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싶은, 김성준 씨(2)

0:00 / 0:00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탈북민들이 한국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종교, 그 중 기독교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무교로 계신 분들도 있지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거의 6-70%가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데요. 그들 중엔 교회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오게 된 만큼 자신도 같은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독대학교에 진학을 한 김성준 씨인데요. 지난주에 이어 성준 씨의 이야기 나눠볼게요.

마순희: 네. 김성준 씨는 1995년에 탈북을 했고 중국에서 7년을 살다가 2002년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성준 씨는 함경북도의 한 지방도시에서 태어났지만 고등과정까지 학업을 마쳤을 만큼 가정형편이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외국을 오가는 일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자본주의를 빨리 접하고 알게 되면서 탈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두 자녀도 생겼지만 불안한 신분 문제로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동안 기독교 도움이 많았고 성준 씨의 신앙심도 깊어졌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종교활동은 물론 신학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이때에도 기독교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성준 씨가 다니던 교회에서 2006년에 탈북민 대안학교를 설립했고 신앙을 바탕으로 탈북민 학생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김성준 씨도 그 덕분에 교습도 받고 대학에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인선: 그런데 성준 씨가, 학생신분으로 함께 했던 그 대안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된 거잖아요.

마순희: 네, 그렇습니다. 김성준 씨는 2014년 4월에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의 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성준 씨의 나이는 41살이었습니다. 탈북 청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이기에 어린 나이에도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탈북민이고 또 이 학교를 거쳐서 기독교 대학에 진학했던 성준 씨였기에 누구보다 적임자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 대안학교는 교육청에서 지정한 정규학교가 아닌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라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재단, 그러니까 교회 관계자들의 재량으로 발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기독교 재단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대안학교네요. 탈북청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중의 한 곳인 셈이죠?

마순희: 네. 일반학교에 가는 탈북학생들도 많지만 언어나 정서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탈북학생들만을 위한 학교도 있는데요. 정규학교와는 다르게 학생 별로 좀 더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학교를 대안학교라고 하죠. 탈북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도 서울에만 십여 개 됩니다. 특히 그 중에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가 많은데요. 교회가 설립한 탈북민 대안학교이다 보니 신앙을 바탕으로 탈북 학생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탈북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안학교 운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교회를 찾아 온 한 탈북 청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은 대학진학을 하고 싶어도 기본 학력을 갖추지 못해 엄두를 못 낸다고 했는데요. 청년의 안타까운 사정을 접한 교회 측에선 1대1 교습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탈북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려는 자원봉사자들이 생기고, 또 대학에 가고 싶지만 학력이 안 되는 탈북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성준 씨 역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안학교에서 교습도 받고 대학에 다니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대안학교는 탈북 청소년, 청년들을 위한 기숙형 기독교 대안학교입니다. 저도 상담사로 일할 때 대학진학이 필요한 청년들을 만났을 때 이 학교에 상담 전화를 해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제 느낌으로선 딱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견뎌 내기가 쉽지는 않겠구나. 하지만 이 학교에 가면 무조건 대학에는 갈 수 있겠구나’ 하고요.

김인선: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순희: 일반적으로 대안학교는 정규교육을 따라가기 어려운 학생들이 배우면서 생활할 수 있는 곳이고, 학생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 등을 치유하기 위해 여러가지 여가활동도 많이 하고 즐겁게 생활하도록 편한 환경을 보장해 줍니다. 하지만 성준 씨가 교장으로 근무하는 이 대안학교에서는 그런 여가활동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대학입시를 절박한 급선무로 생각하고 오직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는, 그런 학생과 선생님들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잖아요? 같은 탈북민인 김성준 씨는 교장 선생님으로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학교와 교회 공동체 속에서 사랑과 소통으로 학생을 길러낸다. 탈북 학생들을 남북 간 문화 장벽을 깨는 대사로, 통일시대 신의 제자들로 잘 키워내고 싶다'고요. 기독교 정신으로 학생들을 양성하겠다는 김성준 씨의 포부가 느껴집니다. 김성준 교장 선생님을 2년 전 교회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남북한 사회복지 전문가들을 위한 통일사회복지사 양성교육이 그 교회에서 진행되었는데 교육 첫날 대안학교 교장으로서 격려사를 해주더군요. 처음 만났을 땐 환자복을 입고 있었던 성준 씨였는데 10년 만에 만난 그는 대안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동안 몰라보게 변한 겉모습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교장으로서의 품격과 교육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어서 왠지 뿌듯했는데요. 제 두 손을 잡고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서는 처음 만났던 30대 청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 했습니다.

김인선: 아무래도 젊은 교장 선생님이라 학생들과의 소통도 훨씬 잘 될 것 같은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춘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탈북민들을 만나게 된 적이 있었는데요. 성준 씨가 교장으로 있는 그 대안학교를 졸업했다는 청년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에 정착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거나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김성준 교장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공부를 배워줄 때에는 엄격한 교사지만 운동장에 나가면 함께 땀 흘리며 공을 차는 맏형 같은 사람, 생활에서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제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주는 부모님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김인선: 함께 공을 차는 교장 선생님, 멋지네요. 김성준 씨가 2014년에 교장 선생님 발령을 받았으니까 올해로 7년차인데요. 교장직의 기본 임기가 4년이거든요. 물론 연임을 하면 8년까지 가능하지만요.

마순희: 맞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제가 얼마 전에 전화 연결을 했었는데요. 뜻밖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금은 교장 선생님이 아니라 목사님입니다.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직은 처음이라 신도들이 많지는 않지만 아내와 함께 교회를 꾸려 나가고 있다고 하는 목사님의 목소리에서 행복한 삶이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김인선: 중국에 있던 가족이 한국에 왔나 보네요.

마순희: 네. 입국 시기나 자세한 내용을 다 말씀 드릴 순 없는데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안정되면서 가족을 데려왔고 이제는 중학교 2학년생이 된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과 함께 행복한 정착을 하고 계시다는 것은 확실히 전할 수 있습니다. 또 함께 배우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라 거창하지는 않지만 알심있게(야무지게) 잘 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신앙의 자유가 있어서 누구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교회도 설립할 수 있기에 김성준 씨처럼 교회를 개척하고 잘 자리 잡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정착을 할 수 있는 성준 씨의 사례 역시 성공적인 정착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인선: 맞습니다. 성공의 기준은 지위나 재물이 아니라 사람과 정신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느끼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며 행복을 느끼는 김성준 씨야 말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게 확실합니다. 성준 씨처럼 자신만의 방법과 생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많은 탈북민들이 계신데요. 그분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됩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네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