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오마니 순댓국집 사장 금정숙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평안도 오마니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금정숙씨 입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의 주인공 금정숙 씨를 살펴보니까요. 올해 50살로 순댓국 집 사장님이시네요. 그런데 가게 이름이 ‘평안도 오마니 순댓국집’ 이라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금정숙씨가 부산에 내려가서 처음 가게를 내오면서 가게 이름을 ‘가마솥 순댓국’이라고 했었는데요. 순대국밥을 맛 본 손님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자꾸 묻더랍니다. 처음엔 그냥 강원도라고 대답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본의 아니게 손님들을 속이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았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과 상의하고 한 2년 전, 8월부터 12월까지 거의 반년을 장사를 접고 실내장식하는 일을 일체 다시 하고. 명칭도 그분 고향이 평안도거든요. 그래서 ‘평안도 오마니 순댓국’이라고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역시 북한여성이 다르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들었다고 해요. 그동안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대답할 때마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 것이 찜찜했었는데 그렇게 다 털어놓으니 마음이 얼마나 개운한지 모르겠더라고 하더군요.

김인선: 남한에서는 순댓국 하면 아바이 순대집이 꽤 유명하고 가게도 많은데요, 정숙 씨가 ‘오마니’라는 상호를 붙여 순대집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마순희 : 네. 맛에 대한 자신감과 장사에 대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숙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함경도 아바이 순대집이라는 간판에 끌려 식당에 들어가서 순댓국을 먹어 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맛이 북한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고 해요. 어머니를 도와 순대도 많이 만들어 보았던 정숙 씨는 자신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꼭 제대로 된 북한의 순대 맛을 보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10년이 지난 지금의 ‘평안도 오마니 순댓국’을 태어나게 한 계기였다고 합니다. 처음 한국에 정착하면서 정숙 씨는 새로 개업을 하는 중국집에 취직하여 1년간 식당에서 일하면서 주방일과 음식을 나르면서 손님의 시중을 드는 일, 그리고 가게 운영하는 법 등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습니다. 그동안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1년 후에는 배달을 위주로 하는 자그마한 중국집을 내오게 됐는데 직접 순대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판매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주방장을 두고 영업을 하게 되면 줄 돈은 다 주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안 들어도 요구도 할 수 없어서 속상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중 순대 맛이 좋다고 한 번 사 먹어 본 사람들이 계속 주문하다 보니 차라리 순댓국밥집을 차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순댓국집을 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사실 순댓국의 평균 가격은 6천원에서 8천원, 그러니까 6달러에서 8달러 정도 되는데 금정숙 씨가 운영하는 순댓국집에서는 10달러, 만원을 받더라고요. 비싸서 잘 팔릴까 싶은데 장사는 잘 되나요?

마순희: 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만원이면 비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는데 막상 먹어 보니 정말 만원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북한 식당도 많이 차리고 있지만 사실 남한 분들이 호기심으로 찾는 경우가 많거든요. 분단되어 살다 보니 북한의 음식 맛이 어떤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고 맛도 별로라면 한두 번으로 찾아가는 것을 끝내겠지요. 그런 것을 잘 알기에 정숙 사장은 고유한 북한 맛을 고집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제대로 된 북한의 순대 맛과 함께 영양도 챙기고 한국인들의 구미에 맞는 순댓국밥집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기 위해서 수십, 수백 번을 더 연구하면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직접 발 품을 팔면서 원재료구입과 손질까지 최선을 다 했고 순대는 물론 밑반찬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남새나 양념 재료도 최상의 제품으로 구매했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사용하는 김치도 모두 정숙 씨가 직접 담근 것인데 맛 좋기로 소문이 나서 가끔은 김치도 사가곤 한다네요. 식당의 메뉴판 옆에는 ‘이것은 순대 국밥이 아니라 보양식이다’라는 글이 씌어 있었는데 그 글은 가게의 단골손님이 직접 써서 붙인 것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만원이면 일반적인 순대 국밥에 비하면 비싼 축이지만 꽤 넓은 식당이 점심 때에는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자리에 앉을 정도랍니다. 월 매출은 원자재비랑 인건비랑 다 제하면 2천만 원 정도는 된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2천만 원이면 1만9천 달러 정도 되는데요, 대박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식당이 있는 지역을 보니까 부산이에요. 부산에 정착한 이유가 있나요?

마순희: 네. 처음 정숙 씨가 정착한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이 부산지역으로 조동되게 되자 남편을 따라 부산에 내려가게 된 거죠. 남편 분은 어린 딸을 키우면서 회사생활도 열심히 하시면서 성실히 살고 있는 분이었는데 혼자 몸으로 가게도 하면서 잘 살고 있는 정숙 씨의 모습에 마음이 서로 통했나 봅니다. 사실 남남북녀 커플들이 사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하지만 정숙 씨는 워낙 남편이 너무 잘해주어서 그런 어려움을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사업장을 운영하는 기술을 가지고 서울보다는 비교적 물가가 싼 부산에서 마음먹고 식당을 크게 해보고 싶었답니다. 정숙 씨의 바람을 알게 된 남편이 그 꿈을 적극 지지해주었고 크고 번듯한 2층 건물을 지어 식당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정숙 씨는 6살, 13살 두 딸을 키우고 있는데 늘 자식들에게 일러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너희들에게는 북한에 오빠가 있다고, 통일이 되면 오빠랑 세 오누이가 한 형제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외운다고 합니다. 정숙 씨는 하루 빨리 통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 어느 가족보다도 더 간절한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북한에 남아있는 일가족에 대한, 특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힘들 때에도 오히려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일에 파묻혀서 그리움을 이겨 나가곤 했답니다. 정숙 씨에게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더니 큰 포부와 강한 정신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포부가 크다면 앞으로의 꿈도 크지 않을까 싶은데요, 정숙 씨는 어떤 꿈이 있을까요?

마순희: 정숙 씨는 지금 하고 있는 식당이 잘 되고 있기에 2호 점, 3호 점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정숙 씨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주영 회장님은 소 1000마리를 가지고 북한에 갔었지만 자신은 통일이 되기 전에라도 남북교류가 이루어진다면 봉고차 1000대를 가지고 북한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평양 옥류관 옆에 부산 순댓국집을 나란히 내오는 것 역시 그녀의 꿈이라고 하면서 가게에 ‘평양 옥류관 옆에 부산 순대 국밥집을 열 때가지’ 라는 글을 써놓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며 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순대국밥 식당을 운영해 나가는 금정숙 사장의 힘찬 하루를 함께 응원합니다.

김인선: 요즘 북한의 평창동계 올림픽 참가로 본격적인 남북교류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앞으로는 정부차원에서의 교류뿐 아니라 금정숙 씨를 비롯한 민간 교류도 가능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금정숙 씨가 봉고차 천 대를 끌고 북한에 가는 날도 올 수 있겠죠?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평안도 오마니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금정숙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