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회사원 박경애 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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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100세 시대, 기대 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후에도 생계와 보람을 위해서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청년들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요즘인데요. 찾아보면 노동시간이 짧은 일자리는 꽤 많습니다. 벌이가 크진 않지만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박경애 씨도 62살의 나이에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경애 씨가 생각하는 그 말의 의미는 어떤 걸까요?

마순희: 네. 박경애 씨의 정착이야기를 들으면 잘 알게 될 겁니다. 경애 씨는 1958년생, 올해 나이 62살인데요. 한국에 왔을 당시엔 53살이었습니다. 그때 나이도 취업하기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경애 씨는 초기정착 교육기관, 하나원을 나온 이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박경애 씨는 경상북도에 정착지를 배정받았는데요. 회사들이 많은 거제가 가깝다 보니 취직하기는 어렵지 않았고 대기업의 단열재 제조회사에서 제품포장을 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비교적 취업을 쉽게 했던 경애 씨에게는 한족인 지금의 남편을 챙기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지난주 경애 씨가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였던 자신과 두 자녀를 보호해준 지금의 남편에 대한 의리와 책임감, 그리고 고마움이 있다고 했었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북한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았던 경애 씨는 남편의 사망 후 힘겹게 살다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친척이 있는 중국으로 갔는데요. 사촌 언니네 집에서 살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되게 됐습니다. 그 길로 자식들과는 영원한 이별이 될까봐 북송 중 도망쳤는데 다시 사촌 언니네로 가면 또 북송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도 안 통하는 한족 마을로 갔고 지금의 한족 남편을 만났던 겁니다. 아이들과 무탈하게 사는 동안 한국행을 도와주는 브로커를 알게 되면서 한국으로 왔는데, 처음엔 경애 씨와 아들만 왔습니다. 생활이 안정된 후에 한족 남편과 딸을 데려왔습니다. 한국으로 데려 오기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한국말 한 마디도 모르는 남편이 지내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구박받는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본 후론 자신이 다니는 곳마다 남편을 함께 데리고 다녔습니다.

남편을 챙기면서 일하느라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참고 견뎌내면서 성실하게 근무하다 보니 5년이 지나자 종업원들을 책임지고 일하는 자리, 주임으로 승진도 했습니다. 평직원이었을 때에도 경애 씨는 제품포장 한 개를 하더라도 언제나 꼼꼼하게 확인하고 불합격 제품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항상 남들보다 많은 작업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경애 씨는 일에 대해서 만큼은 참고 견뎠다는데요. 딱 한 가지! 원칙에 어긋나는 사소한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사장이나 직장 상사라도 규정에 어긋나는 작업 지시를 주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간혹 마찰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주인다운 입장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회사에서는 경애 씨를 없어서는 안 될 인재라고 평가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매년 연말마다 회사 행사를 하는데 사장님과 함께 신년 행사 케이크를 자르는 영광을 언제나 박경애 씨에게 안겨 주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경력이 쌓인 만큼 일도 익숙해졌을 테고 또 사장님에게 인정도 받았으니까 지금은 뭐, 일하기가 아주 수월해졌겠어요.

마순희: 손에 익은 일을 지금까지 했다면 너무도 수월했겠지만 경애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2년 전부터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다녔는데 일반적인 치료를 받아서 될 정도가 아니고 척추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완쾌되면 다시 복직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무리 완쾌된다 해도 힘든 육체노동은 무리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경애 씨였습니다. 무엇보다 남들보다 더 제대로, 많은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남들만큼 일을 못 하면서 회사에 그냥 남아 있는 것은 경애 씨 성격에 생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됐고 경애 씨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이제는 집에서 쉬라고 했지만 경애 씨는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명태찜을 하는 식당입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식구들이랑 자주 가던 식당이었는데, 음식솜씨까지 좋은 경애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된 식당 사장이 두말없이 경애 씨를 채용했습니다. 한주일 정도 주방에서 연수를 받은 후 직접 음식을 만들었는데 사장님도 손님들도 모두 맛있다고 난리들이었다고 합니다. 경애 씨는 식당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일하는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손님들에게 음식이 맛있다고, 최고라는 평판을 들을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경애 씨인데요. 62세의 나이에도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피는 못 속인다고 하잖아요. 경애 씨의 자녀들도 엄마처럼 열심히 살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경애 씨와 먼저 한국에 온 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탈북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을 이끌고 있고요. 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만난 여성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경애 씨의 딸은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고요. 틈틈이 경애 씨는 딸과 함께 아들이 이끄는 봉사단에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몸 상할 정도로 일에 빠져 사는 사람을 워커홀릭이라고 하잖아요. 가만 보면 선생님도 그렇고 경애 씨도 그렇고 쉬엄쉬엄 즐기면서 살아도 될 연세에 워커홀릭처럼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마순희: 돈보다는 일이 주는 의미 때문이죠. 62세 넘어 퇴직을 하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집에서 쉬는 사람의 경우 아프거나 우울해 하는 경우가 많지만 퇴직 후에도 일을 하는 사람은 활력이 넘치니까요. 월급을 적게 받아도 일을 통해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삶의 원동력 아닐까요? 그래서 경애 씨도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김인선: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박경애 씨도 이젠 노는 것을 빨리 시작하셔야 할 텐데요.

마순희: 맞아요. 저도 그렇게 느껴요. 오직 자식들만을 위한다고 살다가 정작 나이를 먹어 할 일이 없어지니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지혜,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르면 절대로 안 되겠더라고요. 박경애 씨는 아직 60대 초반이니까 지금은 열심히 일하면서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는 것이 삶의 낙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건강을 지키는 일은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데요. 경애 씨는 지금도 출퇴근할 때에 거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고 합니다. 그리고 쉬는 날이면 공원이나 가까운 야산을 산책하면서 건강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인선: 경애 씨는 소박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지금까지 특별히 재산을 많이 모았다, 월급이 많았다, 이런 얘기는 없었는데 ‘박경애 씨는 부자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이게 무슨 말이죠?

마순희: 네, 경애 씨는 자신이 부자라고 늘 말하는데요.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부자라고 합니다. 바로 건강부자, 마음부자, 행복부자입니다. 경애 씨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스스로 갖게 된 좌우명이자 인생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박경애 씨는 처음 정착하는 후배들에게 늘 한결같이 말해줍니다. 조급한 마음과 너무 큰 욕심을 버리고 함께 열심히 살아가자고요.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박경애 씨! 그의 사례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선물을 알차게 보내는 우리 모두가 되어보기를 바랍니다.

김인선: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이 선물이라는 말, 기억하겠습니다. 62살의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박경애 씨의 말도요. 여러분은 오늘, 경애 씨처럼 행복한 하루를 보내셨나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