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비루스로 일자리 걱정이 참 많은데요. 한국 정부(고용노동부)에서는 올해 처음 국민취업 지원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청년, 저소득 구직자, 중장년 등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위한 제도인데요.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5월 한 달간 집중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요. 참여자들에게 개인별 취업활동 계획부터 직업훈련, 경험프로그램 등 다양한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요. 탈북민 취업지원센터 등 대상자별로 찾아가는 설명회를 열기도 하니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취업에 필요한 직업훈련을 거쳐서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있더라고요. 바로 정보인데요. 자신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취업 정보를 잘 알아야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정보인 만큼 취업을 원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알려드려야겠습니다. 북한 같으면 졸업하거나 제대하거나, 아무튼 일을 해야 할 조건이 되면 쉬고 싶어도 의무적으로 직장에 배치가 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지만 한국에서는 누가 찾아와서 일하라고 일자리를 알선해 주지는 않기 때문에 취직을 하려면 본인이 일할 곳을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김인선: 직접 방문도 좋은데요. 수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취업 관련한 자료가 많으면 비교를 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니까 시간 투자는 필수죠. 정보가 곧 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우리 탈북민들도 마음만 먹는다면 취업정보는 얼마든지 알 수 있는데요. 정보라는 게 워낙 다양해서 인터넷 검색 등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보 중엔 남북하나재단이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탈북민 버스운전자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 버스운전자 양성’ 사업인데요. 탈북민이 직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협약 대로 첫 사업이 시작됐고 이달 말, 5월 31일까지 60명의 지원자를 모집하는데요. 지원자에게는 대형 운전면허자격 취득비와 교육비, 교육 기간 동안 중식비 등을 제공하고 운수회사로 취업연계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탈북민들, 특히 남성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북한에서는 먹고 사는 데 운전수만한 직업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에 처음 정착하는 탈북민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물어보면 일반적으로 여성분들은 사무직, 남성분들은 운전직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은 탈북 남성들이 선호하는 운전직, 개별 용달사업을 하고 계시는 이정철 사장님에 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정철 씨는 한국나이로 52세입니다. 2005년에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일용직과 식당, 회사근무 등 여러 가지 일을 7년 정도 해 오다가 2013년부터 경기도의 한 지방도시에서 개인 용달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탈북 남성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의 하나가 운전하는 일이지만 필요한 자격요건을 갖춰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정철 씨가 북한에서 운전수였을까요?
마순희: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함경북도의 한 탄광에서 일하던 탄광 노동자였습니다. 50대 이상의 탈북민이라면 비슷하겠지만 이정철 씨는 먹고 사는 문제, 특히 어린 자녀에게 쌀밥 한 번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정철 씨에게는 먼저 탈북해서 한국에 계신 형님이 있었는데 가끔씩 통화도 하고 금전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도움을 받을 때뿐이지 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습니다. 2004년, 도움을 받고 싶으면 중국으로 건너오라는 형님의 전화를 받고 정철 씨는 혼자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가정의 사정을 묵묵히 듣고 있던 형님은 느닷없이 그렇게 힘들면 북한으로 돌아가지 말고 한국으로 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망설이기도 했지만 정철 씨는 가족들도 후에 모두 데리고 간다는 마음을 다지고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길엔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르겠지만 형님이 브로커를 알선해 주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덕분에 무사히 한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는데요. 이정철 씨가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아내와 여섯 살 된 아들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북쪽에 있는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어도 브로커 비용부터 안전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하는 탈북민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과 비교해 보면 정철 씨는 정말 복이 많은 분인 것 같아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정철 씨의 가장 큰 행운은 좋은 브로커를 만났다는 겁니다. 두 사람은 긴 시간 한국행을 하면서 위험한 고비를 수없이 넘겼고 그 과정에서 믿음이 두터워졌던 것 같습니다. 정철 씨의 진실한 마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브로커가 잘 알게 되었던 거죠. 당장은 정철 씨가 무일푼이지만 한국에 가면 정착금도 받을 수 있고 또 성실하게 일해서 브로커 비용을 낼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브로커는 정철 씨의 부탁대로 가족을 한국으로 올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정철 씨는 자신을 믿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기에 약속대로 브로커 비용을 다 셈해 주었다고 합니다. 3개월을 사이로 가족이 모두 무사히 한국에 오게 됐으니까요. 정철 씨는, 온 가족이 무사히 한국에 와서 함께 살게 된 것보다 더 큰 행운은 다시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김인선: 정말 돈 주고도 못 살 큰 행운이죠. 초기 정착의 어려움도 그런 행운과 함께 잘 헤쳐나가셨을까요?
마순희: 네. 우리 탈북민들 누구나 다 그러하긴 하지만 특히 혼자 한국에 온 남성들인 경우에는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혼자라는 외로움이라고 하는데 정철 씨에게는 가족이 옆에 있었습니다. 정철 씨에게도 정착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힘들 거라고, 그래도 자신은 가족이 옆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이겨나갔다고 합니다. 정철 씨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인들 못 하랴 하는 마음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하루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일용직으로 공사현장에서 일을 했는데요. 벌이가 괜찮은 만큼 노동 강도도 세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정철 씨는 육체적으로 조금은 수월한 곳을 택했는데요. 닭을 푹 곤 보양식, 삼계탕 집에서 일했습니다.
정철 씨는 그렇게 조금씩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 안정을 찾았다고 하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 경사가 찾아왔습니다. 정철 씨의 둘째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정철 씨는 가족을 위해 정규직으로 회사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철 씨는 지인들의 소개로 괜찮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생산직이라 일이 힘들기는 했지만 4대보험이 적용되고 주 5일 근무에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서 일하면서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김인선: 맞아요. 일하다가 다쳐도 회사와 사회로부터 각종 보장을 받을 수 있고 고용도 안정적이라 누구나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을 선호하게 되죠. 그런데, 이정철 씨가 개인 용달사업을 하는 분이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바라던 4대보험이 적용되는 회사를 그만둔 이유가 뭘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