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삶, 요양보호사 신영화 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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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코로나비루스의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요. 지금이 ‘위기’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이전보다 더 빠르게 확산이 되고 더 높은 감염률을 보이는데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숨기기가 참 어렵네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은 코로나비루스 방역에서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선진적이고 모범적이라고 따라 배우는 나라들도 많아서 긍지가 높았었는데 요즘 또 새롭게 확산이 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지난 14일부터 계속해서 신규확진자수가 세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어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를 실시하고 있잖아요.

김인선: 맞아요. 사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강제적인 봉쇄조치 없이 다 같이 조심하면서 코로나 감염수치를 꾸준히 낮춰왔는데 한 교회의 집단감염으로 사회적거리두기 3단계까지 생각하는 상황이 됐어요.

마순희: 네. 그동안 코로나비루스가 조금은 잠잠해지는 것 같아서 잠시 느슨한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소모임이나 여러 행사들도 조금씩 계속해 왔었는데 방역수칙을 나름대로 지키면서 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태한 생각이 아니었나 자책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탈북민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심하면서도 회사에 다니고 또 가끔씩은 가족단위로 여행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긴 저희 가족도 지난 주말에 소풍을 나갔었는데요.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물론 모두 마스크들은 하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음식을 시켜 먹거나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찻집에서 혹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니 그런 때에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김인선: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날씨가 더워지면서 마스크 착용도 소홀한 사람들이 늘었고요.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마스크 착용과 자주 손 씻기 등 기본 방역수칙을 무조건 준수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단체 생활하는 분들이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도 지금 노인들의 재활을 돕는 재활실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매일 아침 소독제로 손닿는 곳은 다 닦아내면서 전체적으로도 소독을 하고 또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루 세 번 혈압, 체온 측정도 하고 마스크착용도 생활화 하는 등 최선을 다 하고 있답니다. 여럿이 생활하는 곳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특히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리려는 성공시대의 주인공도 저와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주도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인데요. 제주도에 정착한지 올해로 13년차인 신영화 씨가 오늘의 사례자입니다.

김인선: 성공시대에서 요양보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을 정도로 탈북민 중에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요. 대부분 60대 후반으로 나이가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오늘의 주인공 신영화 씨는 어떤가요?

마순희: 신영화 씨는 1963년생으로 올해 58세입니다. 우리 성공시대에서 요양보호사로 소개됐던 분들 거의가 60-70세 이상 되신 분들이었다면 영화 씨는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게다가 대부분 다른 일들을 하다가 요양보호사가 됐다면 신영화 씨는 처음 제주도에 정착해서 시작한 일이 요양보호사였거든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니까 40대에 요양보호사가 된 거죠. 당시 젊은 탈북민들 대부분은 대학을 가든가 정규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취업준비를 했습니다. 사실 그 나이에 요양보호사를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김인선: 드물죠.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도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직업교육, 예를 들어 미용 전문가라든가 제과제빵 전문가 그리고 커피 전문가를 양성하는 바리스타 과정을 선호한다고 들었어요. 5-60대 탈북민도 바리스타로 취업하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신영화 씨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마순희: 네. 신영화 씨는 하나원에서 여러 가지 직업교육을 받았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을 때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요양보호사 교육 중에 실습과정이 있잖아요? 영화 씨는 하나원에서 교육받을 때 노인들을 돌보는 실버케어센터에 가서 실습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요양보호사일을 해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 모두가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들을 정성껏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교육을 받아 봐도 영화 씨는 요양보호사일만큼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고민 없이 요양보호사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어르신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정신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하던 어느 요양보호사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는 영화 씨입니다.

김인선: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오면 주택배정을 받잖아요. 대부분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을 선호하는데 신영화 씨는 제주도를 선택했네요?

마순희: 워낙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주택지를 배정받으면 함께 어울려 지내며 허송세월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원에서 거주지를 신청할 때에 제주도를 거주지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신영화 씨는 혼자 힘으로 정착하면서 전단지를 통해 요양보호사양성교육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하나원에서 교육도 받고 관련 자격증 취득시험까지 볼 수 있지만 10여년 전에는 기본적인 교육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원을 나오면 자격증이 필요한 경우 다시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영화 씨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필요하다는 생각에 교육신청을 했지만 난생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과 상황 설명들이 이해 안 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씨는 나름 열심히 배웠고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당시에는 요양보호사의 경우 교육을 받게 되면 따로 국가시험을 보지 않아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기에 교육시간에 충실하면 충분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한 신영화 씨는 제주의료원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고 매일매일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기다리던 합격통지서를 받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영화 씨는 제주의료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답니다.

김인선: 고령화가 되면서 인생은 60부터다.. 라는 말이 생겨났거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신영화 씨가 지금까지 근무한 기간보다 앞으로 근무해야 할 기간이 더 길잖아요. 계속해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려면 체력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순희: 자기 건강관리는 기본이죠. 게다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나이에 따른 체력한계는 누구나 겪는 일인데요. 적어도 요양보호사로서 느끼는 체력한계는 전혀 없습니다. 60대 이상의 분들도 요양보호사일을 시작할 만큼 무작정 힘쓰는 일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건강이 좋지 않은 탈북민들도 많기는 하지만 다행히 영화 씨는 건강에 큰 이상 없이 지금까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일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긴 합니다. 여러 어르신들을 돌보고 때로는 대소변을 치우고 기저귀를 가는 일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기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항상 긴장하며 지켜봐야 하는 일이 더 크다고 할까요? 막중한 책임감으로 심적인 부담감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13년째 요양보호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2007년 한국에 입국해서 요양보호사일을 바로 시작했고 처음 시작한 그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그 시간만으로도 신영화 씨가 얼마나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는지가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김인선: 근면, 성실... 이런 생활습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타고난 성품, 성향이고 다른 하나는 큰일을 겪으면서 변화된.. 한마디로 살기위해 만들어진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거든요. 신영화 씨는 어떤 분일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가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