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지난 1월 20일이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이었어요. 1년 중 가장 추운 날인데 사실 이건 중국의 기준이고요. 남한의 경우 '대한'보다 '소한'일 때 더 춥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지금이 훨씬 덜 춥다는 말인데 저는 추위를 잘 타서인지, 지금도 춥더라고요.
마순희: 소한이 대한보다 더 춥다는 말은 북한에서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날씨가 춥다고 보일러를 틀고 두터운 겨울외투도 입고 목도리에 장갑에 그리고 신발까지 중무장하고 다니잖아요. 하지만 한국의 추위는 북한이나 중국의 흑룡강성 지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 전에 북한에 있을 때에 느꼈던 겨울추위와는 대비가 안 되거든요. 심하면 동상도 입는데 저도 학교 다닐 때 뺨에 동상을 입은 적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4년 정도 살다보니 흑룡강성의 겨울은 또 북한의 겨울 저리 가라였어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출입문을 열 수 없을 때도 많았고 밖에 나서면 수증기가 얼어서 공중에 반짝반짝 떠다니기도 해요. 얼굴은 시린 것이 아니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김인선: 중국이나 북한 추위에 비하면 한국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겠어요.
마순희: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몸도 적응이 되었는지 제가 한국에서도 추위를 느끼게 됐거든요. 그래서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고 다른 일정이 없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는데요. 사실 제 나이 때문이기도 해요. 60이 넘은 사람들, 특히 노인들에게는 날씨가 추워지면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고 빙판길에 미끄러져서 다치는 경우들도 있거든요.
아무리 조심해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를 당하거나 몸이 아파서 병원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이런 경우 한국에서는 으레 찾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바로 보험설계사인데요. 오늘 소개할 주인공 윤광남 씨가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답니다. 윤광남 씨는 1997년 북한을 떠나 중국 산둥지방에서 13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요. 2010년 한국 땅을 밟았으니 올해로 한국생활 10년차가 됐네요. 올해 나이 37살인 광남 씨는 경상북도 경산에서 보험설계사로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답니다.
김인선: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사람이잖아요. 보험은 사고를 당하거나 다쳤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드는 것으로 쉽게 말해 미래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고요.
마순희: 네, 맞는 말씀입니다. 보험은 미래의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나 사고에 대비해 여유자금을 미리 투자하고 사고 시 보상받는 제도인데 우리 탈북민들에겐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용어예요. 용어도 생소한데 보험의 종류도 가지가지더군요. 보험을 관리하는 주체에 따라서 공영보험과 민영보험으로 나눌 수도 있고 또 보험적용을 받는 대상, 즉 한자로 사람인지 물건인지에 따라서 '인(人) 보험'과 '물(物) 보험'으로 나뉘기도 하고 생명보험과 보장성보험으로 나뉘니까요.
김인선: 선생님, 완전히 보험전문가 같으세요.
마순희: 저도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셨죠? 처음 하나원을 나와서 일자리를 찾을 때 50대라고 하면 받아주는 데가 별로 없었는데 나이 제한하지 않고 받아주는 데가 바로 보험회사더라고요. 설명을 들어보니 보험이라는 것이 우리처럼 모아놓은 돈도 없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전문교육을 받고 보험설계사 자격시험을 봤었답니다.
보험설계사가 되는데 나이제한은 없지만 전문교육을 받고 자격시험을 본 뒤 합격을 해야 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시험 방법이 새로운 방법이라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답니다. 북한에서는 모든 내용을 외워서 써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사지선다형, 그러니까 한 문제에 대하여 네 개의 항목 가운데 한 개를 고르게 하는 문제 형식이더라고요. 내용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니 어지간히 공부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김인선: 아무리 그래도 남한에 와서 처음 접해보는 보험이고 관련 용어가 낯설었을 텐데요.
마순희: 물론 보험이라는 것이 용어며 보장내용들이 생소한 것들뿐이라 탈북민들이 이해하기 힘들기는 하죠. 그래도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하는 시험이 아닌 게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60점 이상이면 합격이 가능하기에 그저 열심히 암기하고 공부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광남 씨 역시 낯선 용어와 보험관련 내용들을 공부하고 또 공부하면서 노력했고 그 결과 자격시험에 합격하게 됐습니다.
김인선: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거네요.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마순희: 그렇더라고요. 저 역시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 설계사로 근무했지만 공부하는 거랑 일하는 거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 하고, 만나서 보험을 소개하고 권유하고, 최종적으로 계약체결로 이어지도록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 참 어려웠거든요. 아는 남한 사람들은 많지도 않은데다가 그들은 이미 대부분 보험이 있고, 같은 탈북민들은 처음 보험에 대해 설명해주면 그렇게 좋은 보험에 왜 가입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가입을 하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지, 그러니까 보험계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왜냐하면 안정된 직업이 없어서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데 보험료는 매달 꼬박꼬박 내야하니까요. 매달 일정한 금액을 저축처럼 내게 되면 아프거나 병이 생겼을 때 치료비나 입원비 같은 진료비용을 지원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쉽게 공감이 돼 보험에 들었지만 당장의 현실로는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없거든요.
김인선: 사실 보험은 국민이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그 비용을 국가가 일정 부분 부담해주는 국민건강보험이란 게 있어서 누구나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개인이 부담하게 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가입한 보험을 정리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지출을 줄여야 하니까요.
마순희: 맞아요. 보험을 유지하기 힘들면 중도에 해지하게 되죠. 하지만 보험이란 게 가입 후 얼마 안 가 다치거나 질병이 생겼을 때 보장을 받는 대신, 몇 년간은 그동안 냈던 보험료를 돌려받을 수 없거든요. 만약 몇 개월 안 가서 해지하게 되면 그동안 냈던 보험료만 날리게 되는 셈이에요. 차라리 그 돈을 은행에 넣어두면 본전이라도 살아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본인의 선택으로 보험에 가입을 했지만 몇 달 안 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해지하는 탈북민들이 많으니까 제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보험설계사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답니다.
김인선: 보험설계사들이 하는 가장 큰 고민이죠. 사실, 남한 사람들은 한 사람 당 보통 두세 개 이상은 만일을 대비해 보험을 들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보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보험 가입을 부탁할까봐 부담스러울 때가 많아요. 우스갯소리로 보험 일을 시작한 친구는 피해야 한다'는 말까지 하거든요.
마순희: 그래서 영업하는 사람들에겐 거절이 익숙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는 거죠. 지인이라야 하나원을 같이 나온 친구들이 전부였던 저에게, 영업은 무리였습니다. 생명보험, 보장성보험, 화재보험, 건강보험, 연금보험, 자동차보험, 암보험… 자신이 가입한 보험에 대해 아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모든 보험들에 대해서 전문지식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맞는 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가입과 사후관리까지 해주는 보험설계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거든요. 저는 결국, 보험설계사로 반 년 정도 버티다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인 윤광남 씨는 보험설계사를 시작한지 벌써 4년이 됐으니까요. 어린 나이였지만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김인선: 아는 지인이 많은 남한 사람들도 영업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광남 씨는 4년째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군요. 그런데 한국에 온지 10년째인데 보험설계사로는 4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보험설계사가 되기 전 광남 씨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나눠 볼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과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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