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승부를 겨루는, 요양보호사 박영희 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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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요양보호사 박영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영희 씨가 한국에 오기까지 5번의 북송을 포함해 참 힘든 여정을 걸었는데요. 중국에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기 위해 갔다가 인신매매로 팔려가 살게 된 중국 남편의 폭력은 충격적이었어요.

마순희: 그랬죠. 한국 정착 후 영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기 전에 지난번 이야기에 이어 한 가지 더 전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제가 몇 년 전에 상담사로 근무했던 단체,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도 있고 탈북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약칭으로 ‘새조위’라는 단체도 있어요.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혹시라도 모르는 탈북민이 있다면 이 방송을 통해 그런 정보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육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상담사 양성교육을 통해 또 다른 탈북민을 도울 수도 있답니다.

중국에서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을 친 영희 씨는 청도에 있는 한 한국기업에 주방 취사원으로 취직해서 돈을 벌었고 그때 번 돈으로 2009년에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요. 탈북민들마다 초기정착이 쉬운 사람이 없겠지만 영희 씨도 한국에서의 삶이 쉽지 않았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영희 씨는 봉제기술을 배웠는데요. 교육을 마치고 정착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마침 동대문시장에 빈자리가 나서 출근하게 됐습니다.

김인선: 큰 어려움 없이 일자리도 찾았으니 출발이 좋은 편 아닌가요?

마순희: 네. 시작은 좋았죠. 그런데 시련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몸이 안 좋아서 국립의료원을 찾았는데 검사 결과가 나왔거든요. 참고로 국립의료원은 탈북민들이 병원 이용 시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라 많은 탈북민들이 찾는 병원입니다. 탈북민 환자들이 늘어나자 국립의료원에서는 탈북민들의 정착에 도움을 주는 민간단체인 새조위와 함께 탈북민 상담실을 만들었는데요. 제가 그 상담실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많은 탈북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희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죠. 영희 씨의 경우 몸이 안 좋아서 국립의료원에서 검사를 받았던 건데 검사 결과 자궁근종 진단을 받았거든요.

김인선: 여성에게 흔하게 생기는 종양이 바로 자궁근종이죠. 35세 이상의 여성 중 약 20%가 가지고 있다고 해요. 문제가 있을 때만 치료하고 심각할 경우엔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마순희: 네, 자궁근종은 평생 수술을 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여성들도 있지만 심각한 경우에는 수술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영희 씨도 수술을 받게 됐고요. 수술 경과는 좋았지만 적어도 20일 이상 안정을 취하고 경과를 봐야 했는데 영희 씨는 하루 빨리 출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업체의 통보를 받고 한 주일도 못 돼서 다시 출근했습니다. 몸 관리를 하지 않고 무리를 해서 인지 영희 씨는 어느 날 출근길에 쓰러졌고 병원으로 실려 오는 지경이 됐습니다. 결국 영희 씨는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해서 재수술을 받는 등 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김인선: 아무리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아도 건강이 우선이죠. 재수술을 하고도 일하러 가겠다고 또 무리한 건 아니었나 걱정이네요.

마순희: 입원치료를 받은 덕분에 무리를 하진 않았습니다. 한 달 넘게 치료를 받은 후 건강은 회복했지만 영희 씨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급여가 적더라도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영희 씨는 한 통신업체의 구내식당에서 근무하게 됐는데요. 중국에서도 회사식당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기에 큰 무리없이 업무를 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짜여진 근무시간 때문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생겼고 식당에서의 교대근무가 몸에 부치기도 했습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려면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고, 그 시간이 몸에 좀 익을 만 하면 교대근무로 오후에 출근해서 직원들의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하다 보니 생활이 규칙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병원에 입원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요양보호사가 생각났답니다. 자신도 자격증만 있으면 능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식당 일을 하는 짬 시간을 이용해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일하면서 공부하는 일.. 젊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더군다나 영희 씨는 2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진 상태고요.

마순희: 일 끝나면 쉬고 싶고 짬 시간이 나면 놀고 싶은 게 보통의 마음이라면 목표가 생기니까 그런 마음이 싹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고 싶어서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자신의 계획을 세운 영희 씨는 일하면서 자격증도 땄고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도 알아봤습니다. 영희 씨는 1분 1초도 헛되게 쓰지 않으며 이직할 준비를 하나하나 갖춘 겁니다. 자격증 취득 후 한주일도 못 돼 영희 씨는 요양병원에 요양보호사로 취직했고 금년에 4년차가 되었습니다.

김인선: 한국의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인들의 요양과 재활을 전문적으로 책임지는 요양병원이 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요. 자격증 취득한 지 1주일 만에 취직이 될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마순희: 그만큼 이 부분에 대한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아닐까요? 지금 한국의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739만 명이라고 하는데 2025년이면 1000만 명을 넘고 2035년에는 1500만 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더라고요. 지난해 자료를 기준으로 요양원 등 입소 시설만 보면, 등록된 전체 시설 수는 5326곳인데 개인이 운영하는 시설만 3872곳으로 전체의 72.7%에 달한다고 합니다. 고령화 사회다 보니 앞으로도 사설 요양시설은 더 늘 것 같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그래서 한국정부에선 2008년 노인 장기요양 보험제도를 도입했어요. 노인 돌봄을 개인이 아닌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건데요. 이런 제도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었어요. 물론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요.

마순희: 네. 하지만 정부의 지원금으로 돌봄을 받는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기 어렵고,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인들은 국가의 보조를 받아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집으로 방문하는 재가요양보호사들에게 요양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기준으로 15만6435명이 요양원을, 41만930명이 방문 요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노인요양 분야는 수요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취업 전망이 좋아서 탈북민들도 많이 지원하고 실제로 일을 하고 있답니다. 저도 회사를 퇴직한 후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교육받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몇 년 전에 취득했거든요. 요양보호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으니까 제 건강이 허락한다면 저에게 맞는 일을 언제까지라도 할 수 있는 준비를 한 겁니다. 특히 이 자격증이 있으면 가족을 돌보면서도 보호사 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어서 너무 필요한 자격증인 것 같더라고요.

요양보호사는 무엇보다도 전문 지식을 갖춘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치료와 보호, 돌봄을 할 수 있어서 대우가 좋습니다. 할 일이 많을수록 혹은 돌봄 시간이 길어질수록 로임이 많고 또 환자나 보호자들이 신뢰를 해줍니다. 그런 차이 때문에 간병일을 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많습니다. 4년차 요양보호사 박영희 씨는 이제, 웬만한 간호사들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업무에 능통해졌습니다. 하지만 영희 씨의 노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최근엔 영양사 자격증까지 취득했고요. 지금은 운전면허증 취득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있는데요. 봉사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식어갈 수도 있는 삶의 열정을 되살려 주고 내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김인선: 고난이 계속되면 의욕이 떨어지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 것 같거든요. 그런데 박영희 씨는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마주하고 싸우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싸움에서 결국엔 승리하네요. 여러분도 그리고 저도 영희 씨처럼 자신의 인생 승부에서 지지 말고 꼭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