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한국사회에 빨리 적응하는 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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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황옥경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옥경 씨는 중국에서 꽤 오래 살다가 한국에 입국했다고 했죠?

마순희: 네. 황옥경 씨는 2006년 11월에 탈북하여 중국에서 13년을 불법 체류자로 살다가 2019년 6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분이신데요. 중국에서 대한민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왔기에 한국생활을 잘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차이가 크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중국에서 꽤 오래 살다가 온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 것은 브로커 비용 뿐이었습니다. 북한에서부터 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민들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으니까요.

옥경 씨가 갚아야 할 브로커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건 그만큼 경제적인 부담이 덜 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옥경 씨는 여느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하루라도 빨리 브로커 비용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탈북민 초기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이후 곧바로 일자리부터 찾았습니다. 중국에 오래 있었던 탓에 말투를 보고 조선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상황이 옥경 씨에겐 상처가 됐습니다. 하지만 옥경 씨는 마음의 상처를 꽁꽁 안고 살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먼저 자신은 탈북민이라고 이야기하고 일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김인선: 한국 사람들끼리도 사투리 억양이 조금만 남아도 어느 지역 사람인지 묻는 경우가 많거든요. 북쪽 말투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조선족이냐고 가볍게 묻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조선족이냐는 말에 탈북민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옥경 씨가 자신이 탈북민이라고 먼저 말하고 찾은 일자리가 식당이었죠?

마순희: 네. 처음 옥경 씨가 일을 시작한 곳은 식당 주방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경제활동을 했던 것이 아니다 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해 보는 식당 일이라 서툴렀고, 모르다 보니 어설펐습니다. 주방장은 그것도 못하느냐며 잔소리를 하고, 일손이 느리다고 못마땅해 했습니다. 옥경 씨는 참다못해 '처음이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좀 이해해 주면 안 되냐'하고 항변도 해봤지만 이해는커녕 오히려 말싸움만 크게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옥경 씨는 식당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보호자 대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살펴주는 간병인 일을 시작했습니다. 천성이 차분한 옥경 씨에게 그 일은 큰 무리가 없이 해 낼 수 있었습니다. 옥경 씨가 돌보는 환자는 주로 어르신들이었습니다. 고향에서 60대 중반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생각을 하면서 어르신들을 친부모님처럼 돌보았고 옥경 씨가 임종을 지킨 환자들도 여러 명 되었습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 보호자 분들과도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면서 간병인 일을 잘 해왔지만 1년 만에 그만두게 되었는데요. 집에서 출퇴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간병 일은 환자를 곁에서 돌봐야 하다 보니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게 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막상 간병 일을 그만두게 됐을 때 옥경 씨는 그동안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실감했다는데요. 서운하다고 손을 놓지 못 하는 가족들과 환자분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한국에 왔으니 혼자 고생하지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함께 행복하게 살라며 만남도 주선해 주었고, 그 덕에 지금의 남편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한국인으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남편을 만난 후에도 옥경 씨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김인선: 집에서 출퇴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원하는 일자리를 금방 찾은 걸까요?

마순희: 네. 우연한 기회에 마땅한 일자리 정보를 접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처음 정착하던 2003년경에는 동네 골목마다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실은 무료 신문이 있었는데요.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정보이다 보니 그 신문을 보고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자리를 찾는 방법이 특이하더라고요. 황옥경 씨는 손전화로 한 카드사의 프로그램을 설치하다가 일자리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된 옥경 씨가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생활을 잘 할 수 있게 정보도 알려주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남편 덕분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을 때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인터넷을 통한 구인광고이고, 개별적으로 전화 문의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 면접을 보고 최종적으로 취업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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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우리 탈북민들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보통은 탈북민 거주지를 중심으로 탈북민들의 취업지원과 생활지원 등을 해주는 하나센터에서 도움을 주는데 옥경 씨는 남편의 도움으로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정보는 ‘수술실 장비관리사’ 모집이었는데요.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옥경 씨는 일단 전화를 걸어 문의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구직 희망자를 지원하는 고용지원센터에 연결해서 서류를 접수시키라고 했고, 옥경 씨는 바로 서울의 한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도 옥경 씨는 탈북민임을 먼저 밝혔다는데요. 고맙게도 직원 분이 친절히 안내해 주고 잘 연계해 주어서 병원에 바로 취직이 됐습니다.

김인선: 남편의 지원으로 일사천리로 재취업에 성공하게 된 거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남편이 남한 분이라 옥경 씨의 한국 정착이 더 빨랐는데요. 하지만 늘 좋은 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가 생겼고, 부부를 티격태격하게 만들기도 했다는데요. 서로 다른 표현 방식과 음식 문화, 명절 문화까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이해해 갔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큰 부부싸움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잉꼬부부가 되었습니다. 옥경 씨가 새로 시작한 일은 병원의 수술실 기구를 관리하는 일인데요. 사실 저도 옥경 씨를 만나기 전까지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보통 수술실이라 하면 의료진이나 입장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자격 요건이 까다로울 것 같았는데요. 수술실 기구를 관리하는 일에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실성과 책임성이 가장 중요한데요. 모든 것을 꼼꼼히 챙기는 옥경 씨의 깐진 일솜씨와 잘 맞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다만 수술 후 일체 도구들을 씻고 소독하고 보관하는 일이기에 수술실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아야 하는데 피 냄새가 워낙 심해서 비위가 약하면 오래 하기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옥경 씨는 그 일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힘들긴 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고,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고 하는데요. 모든 일에는 정년 퇴직이라는 게 있다 보니 옥경 씨도 퇴직 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강직업전문학교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이미 실습까지 마쳤습니다. 곧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옥경 씨는 앞으로 사회복지사로서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더 열심히 할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정착 6년 차이지만, 안정된 일자리에 행복한 가정도 꾸리고 여가생활과 봉사활동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는 황옥경 씨인데요. 몇 년 뒤 사회복지사로 활약하는 황옥경 씨의 행복한 정착이야기를 다시 소개해 드릴 그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김인선: 옥경 씨의 하루하루가 가치 있는 이유! 뭐든 정면으로 승부하고 해 내는 거였네요. 옥경 씨처럼 청취자 여러분들도 보람 있는 하루를 보내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