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지난주에 이어 이미선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 볼게요. 지금 ‘함께하는 재단’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근무 중인 미선 씨는 50대 초반의 나이로 한국에 온지 9년차 됐습니다. 1990년대, 북한에 만연했던 전염병을 앓으면서 죽을 뻔 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미선 씨는 재발될 지도 모른다는 말에 약을 구하러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에서 피복업체에 취업을 하고 미싱사로 일했는데 사장님과 마음이 통했습니다. 그래서 3년 만에 가정을 이뤘어요.
마순희: 네. 두 사람은 피복회사를 함께 운영했고 그 사이 예쁜 딸도 태어났습니다. 13년을 중국에서 지내다가 미선 씨는 남편을 설득해 2012년 한국에 왔습니다. 돈도 벌고 갑자기 행방불명 된 아버지를 찾으려고 왔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나신 뒤였죠. 그렇다고 미선 씨는 낙심만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딸을 생각하며 기운을 차렸고 중국에서 13년 동안 해왔던 재봉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적은 노임에 미선 씨는 다른 일을 찾았고 탈북민이 지역에서 잘 정착할수록 지원해주는 하나센터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한 뒤 자격증 취득까지 했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제일 먼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뒤이어 회사의 재정상태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회계사 자격증까지요.
마순희: 네, 미선 씨는 그 어렵다는 회계사 자격증도 취득했고 그 자격증 덕분에 순조롭게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업체들에서 탈북민 특별채용을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그런 정보들을 제 때에 알고 있으면 취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마침 ‘함께하는 재단’ 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탈북민 직원을 채용하게 되어 미선 씨는 금방 취업을 한 겁니다.
김인선: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업을 하는 회사를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죠.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 아니라 수익금을 통해 좋은 일을 하는 곳인데요. ‘함께하는 재단’을 찾아보니까 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복지활동을 하고 있네요. 지역복지부터 노인복지까지 다양한데요. 미선 씨는 무슨 일을 하죠?
마순희: 자원을 나눌 수 있는 매장이 있어서 필요한 인력이 생각보다 많은데요. 매니저, 사무업무직, 운영 등 업무가 다양합니다. 미선 씨는 지금 회계와 매니저 일을 하고 있어요. 올해로 재단에 취직한 지도 7년 차인데요. 매년 급여가 상승되는 기쁨도 있고 안정된 직장이라 미선 씨는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맡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매장을 운영하는 근로자를 매니저라고 하는데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주 업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니저는 사람과의 소통을 잘해야 하고 관계유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요. 많은 탈북민들이 그 부분을 어려워하잖아요.
마순희: 그런데 미선 씨는 그 부분에서 남다른 재능이 있나 봐요. 누구든지 미선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매장 방문객이나 손님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쁘다는 미선 씨입니다. ‘함께하는 재단’에서는 장애인 직업재활도 하고 취업지원센터도 운영하고 또 여럿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그룹홈에 대한 지원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위한 경제적인 자립을 지원해주고요. 탈북민이 사회구성원으로 잘 융합될 수 있도록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연결해 주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 문제라든지 기부금, 기증품 관리 등의 업무 역시 미선 씨가 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김인선: 돈을 다루는 업무는 신뢰가 바탕이죠. 그래서 채용을 할 때도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을 하는데요. 미선 씨의 경우 전반적으로 인정도 받고 자리도 잡은 것 같아요. 가정도 일만큼 똑 소리 나게 자리를 잘 잡았을까요?
마순희: 네, 미선 씨는 한국에 나와서 국제결혼 수속을 마치고 남편과 딸을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온 가족이 모여 살면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는데 정작 가족이 오고 나니 모든 게 마음 같지 않았답니다. 남편이 쉽게 정착을 못 하더랍니다. 남편은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중국에선 자기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으로 살던 사람이잖아요. 중국에서처럼 피복업체를 한국에서 할 수도 없고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남편은 일용직으로 일을 해야 했는데 힘들었을 겁니다.
건설현장에서 일당으로 일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정신적인 허탈감이 더 컸던 남편은 며칠 일하지도 못하고 몸져눕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술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잦아졌고 술에 취하면 애꿎은 미선 씨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미선 씨도 속상했지만 남편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늘 좋은 말로 남편을 위로했고 시간을 가지고 남편을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남편도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며 마음을 잡았고 지금은 회사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전혀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저 같았으면 무능력하게 구는 남편을 탓하며 신세한탄을 하거나 같이 화내면서 싸웠을 것 같은데 미선 씨는 굉장히 현명했네요.
마순희: 싸움이 없었던 건 아니랍니다. 두 사람이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과 7살 된 딸의 유치원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집에서 어린 딸의 등원을 돕고 집안일도 해 주는 날은 괜찮았던 거죠. 쉬는 남편을 미선 씨가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에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방과 후 교실이 있어서 그런 근심은 덜 수 있었으니까요.
저도 정말 공감이 되는데요. 막내딸이랑 어린 손녀랑 같이 살 때에 저도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딸은 대학에 가느라 새벽같이 나가고 어린 손녀를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하면 제가 출근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거든요. 매일 아침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나오기를 기다려 애를 맡기고는 종종걸음으로 출근했는데 더 큰 문제는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빨리 뛰어와도 텅 빈 어린이집에 당번 선생님과 함께 제 손녀만 남아있었습니다. 선생님께도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종일 기다렸을 어린 손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김인선: 탈북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엄마 모두의 문제죠. 일하는 엄마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9시 전에 회사에 출근하려면 아이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야 하니까요. 때로는 아이를 봐 줄 사람, 보모를 구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해결되는 문제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미선 씨 경우에도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낯선 한국 건설현장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했던 미선 씨는 남편에게 아예 일을 그만두고 어린 딸을 돌보는 것이 어떻겠는지 의논을 했답니다. 그 후에는 남편이 집에서 가사를 돌보다 보니 미선 씨는 더는 집 걱정을 안 하고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도와주고 딸도 커가면서 미선 씨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선 씨는 인터넷상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딸 수 있는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습니다.
4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금년 2월에 졸업했는데 지금은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년 반만 있으면 사회복지 석사가 되는 거죠. 앞으로 100세 시대에 맞게 살려면 퇴직 후에도 뭔가 할 수 있는 대비를 해놓아야 한다는 미선 씨는 지금도 시간을 쪼개 가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답니다. 언제나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한 단계, 또 한 단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미선 씨의 노력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미선 씨의 사례를 통해 자신에게 차례진 한 번뿐인 인생,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후회 없이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다 보면 그날들이 모여서 값진 인생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김인선: 행복은 노력으로 얻어진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미선 씨는 그 말을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목표를 세우고 집중하고 실행하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이미선 씨처럼 청취자 여러분도 긍정적인 목표 하나 정해보는 건 어떠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 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