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희망이다, 69살 최성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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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한국에서는 요즘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어요. 외국에서도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이 있는데요. 의학의 발달로 100세까지 사는 일이 보편화된 것을 지칭하는 신조어라고 하네요. 이렇게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의 후반부를 멋지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6,70대에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거나 새로운 직업을 갖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런데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사회 자체가 낯설어서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는 게 훨씬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더구나 하나원에서 퇴소할 때의 나이가 60세 이상이 되면 연령가산금을 기본 정착금에 더 추가해서 받기도 하고 지역사회에 나와서도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서 정부보조금을 받기도 해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데 주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라 60대는 한창 일할 나이기도 하잖아요? 자연히 저희 탈북자들도 고령자라고 그냥 집에서 쉬고만 있지는 않답니다. 저의 주변에도 보면 건강이 안 좋은 경우를 제외하면 70대 초반까지는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최성훈 씨 역시 올해 나이가 69세인데요. 여전히 일을 놓지 않고 있는 분이십니다.

김인선: 네. 국가가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생활자금인 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5살을 훌쩍 넘긴 나인데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시네요.

마순희: 네, 최성훈 씨의 경우 남한의 초기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나온 때가 60세가 넘었으니까 정착금과 연령가산금까지 받아서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었지만 아직 건강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취업에 도전을 했다고 하네요. 올해 나이 69세인 최성훈 씨는 올해로 한국에 온지 10년차가 됩니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최성훈 씨는 중국에서 살다가 아홉 살 때에 부모님을 따라서 북한에 가게 됐는데요.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인민군대에 입대했고 20년 군관생활을 마치고 제대한 것이 2000년대 후반이었다고 합니다.

군관생활을 할 때는 군부대의 위수구역에서 자체로 농사도 짓고 부업도 하면서 비교적 풍요롭게 살았는데 군관 제대군인으로 사회에 나와 보니 생활이 말이 아니게 어려웠답니다. 성훈 씨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동해바다가 있는 라진선봉에서 배를 하나 구입해서 부업을 하며 애썼지만 형편은 나날이 더 어려워만 졌답니다. 더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3개월 정도 배를 타서 번 돈을 여비삼아 2009년 중국으로 들어가게 됐고 어렸을 때 조금 알던 중국어 밑천으로 한, 두 달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한의 초기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거주지 신청을 할 때에도 북한에서 배를 타고 일했던 경력을 살리고 싶어서 바다가 도시인 여수로 거주지 신청을 하면서 여수에 정착하게 된 분입니다.

김인선: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는 게 영어도 많고, 말이 많이 다르다는 거잖아요. 여수는 전라도 사투리까지 있어서 적응이 더 쉽지 않았겠어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최성훈 씨 역시 말투 때문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젊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말을 쉽게 배우고 빨리 적응하기도 하지만 나이대가 높을수록 말투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남성들인 경우에 더 어려운데 북한 남성 특유의 강하고 높은 어투는 본의 아니게 화난 말투처럼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성훈 씨 역시 1년 정도는 말투나 억양, 단어 선택 등이 북한과 달라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하더군요.

처음 일용직으로 일할 때에는 현장에서 쓰는 용어들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답니다. 건설용어 중에 흔히 쓰는 목재를 북한에선 5승5각자라고 하는데 남한에선 일본에서 온 말로 다래끼라고 하고 10승10각자는 오비끼라고 하더라면서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었겠느냐고 하더군요.

김인선: 저도 다 처음 듣는 말인데 현장에서 쓰는 말들이 꽤 어렵네요.

마순희: 그렇죠. 그러니 말을 빨리 알아듣지 못하고 일을 빨리 못한다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니까 자연히 맞서서 싸우기도 했답니다. 현장일 외에 요양원에서 일을 했던 적도 있는데 그때도 말을 잘못 이해해서 문제가 생겼었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하겠다고 하거나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으로 해결해도 될 일이지만 성훈 씨는 성훈 씨 대로, 사장은 사장 대로 서로 제 말만 고집했고 결국 사장은 ‘내일부터 일하러 나오지 말라’고 하더래요. 최성훈 씨 역시 욱하는 마음에 ‘이곳이 아니면 일할 데가 없겠느냐’고 홧김에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느라고 또 며칠을 고생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요양원에서 그렇게 해고를 당하고 괜히 더 남한 사람들한테 실망도 크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순희: 당시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성훈 씨는 자신의 욱하는 성질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한 생활을 시작한 초반, 몰라서 억울하게 당하기도 하고 실망도 여러 번 했었다고 말하더군요. 그 반면에 고맙고 감사한 인연들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처음 일용직으로 일할 때에 새로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통성명을 하는데 고향이 어디냐고 묻기에 함경북도라고 대답했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에 ‘나는 북한에서 온 탈북자인데 한국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 사람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이야기했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한 동료가 큼직한 보따리를 가져다주더래요. 이게 뭐냐고 했더니 남한에 참 잘 오셨다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하면서 선물을 주었는데 그 속에는 새 작업복과 장갑, 속옷에 일용품까지 일체 다 들어 있더랍니다. 그 이후에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조언해 주기도 했었던 고마운 사람이라고 성훈 씨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동료들 덕분에 하루하루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후에 선박관련 회사에서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인선: 그렇다면 지금은 선박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마순희: 아니요. 지난해 10월부터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상태예요. 성훈 씨는 일용직을 시작으로 요양원에서 6개월 일하다가 항업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선원을 통솔하는 갑판장으로 6개월 정도 일했대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짐을 싣고 부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작년 10월까지는 항업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지금은 일을 안 하고 계시는 거죠.

김인선: 짐 나르는 일이 나이 든 분들이 하기에 버겁긴 하죠.

마순희: 성훈 씨가 쉬게 된 건 일이 버거워서가 아닙니다. 건강문제 때문인데요. 지난해 감기가 잘 낫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라고 하더래요. 그러면서 종합검진을 받게 됐는데 건강이 안 좋았던 거죠. 그 일로 항업회사는 그만두게 됐고 지금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구직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에서 제공하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소 석 달부터 최대 1년까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요. 최성훈 씨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대로 좀 쉬운 경비직 일이라도 하겠다고 합니다.

김인선: 몸이 아프면 가족도 없고 혼자라는 외로움이 클 거 같은데, 어떻게 지내실까 걱정이네요.

마순희: 아파트 단지에 같은 탈북민들이 있어서 가끔 같이 식사도 하고 밑반찬도 만들어줘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모든 생활여건이 다 충족되어 있기에 큰 불편함이 없다고 하면서 혼자 사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건강문제로 잠시 일을 놓았지만 회복되는 대로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최성훈 씨에게는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과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최성훈 씨에게 꿈이 있다면 열심히 일해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과 통일이 된 후 떳떳하게 식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최성훈 씨가 하루 빨리 회복해서 그의 바람대로 다시 일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김인선: 몸이 아프면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최성훈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희망으로 살고 계시네요. 최성훈 씨를 통해 삶은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