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코로나비루스가 잠잠해지고 있다 하지만 생활 곳곳에 여파는 계속되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용충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줄었고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들은 늘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취업상담사를 찾는 분들이 참 많죠. 취업상담사 강영숙 씨는 어떨까 궁금하네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취업상담사 강영숙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게요.
마순희: 네. 영숙 씨는 1998년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14년을 살다가 2012년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딸과 함께 말이죠. 중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에 대한 소식을 많이 접했기에 한국정착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영숙 씨였지만 막상 와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초기정착 교육기관 하나원에서 지내면서부터 뭐든 열심히 배웠고 사회로 나와서도 지역사회 정착지원기관 하나센터에서 해주는 기본적인 교육을 성실하게 참가했습니다. 낮에는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고 밤에는 부업을 하며 지내다가 10개월 후 남동공단에 있는 공업용 기계를 제작하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인터넷상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사이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일도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영숙 씨는 원하던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영숙 씨가 원하던 일이 바로 인천지역 다문화사업소의 직업상담사였습니다. 4년간의 회사생활을 한 뒤 직업상담사가 되기까지, 영숙 씨 뒤엔 든든한 조력자, 딸이 있었죠?
마순희: 네. 영숙 씨는 딸의 응원 속에서 결코 쉽지 않은 4년이라는 대학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취업상담사로 취직할 때 역시 딸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탈북 여성들 중에는 자녀와의 불화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영숙 씨 모녀의 경우엔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시간 날 때마다 대화도 많이 하면서 마음을 챙기더라고요.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습니다.
김인선: 영숙 씨에게 딸은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영숙 씨가 아이를 양육하면서 일도 하는 엄마이기에 탈북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잘 연결해 줄 것 같거든요.
마순희: 그렇죠. 자신이 직접 경험해봤기에 세심히 살펴주고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동안의 회사경력, 그리고 봉사활동 경력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현장에서 상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요. 무엇보다도 아이의 학원비라도 벌고 싶은 부모의 간절함을 잘 알았기에 적합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애썼다고 합니다. 영숙 씨는 취업상담사가 되기 전 주말에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 싶으면 청소만 해주기를 원하는 가정집에서 집안청소를 하는 일을 하기도 했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몇 시간 집안일을 해주고 받았던 돈을 모아 딸에게 맛있는 간식을 사줄 때, 혹은 생활비에 보탤 수 있을 때 영숙 씨는 소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는 즐거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영숙 씨는 취업상담사 일을 더 열심히 했고 취업상담사로 4년을 근무하면서 행복한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좋은 분을 소개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업체들의 전화를 받을 때와 취업에 성공하도록 도움을 준 탈북민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면서 고마웠다고 감사의 전화를 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강영숙 씨인데요. 최근엔 코로나19 여파로 영숙 씨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김인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어요. 모두를 다 사랑하고 관심 있어 한다는 뜻인데요. 자식들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더 아픈 손가락도 있고 덜 아픈 손가락도 있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요. 왠지 영숙 씨에게 이 말이 적용될 것 같아요. 많은 상담자를 만나니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영숙 씨가 속한 곳이 다문화사업소이지만 영숙 씨가 맡은 업무는 탈북민 취업상담이기에 주로 만나는 내담자들은 같은 탈북민인데요. 상담을 하다 보면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안쓰러운 사례자도 있고 상담으로 그냥 끝나는 사례자들도 있답니다. 한 번에 취업까지 해결되는 만족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요. 그런 경우에 더 안쓰럽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북한에서 조카사위가 왔는데 일자리를 찾는다고 강영숙 씨에게 연결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카사위는 북한에서 직행해서 한국에 온 경우라 중국이나 3국에서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한국에 온 다른 탈북민들보다 더 어려웠다고 하더라고요. 취업훈련을 거치지 않고 그냥 일부터 하겠다고 하는데 경력이나 능력이 없다 보니 회사에 소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거죠. 제 부탁이라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도 취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숙 씨는 포기하지 않고 함께 현장들을 돌아보면서 제 조카사위에게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고 결국 세 번 만에 회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김인선: 많은 분들의 취업을 도와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기억하긴 어렵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구직자는 누굴까... 궁금하네요.
마순희: 영숙 씨는 취업상담을 했던 모두를 기억한다고 하는데요. 가장 인상에 남았던 구직자는 한국에 온지 두 달 됐던 젊은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영숙 씨를 찾아온 그 청년은 2개월 동안 냉풍기(에어컨) 고치는 기술자를 따라다니며 일한 경험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수리하고 고치는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청년은 하루 일당으로 한국돈으로 10만 원, 그러니까 80달러 이상 받는 일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부인이 임신해서 돈을 벌어야 된다며 냉풍기 고치는 기술 같은 것을 배워서 전문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영숙 씨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청년의 말 속에 간절함이 묻어있는 것 같아 영숙 씨는 원하는 일자리를 열심히 알아봤습니다. 다행히 냉풍기 설치 기사를 원하는 회사와 연결이 되어 그 청년은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청년이 영숙 씨의 기억에 더 오래 간직된 이유는 한 통의 전화 때문입니다. 청년을 소개해 준 회사사장이 좋은 기술자를 보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일도 잘하고 배우려는 의지도 높은 청년이라며 감사하다고 영숙 씨에게 연락을 해왔던 겁니다. 열심히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좋은 직업을 소개하고, 성실하고 재능 있는 직원을 찾는 사장에게는 좋은 사람, 좋은 동료를 소개할 때 영숙 씨는 자신의 직업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김인선: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고 말이죠. 하지만 반대 쪽 얘기를 들어보면, 그러니까 직원을 채용해야하는 회사 측에선 일할 사람이 없다고 말을 하거든요. 구직자와 구인업체의 눈높이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탈북민들은 어떨까요?
마순희: 강영숙 씨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을 뿐이라고요. 영숙 씨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이치로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데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회사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직원을 채용하게 되면 직원에게 어떻게 해 줄 수 있는지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말이죠. 종업원 한 명 한 명을 진실로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키워주는 회사, 즉 좋은 회사라고 하면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숙 씨 같은 취업상담사들은 무엇보다 한국의 회사들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탈북민들에게는 한국의 노동시장과 근로법 등 근로조건, 근로혜택 등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직업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그 직업을 위해 어떤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탈북민들을 위한 취업지원제도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김인선: 그래서 영숙 씨 같은 직업상담사의 역할이 중요하죠. 취업과 관련된 정보, 관련 지식 등을 많이 알아야 구직자들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으니까요. 5년차 직업상담사 영숙 씨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까지 이어져야 할 것 같네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