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라질 수 있다, 소방설계사 이서진 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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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소방 설계사 이서진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게요. 북한에서 건설관련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설계사업소에서 설계사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남한에서 벌써 13년째 소방 설계기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북쪽에서의 경력도 도움이 됐겠지만 서진 씨의 성실한 노력이 있었고 또 귀인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사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취직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서진 씨는 10대, 20대의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동료라도 있으면 서로 소통하면서 함께 배울 수도 있는데 주위에는 어린 학생들 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학원 강사님도 처음에는 30대 아줌마가 얼마나 버티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지켜보았는데 의외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생들 사이의 관계도 좋고, 학원생활도 알뜰하고 성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해요.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취직하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데요. 서진 씨의 성실성을 잘 알고 있었던 강사님은 서진 씨가 학원을 졸업한 후에 자신의 지인이 사장으로 일하는 회사에 취직을 알선해주면서 직접 동행면접까지 해주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서진 씨가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북한여성을 어떻게 믿고 취직시켜 주겠는가, 학원 강사님을 보고 취직을 시켜준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하는 사장님의 말을 들으면서 서진 씨는 다시 한 번 강사님에게 감사함을 느꼈다는 거예요.

김인선: 수강생을 위한 동행면접까지...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남북하나재단과 같은 탈북민 지원단체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인데 개인적으로 강의를 하는 강사님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죠.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10년이 넘었지만 서진 씨는 지금도, 학원의 강사였던 주광춘 선생님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가끔 문안인사도 드리고 어쩌다 만나면 함께 식사도 하면서 많은 조언을 듣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강사님도 서진 씨를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를 한답니다. 배우는 학생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30대 아주머니의 모습이 너무 신선했다고 말이죠.

김인선: 얘기를 듣다 보니 서진 씨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걸 걸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요. 함께 온 가족은 없었나 봐요?

마순희: 아니에요. 서진 씨는 지금 중국에서 살면서 어렵고 위험할 때마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조선족 남편도 한국으로 초청해서 가정을 이루었어요. 그리고 북한에 두고 왔던 두 딸들도 모두 데려와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20대로 다 큰 딸들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행복하게 잘 정착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서진 씨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하더군요.김인선: 탈북여성들 중엔 자녀들을 어렵게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도 떨어져 살았던 시간 때문인지 잘 못 지내는 경우도 많던데.. 서진 씨는 두 딸과도 잘 지낸다고 하니까.. 진짜 성공한 삶이네요.

마순희: 서진 씨도 처음부터 두 딸과의 관계가 좋았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들을 두고 온 것에 대한 원망도 있었고 한국으로 데려온 것에 대해 원망했던 시간도 있었다는데요.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차 딸들이 알게 된 거죠.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모아서 자신들을 데려 온 건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그걸 알게 된 두 딸들은 이제 ‘엄마가 참 대단하고 또 고맙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두 딸들이 자신의 노력을 알아줄 때면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이 다 보상을 받는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서진 씨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딸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함께 장도 보고, 옷도 사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딸들이 친구 같다면서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두 딸을 데려온 일이라고 하는데요. 저도 그 말이 너무도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런 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날이거든요.

김인선: ‘엄마’이기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 서진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통의 탈북민들과 출발선 자체가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같은 탈북민끼리 가정을 이룬 경우보다 남한사람과 가정을 이룬 탈북민이 좀 더 수월하게 정착하는 것처럼 북한에서부터 전문직을 했었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마순희: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한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탈북민들에겐 출발선이 다 똑같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조건은 서로 다르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본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진 씨를 만난 것은 광명시에 새로 건설되는 주택과 상점이 함께 있는 주상복합단지 건설현장 사무실이었습니다. 집 한 채를 짓거나 화려한 도시의 큰 건축물이나 어떤 건설을 시작하든 그 언제나 안전을 위해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 그리고 그걸 유지하기 위한 사업이 먼저였다는 것을 저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바로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서진 씨가 거인처럼 돋보이기도 했답니다. 이제는 회사에서 차장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는 서진 씨를 누구도 탈북자라고 따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봤을 때에도 사무실에서나 생활에서나 말투며 옷차림, 자신감 넘치는 행동 어디에서도 보통의 서울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 보였지만 서진 씨는 ‘아직’이라며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김인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어요?

마순희: 업무상 거래하는 분들과의 사업적인 면에서는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데 가끔 길을 가다가 말을 하게 되면 한 번 더 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말투를 채 고치지 못 한 것 같아서 얼마 전에는 남북하나재단 취업지원센터의 언어교정-스피치교육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나재단에서 탈북민의 언어적 어려움을 해소하여 취업이나 혹은 회사생활을 더 원만하게 할 수 있도록 전문 방송원을 초청해서 우리말 교육을 해주었는데 이게 참 도움이 많이 되고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완벽주의네요.

마순희: 네. ‘꿈을 이룬 다음의 꿈’을 의미하는 ‘꿈 너머 꿈’이라는 말이 있다지요.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서진 씨에게는 소방기술사가 되겠다는 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의 소방설계사보다 더 고도의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을 필요로 하는 소방기술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데려온 두 딸이 모두 대학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딸들이 바르게 잘 살고 자신은 소방 설계분야에서 당당히 탈북민의 성공한 모델이 되고 싶은 것이 서진 씨의 ‘꿈 너머 꿈’인 셈이죠.

김인선: 네. 탈북민의 성공한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이서진 씨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요?

마순희: 네. 서진 씨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정착이고 그 정착은 꾸준한 노력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줘라. 그러면 누구든지 도와준다. 잘살아보겠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은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이루어진다’라고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서진 씨의 모습에서 우리 탈북여성의 성실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또 한 번 보게 되었습니다. 한결같은 사람, 서진 씨. 늘 행복하세요. 서진 씨의 꿈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인생은 자기가 선택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하죠. 부정적인 쪽을 택하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긍정적인 쪽을 택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진다는데요. 자기가 더 바람직하게 여기는 삶을 살다 보면 인정을 받고 평판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서진 씨의 말처럼 자신만의 신념으로 열심히 살다 보면 삶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