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5월은 노동자의 날부터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한국에서 행사가 참 많은 달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이맘때면 주말마다 잔칫날처럼 여기저기 북적였는데, 올해 5월은 집안행사는 물론이고 지역과 국가별 행사도 취소돼 조용합니다. 남다른 방역으로 코로나비루스로부터 가장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이지만 일상으로의 복귀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이뤄지고 있어요.
마순희: 네. 그래도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TV를 켜면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있는지 소식들을 접하게 되는데요. 남한은 정부와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코로나19에 잘 대처하고 시민들의 협조도 함께 하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더라고요. 최근 이태원 관련한 확진자 문제로 다시 긴장을 했는데 접촉자에 대한 검사 등 빠른 대처 덕분에 금세 안정화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너무 다행입니다.
우리 탈북민들도 일상생활로 많이 복귀를 했어요. 물론 아직 코로나19가 종식된 것이 아니기에 방역수칙 등 지킬 것은 지키면서 말이죠. 탈북민 지원단체와 대안학교 등 각 기관 역시 그동안 잠시 멈췄던 사업들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역시 일상회복이 반갑다고 하는데요. 취업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강영숙 씨입니다. 영숙 씨는 1998년 함경북도를 떠나 중국에서 14년을 살다가 2012년에 13세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고 지금은 인천의 한 다문화사업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김인선: 강영숙 씨가 소속된 ‘다문화사업소‘가 청취자분들에겐 낯선 단어일 것 같은데요. 쉽게 말해 다른 나라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곳이라고 하면 될까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강영숙 씨가 근무하는 다문화사업소는 다양한 문화권의 이주민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통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영숙 씨는 그곳에서 취업을 돕는 상담사로 일을 하는데 탈북민 뿐 아니라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서 살게 된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죠. 나무심기, 나눔장터, 다문화축제 등 전체적인 행사를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평소엔 다문화 사람들보다 탈북민들을 주로 만나게 됩니다. 영숙 씨가 맡은 업무가 탈북민들을 위한 사업이니까요. 특히 취업상담사로 지역에 정착하는 탈북민들의 취업에 대한 상담과 취업알선, 그리고 회사면접까지 함께 갈 정도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영숙 씨를 만나려 찾아 간 날은 일요일이어서 사업소가 아닌 인천에 있는 한 교회에서 만났는데요. 남한사람, 탈북민, 필리핀 사람, 우즈베키스탄 사람 등이 모여 있었습니다. 주말에도 영숙 씨는 다문화 사람들과 함께 하더라고요. 평일엔 다문화사업소에서,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식사도 하고 식당봉사도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강영숙 씨가 자신을 만나려 왔다고 저를 소개하자 교회 관계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서로 반갑다고 인사하고 우리 영숙 씨 같은 사람이 드물다면서 홍보를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영숙 씨가 얼마나 사람들 속에서 잘 어울리고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답니다.
김인선: 사람들이 영숙 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벌써 느껴지네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걸 보면 성격 좋은 건 알겠는데요. 사실 상담사라고 하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잘 알아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거잖아요. 정착 8년이면 가능한 건가요?
마순희: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죠.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한국에 어느 정도 정착을 잘 해야 상담사로 일할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알려주려면 내가 열 가지를 알아야 된다는 말이 있거든요. 상담사는 본인이 많이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강영숙 씨의 경우 정착 초반부터 상담사의 기질이 보였던 것 같은데요. 2012년에 입국했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숙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처음 나왔을 때부터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지역정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역사회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도 해주고 도움을 주는 하나센터 상담사분들의 조언대로 생활한 것이 초기정착을 잘한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영숙 씨는 말하는데요. 그 뒤엔 영숙 씨만의 숨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영숙 씨는 중국에서 14년을 살면서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와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나원을 나와 인천에 집을 배정받고 난 후에 만난 지역 하나센터 상담사와 상담을 하면서 삶의 계획을 세웠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기본적인 교육을 성실하게 참가했던 것은 물론이고 교육이 끝난 후에도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컴퓨터 학원부터 다녔습니다. 그리고 10개월 후에 남동공단에 있는 공업용 기계를 제작하는 회사에 취직해 4년간 성실하게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영숙 씨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회사를 다니며 인터넷상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사이버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은 물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김인선: 영숙 씨도 그렇고 많은 탈북민들이 현재 주어진 일을 하면서, 언젠가 이루어질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며 준비를 하더라고요. 영숙 씨에겐 언제 자신이 원하던 기회가 찾아왔을까요?
마순희: 영숙 씨에겐 행운이 따랐나 봅니다.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다니던 회사를 바로 그만둔 것도 아니었고 예전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어느 날, 거주하는 지역 다문화사업소에서 탈북민 취업상담사를 모집한다는 구직 공고를 접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영숙 씨가 공고를 접한 날이 서류접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늦었다는 생각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숙 씨는 최선을 다해 서류를 준비했고 마감 직전에 신청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직업상담사가 되려면 심리학, 교육학, 사회복지학 등을 전공하면 유리한데 영숙 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했고 자격증 취득을 했기에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영숙 씨는 서류합격이 됐고 이후 면접시험을 거쳐서 취업상담사로 취직하게 된 것입니다. 늦었다는 생각에 서류제출 하는 것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영숙 씨는 없었을 겁니다. 취업 후에도 영숙 씨는 탈북민들의 취업을 위해서 항상 발로 뛰면서 한 건 한 건 취업을 성공시켜 나갔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친절하고 봉사성도 남다른 영숙 씨의 면모가 빛나게 된 거죠.
김인선: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는 기회였네요. 가만 보면 성공한 탈북민들은 일과 공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것 같아요. 모두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씩 이뤄내는데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엔 몇 배로 더 힘든 과정을 거치는데 영숙 씨도 13살 된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고 했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정착하는 것과 함께 자녀의 정착까지 함께 마음을 써야 하기에 더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도 있답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어서 포기할 수 없고 오히려 더 힘을 내서 정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영숙 씨가 바로 그런 사례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영숙 씨는 2012년에 한국에 입국할 때 중국에서 낳은 13살 어린 딸과 함께 왔는데요. 영숙 씨에게 딸은 믿음직한 동반자였고 친구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김인선: 딸은 클수록 엄마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친구라고 하는데 영숙 씨와 영숙 씨 딸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이기에 더 힘을 내는 강영숙 씨의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지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