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강원도 춘천 시청에서 근무 중인 조명희 씨 이야기, 나눠볼게요. 명희 씨는 1998년 탈북 후 중국에서 10년을 살다가 2008년에 한국에 왔는데요. 중국에서 낳은 당시 11살 된 딸과 함께였습니다.
마순희: 네. 많은 탈북여성들이 그러하듯이 명희 씨는 한국에 와서 딸을 돌보는 일부터 경제적인 활동까지 모든 것을 혼자의 몸으로 해내야 했습니다. 어디서든 적응을 잘 하는 편이었던 명희 씨였기에 스스로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명희 씨는 명희 씨 대로 서서히 지쳐갔고 그 즈음 명희 씨는 마음에 맞는 남한 남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원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명희 씨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딸과 남편이 가족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명희 씨는 딸아이의 교육 문제, 정서적인 문제 등을 고려해서 지방의 한 복지시설에 딸을 보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며 지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하지만 명희 씨 모녀는 떨어진 거리와 시간만큼 애틋한 마음이 더 생겼다고 합니다. 물론 처음엔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말이죠.
김인선: 맞아요. 지난 시간, 재혼 가정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는데요. 명희 씨의 경우가 딸이 있는 상태에서 가정을 꾸린 재혼 가정이잖아요. 2018년 자료에 따르면 남한 전역의 혼인 건수(25만 7622건) 중 재혼 구성비는 22%(5만 6865건)로 다섯 가정 중 한 가정이 재혼 가정인 셈이에요.
마순희: 네.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재혼 가정이 적지 않은데요. 모르긴 해도 남한보다는 더 많지 않을까요? 제 주위에서도 재혼 가정을 많이 볼 수 있거든요. 재혼 가정도 가족 모두가 노력하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남과 북,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던 사람들끼리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명희 씨는 남편을 사랑하는 것만큼 남편의 모든 생활과 환경들을 받아들이고 시댁 식구들도 내 식구와 조금도 다름없이 대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시댁 식구들도 명희 씨의 딸을 친딸로, 손녀로, 조카로 받아들이고 잘 지내고 있기에 명희 씨네 가정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라고 하더군요.
김인선: 한국에 처음 왔을 때 11살이었던 명희 씨의 딸도 이젠 성인 됐겠는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명희 씨의 딸은 지방의 한 대학교의 영상미디어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합니다. 제가 좋은 공부를 하고 있어서 축하한다고 했더니 명희 씨는 ‘배고픈 직업이잖아요?’ 하더라고요. 명희 씨의 입장에선 썩 마음에 드는 학과는 아니지만 딸이 좋아하고 선택한 학과이기에 그냥 지켜봐 주면서 응원하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김인선: ‘영상미디어학과’가 얼마나 인기학과인데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을 통한 사회관계망이 활발해서 대중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고요. 요즘은 방송을 직접 제작하고 출연도 하면서 돈도 굉장히 잘 벌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1인 방송 제작자, 유튜버는 초등학생들이 꿈꾸는 직업 1위일 정도로 각광받고 있어요. 10살 된 제 딸도 하고 싶어하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우리 탈북민들 속에서도, 특히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더라고요. 대학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마치면 아마도 똑 부러진 엄마를 닮은 명희 씨의 따님도 관련 분야에서 희망을 마음껏 꽃피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의 맏딸도 영상편집이나 제작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명희 씨의 딸이 선택한 학과에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사실 제 큰 딸 같은 경우에는 명희 씨의 딸처럼 대학에서 전문기술을 배우지는 못 했거든요. 북한에서 광업전문학교를 나와 기계설계를 했던 제 딸은 한국에 와서 아이를 낳고 관심이 있던 영상미디어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더니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매일처럼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늘 배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라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밤을 새워 작업하는 모습이 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영상관련 자신의 회사를 차리고 제가 보기에도 멋진 영상들을 만들어내는 딸의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거든요. 명희 씨의 딸은 이제 대학에 갔으니까 1년 정도 배우면서 자신의 분야를 정하고 거기에 매진한다면 제 큰 딸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김인선: 중간에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명희 씨의 딸은 이제, 남한 청년으로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명희 씨는 어떤가요?
마순희: 딸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동안 명희 씨 역시 자신만의 정착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명희 씨를 만나던 2014년에는 자활사업단에서 비누 만드는 일을 3년째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좋은 분을 만나 가정을 이뤄 안착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그때 명희 씨는 사이버대학 2학년생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났고 명희 씨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답니다. 사이버대학을 졸업한 명희 씨는 민간단체에서 진행한 상담사과정을 공부했고 탈북민 전문상담사 자격증과 보육교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이제는 5년 차 춘천시청 공무원으로 상하수도 요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 중이라고 하는데요. 무기 계약직으로 흔히 말하는 철밥통이라고 하는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답니다.
김인선: 아는 것이 많을수록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고 하잖아요. 명희 씨의 경우엔 공부를 하면서 삶이 달라졌다던데, 이게 무슨 말이죠?
마순희: 사실 명희 씨의 경우 처음부터 잘 정착한 사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 자신의 일이고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없다는 마음이 컸다는데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당시엔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명희 씨는 그럴 때마다 혼자 술로 달랬다는데요. ‘새조위‘라는 민간단체를 접하면서 명희 씨가 달라지게 됐습니다. ’새조위‘는 통일부 관할 아래 탈북민들의 한국정착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요. 2009년부터 탈북민 전문상담사 양성교육을 진행했습니다. 탈북민 전문상담사 양성교육은 탈북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상담사가 되기 위한 교육인데요.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와 자신을 성장시키는 교육을 중점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김인선: ‘새조위’는 서울에 있잖아요. 교육을 받기 위해서 명희 씨는 춘천에서 서울을 오간 거예요?
마순희: 네. 교육기간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왔죠. 때론 춘천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요. ‘새조위’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강원도 춘천에 직접 찾아가서 탈북민들을 위한 코칭 교육을 진행했거든요. 동기부여도 해주고 개인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도 하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코칭’이라고 하는데요. 질문과 답변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코칭 교육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탈북민들이 조명희 씨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인 걸 보면 우리 탈북민들에게 꼭 맞는 교육인 것 같습니다.
명희 씨는 상담사 교육과 코칭 교육을 통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하는데요.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먼저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갖다 보니 좋은 일이 점점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같은 탈북민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기를 권했습니다. 명희 씨는 당당하게 근무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노력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조명희 씨의 한국 정착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김인선: 만족감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하는데요.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조명희 씨야 말로 마땅히 칭찬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족감’이라는 선물, 여러분은 받으셨나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