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전라남도 여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실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마순희: 네, 영실 씨는 올해로 5년차 ‘함흥매운탕’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한국에 입국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여수에 정착을 했는데요. 탈북민 초기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지내면서 접한 책자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정보가 실린 책자였는데 여수 지역에 큰 화학공장이 있다는 자료가 있었으니까요. 함흥에서 화학공장에서 일했던 영실 씨였기에 화학공장에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탈북 후 중국에서만 10년을 지내다 온 영실 씨는 30대 후반의 평범한 여성이었고 관련된 자격증은커녕 최소 학력조차 갖추지 못했기에 화학공장에 취업하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학력과 자격증 없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 보니 식당 일이었습니다. 영실 씨는 중국에서도 식당 일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식당 일에 있어서 만큼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의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던 영실 씨는 누구의 소개도 없이 스스로 식당에 찾아가서 일자리를 알아 볼 정도로 당차게 행동했습니다. 물론 식당 일도 똑 소리 나게 해냈다고 합니다.
김인선: 보통 일 잘하는 직원은 사장님들이 탐내거든요. 왠지 영실 씨는 중국에 있을 때처럼 한국에서도 일을 잘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도 많았을 거 같아요.
마순희: 영실 씨가 꽤 많은 식당을 옮겨 다니며 일을 한 건 사실인데요. 같이 일하자는 제의가 많아서 라기보다 영실 씨의 큰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당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 자신의 식당을 가져야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어떤 음식점을 차려야 할 지 고민을 하면서 직접 경험을 쌓았는데요. 갈비집, 삼겹살집 등 구운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일해보고 설렁탕집, 감자탕집 등 뜨끈한 국물요리를 하는 음식점에서도 일했습니다. 튀긴 닭고기를 파는 곳부터 삼계탕집까지 여러 식당 일을 해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는데요.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를 원재료로 하는 식당들 경우에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실 씨는 광우병 사태나 조류독감, 그리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돌면 수많은 가축들을 폐사시키고 관련된 식당들마다 영업을 못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해물탕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수는 바닷가라 신선한 생선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해산물은 그런 파동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판단한 것도 한 몫을 했습니다. 여러 식당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실 씨는 한국에 정착한지 7년 만에 고향의 이름을 딴 함흥 해물탕집을 차리게 된 것이랍니다.
김인선: 합리적으로 잘 판단한 거 같긴 한데 여수의 지역특성상 수산물이 많은 곳이라 매운탕집도 굉장히 많았을 거예요. 영실 씨네 가게만의 특색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식당과 차별성을 두려면 북한 음식을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마순희: 처음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영실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매운탕이 북한식이더라고요. 영실 씨의 고향은 함흥이라 동해 바다를 낀 도시였거든요. 북한에서도 매운탕을 많이 해 먹었는데 특히 어머니가 해 주시던 명태탕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매운탕이라는 음식이 영실 씨에겐 고향음식이었던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영실 씨네 가게만의 특색이 있었던 거죠. 남한에서도 최남단 남해바다를 낀 여수에서 북한 동해바다를 낀 함흥에서처럼 명태탕을 끓이기는 힘들지만 제철에 나는 갖가지 수산물로 손님이 요구하는 대로 매운탕을 끓인다고 합니다.
김인선: 함흥식 매운탕, 그 맛이 진짜 궁금하네요. 간판은 함흥이라고 내걸었는데 탈북민이라고 내놓고 장사를 하는 건 또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거든요. 어땠나요?
마순희: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영실 씨는 탈북민이라는 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식당 이름 앞에 자신의 고향, ‘함흥’을 내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함흥매운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영실 씨가 탈북민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듯이 영실 씨는 매운탕을 비롯해 밑반찬까지 모두 직접 만들어서 오히려 자신 있게 내놓는다고 하는데요. 특히 영실 씨가 직접 만든 배추김치나 깍두기, 그리고 절인 무 반찬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을 만큼 맛이 일품이라고 합니다. 가끔 손님들이 밑반찬을 팔지 않는지 물어볼 정도라고 하네요. 그리고 영실 씨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생선의 비린 맛을 없애서 매운탕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는데요. 생선의 비린 맛을 없애주는 비법을 물었더니 자신만의 비법에 대해서는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고요.
김인선: 잘 나가는 음식점의 비법은 다 비밀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가정도 안정적이고 돈도 안정적으로 벌 때쯤 되면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가족 생각이 더하다는 탈북민들이 많더라고요.
마순희: 그럼요. 영실 씨는 한국에 혼자 왔기에 누구보다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하다고 합니다. 북한의 형제들은 잘 살고 있어 다행인데 문득 문득 생각나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라고 하는데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지만 헤어지기 전해줬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처음 중국으로 떠날 때 그렇게 말리던 어머니였지만 정작 떠나는 영실 씨를 보시면서 ‘너는 돌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살 아이’라면서 힘을 주셨다고 해요. 그때의 어머니 말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계신 거겠죠. 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영실 씨가 처음 자신이 선택한 길 하나만 열심히 팠다는 건데요. 보통 한국에 처음 적응하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 이 일, 저 일 다 해보면서 우왕좌왕하느라 몇 년이 지나간다고들 하잖아요.
마순희: 쉽지 않은 길이지만 영실 씨는 꿈을 이룬 거죠. 중국에서 식당일을 할 때부터 자신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 영실 씨의 꿈이었으니까요. 살아가는 목표가 있고, 목표로 한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자신의 식당을 차리려면 무조건 밑천을 마련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식당으로 출퇴근 할 때도 자전거로 다니며 돈을 아꼈습니다. 버스요금 한 푼이라도 아껴서 좋고, 매일 집에서 식당까지 오가면서 운동을 하는 셈이니 건강도 지킬 수 있어서 좋고! 일거양득이었다고 합니다. 자전거 출퇴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5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차곡차곡 돈을 모았고 식당일을 하면서 식당 운영에 도움 되는 일도 배웠습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면서 고객응대를 익히고 주방 일손이 부족하다 싶으면 나서서 도우며 조리 준비부터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냥 일만 한 게 아니라 식당 경영의 비법까지 함께 배우면서 자신의 식당을 차릴 준비를 제대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만 7년 동안 직원으로 기술과 경험을 쌓은 후 자기 식당을 차렸습니다. 올해로 식당을 차린 지 만 5년 차가 됐는데요. 영실 씨는 지금도 꾸준히 주민들 속에서 사랑받는 함흥매운탕집을 잘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엔 코로나비루스 사태 때문에 손님이 조금 줄었지만 식당 운영에 큰 타격을 입을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김인선: 영실 씨는 그냥 무작정 식당을 연 게 아니었네요. 식당 열기까지 들인 시간이 꽤 돼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래서 영실 씨를 보면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리고 참해 보이지만 속은 꽁꽁 다져진 빈틈없는 사장님이랍니다. 제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하는 영실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은 북한에서나 중국에서나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나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산다고요. 초심을 잃지 않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맛집들로 유명한 전남 여수에서도 5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실 사장님의 사례를 소개해 드리면서 저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김인선: 초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김영실 씨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영실 씨처럼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이 성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