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지난주에 이어 오카리나 하나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김 명 씨의 얘기를 해보고 있는데요.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 번째 시도만에 한국에 오게 된 김명 씨.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대학 진학 대신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는 것을 선택했는데요. 수많은 경험을 통해 김명 씨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오카리나였습니다. 오카리나는 부리를 가진 작은 새의 모양으로 8∼10개의 소리 구멍이 있고 길이는 10∼20㎝까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그만큼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인데요. 김명 씨는 이 오카리나 연주를 듣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죠?
마순희: 맞습니다. 대안학교 시절 학교에 봉사로 오셨던 음악선생님의 오카리나 소리에 모든 아픔이 치유되는 듯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김명 씨는 자신이 직접 오카리나를 불면서 정신적 안정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독학으로 시작한 오카리나로 이제는 봉사활동까지 하고 있다는데요. 네팔을 비롯해서 어려운 이웃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어린 친구들에게 오카리나를 들려주고 가르쳐주기도 한답니다. 악기도 기부하면서 말이죠. 제가 오카리나 가격을 물어봤더니 기초로 가르치는 정도의 작은 것은 2만 원, 18달러 정도 하는데 비싼 것들은 수천 달러 한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오카리나를 선뜻 기부 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또 연주봉사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긴 김명 씨랍니다.
김인선: 네. 그런데 오카리나를 독학으로 시작했다고요? 탈북민인 김명 씨에게 오카리나는 생소한 악기였기 때문에 독학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마순희: 그렇죠. 그런데 김명 씨는 일단 무작정 오카리나의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입에 물었답니다. 10개 안팎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조절하면서 소리를 만들어내며 독학을 했다는데요. 기초적인 지식도 몰랐지만 인터넷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 불게 되더랍니다. 그런데 살고 있는 주택가가 모두 아파트라서 소음 때문에 집에서는 악기를 연주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차를 가지고 교외로 나가 외딴 곳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연습을 했던 거죠. 밥 먹으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차안에서 빵이나 김밥, 라면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우며 연습을 했는데 어떤 날에는 17시간이상 연습을 했더니 입술이 부르트더랍니다. 그래도 오카리나를 불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연습을 하면서 자신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김명 씨는 오카리나 연주법을 스스로 터득한 이후에는 서울 청계천과 인사동에서 거리 공연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호응으로 때로는 6시간 넘게 공연을 할 때도 있었는데 힘들다는 생각보다 사람들의 호응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감을 더 가지게 되었다고 해요.
김인선: 특별한 무대 없이도 또 유명인이 아니라도 노래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거리공연의 장점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어도 정말 잘 하지 않으면 다들 관심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하거든요.
마순희: 맞아요. 잠시 궁금해서 발길을 멈추기도 하지만 이내 가버리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김명 씨가 처음 거리공연 했을 때의 반응은 제가 보지 못했으니까 설명하기 어렵지만 작년에는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명 씨랑 함께 KBS에서 한글날 행사를 마치고 방송국을 나서는데 그냥 돌아가기가 조금은 아쉽다며 여의도 공원에서 즉흥적인 거리공연을 펼치더라고요. 그 곁에는 가수인 제 딸도 있었는데요. 김명 씨의 오카리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때 아닌 공연에 횡재했다는 듯 감상도 하고 사진도 찍고 좋아들 하시더군요. 함께 행사에 참여했던 우리 탈북여성들도 ‘고향의 봄’이나 ‘소쩍새야’ 등 북한노래들은 함께 따라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러나 오늘의 김명 씨가 있기까지는 결코 순탄한 노정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독학으로 인터넷을 보면서 연습했지만 점차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된 거죠. 작은 음악회나 공연 같은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기초적인 음악 지식이 없으니 악보를 볼 수 없어서 큰 무대에서 다른 연예인들이랑 합동하여 공연하는 것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독학의 한계를 느낀 김명 씨는 2016년 오카리나 연주로 유명한 경북 경산의 대신대 김준우 교수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답니다. 악보 하나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독학으로 완벽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실력 면에서는 전문가인 교수도 인정을 했답니다.
김인선: 전문가에게 인정받을 정도면 정말 대단한 건데요.
마순희: 네. 그래서 교수님은 김명 씨를 더 크게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에 정규 대학에 입학할 것을 권했다는데요. 그러나 김명 씨는 개별 교습과 사회활동을 병행하는 지금의 생활을 고집했습니다. 사실 저도 같은 탈북자의 입장에서 김명 씨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리 검정고시로 학력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10여 년의 교육 공백을 다 메우고 한국의 일반 젊은이들과 똑같이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죠.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하게 되면 대학졸업 후에도 외국 유학을 할 정도로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우리들에게는 경제적 여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김명 씨는 일하면서도 배울 수 있고 공연과 강의도 할 수 있는 지금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인선: 들어보면 처음 그대로 김명 씨의 생각은 확고하네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마순희: 지금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오카리나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공부하고 서울에서 연주도 하고요. 아직 부족한 실력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공연도 만들고 싶고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 자유의 땅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녹이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이미 오카리나 전문가로서 작사·작곡과 공연 기획·연출로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KBS, MBC, EBS 같은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했고 공연과 특강도 하고 또 악기를 판매하기도 하는데요. 여기에 취미생활을 원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카리나 교습까지 하면 수입도 꽤 괜찮은 편이랍니다.
그러나 김명 씨는 돈 버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았는데요. 오카리나 연주에 마음을 담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곧 김명 씨의 기쁨이고 행복이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10월경이면 새 음반집이 나올 거라고 하더군요. 아직은 부족한 실력이지만 더 노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공연도 만들고 싶다는 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저 자신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어 북한의 고향땅에 가서 수많은 사람에게 오카리나 연주를 들려주고 가르치면서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김명 씨의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원합니다.
김인선: 음악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음악은 돈이 없어도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악기를 통해 사람들 마음을 치유하고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말이죠. 김명 씨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이제는 직접 오카리나 연주를 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연주가가 됐습니다. 사람들의 감성을 녹이는 연주를 하겠다는 김명 씨의 바람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주에 매료되고 있다는데요. 한국에 와서 김명 씨가 눈물을 쏟은 곡이 고향의 봄이었죠. 오늘은 김명 씨가 연주한 ‘고향의 봄’을 전해드리면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