리 농원을 이만큼 키워갈 수 있었다며 진혜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거듭 표현하는 김민철 씨였습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이들 부부에게 깊은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김민철, 장진혜 씨 부부가 한국에 정착할 때에는 둘 다 홀몸이었다고 합니다. 장진혜 씨는 브로커를 통해서 딸을 데려 오다가 실패하여 다시 자식이 북송되는 그 아픔을 겪으며 홀몸이 되었고 김민철 씨는 탈북 후 중국에서 어려운 도피생활을 하다가 두 아들과 헤어진 채 홀로 한국에 오게 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민철 씨의 모습은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했을 정도였다는데요. 그 모습을 본 지금의 아내 진혜 씨는 자신이 챙겨주지 않으면 민철 씨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이 남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장진혜 씨의 말을 들으며 두 사람은 운명이고 인연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에게 민철 씨의 두 아들을 데려올 기회가 왔는데요. 이때 진혜 씨가 혹시라도 자신의 딸처럼 될까봐 브로커를 믿을 수 없다면서 아예 자신이 직접 중국까지 가서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식에게 못 다한 사랑까지 합쳐서 친 자식처럼 돌보아주었답니다. 이렇게 가장 어려울 때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었기에 지금까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잉꼬부부로 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김인선: 그렇군요. 이렇게 보면 김민철 씨가 일과 가정에선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웃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져요. 아무래도 시골이라 외지에서, 그것도 탈북민이 와서 터 잡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사실 우리 탈북민들 중에는 귀농을 하긴 했는데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이 잘 안 되고 끝내 텃세를 못 이겨 포기하는 사례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민철 씨는 다르더라고요. 크지 않은 시골동네라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았고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제일 먼저 민철 씨를 찾았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의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가서 도와 드리곤 한답니다. 또 1년에 몇 번씩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서 북한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기도 하고 정성껏 생산한 고사리 제품을 집집마다 돌리기도 한다는데요. 어르신들은 민철 씨 내외를 보고 우리 마을에 보배가 굴러왔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잔칫집엔 못 가도 상갓집은 절대로 빼놓지 않는다는 김민철 씨를 동네 사람들은 ‘우리 회장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강원도 횡성군 고사리 농원의 김민철, 장진혜 부부는 그렇게 마을의 주민으로 아니, 마을의 회장님으로 든든히 자리잡아가고 있었습니다. 7년 전, 아무도 없었던 강원도 횡성군에서 한 정보(3천평)의 고사리 밭을 일구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네 정보(1만 2천 평)의 고사리 농원을 경영하는 대표로 또 마을의 회장님으로 든든히 자리잡아가고 있는 김민철 씨의 이야기는 3만 명이 넘는 우리 탈북민들 특히 귀농을 희망하는 탈북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선: 맞습니다. 규모가 크던 작던 어떤 사업장의 대표가 된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에서 대표가 된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고사리 농원의 대표로 불리는 것도 훌륭하지만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에서 ‘우리 회장님’으로 불리는 김민철 씨가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귀농을 희망하는 많은 탈북민들의 본보기가 되는 고사리농원 대표, 김민철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오늘은, 앞으로도 김민철 씨의 고사리농원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사리 꺾자’라는 노래를 들려드리면서 인사드릴게요.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