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힘이다, 포도농사꾼 김명옥 씨 (1)

사진은 충북 영동의 한 포도농장.
사진은 충북 영동의 한 포도농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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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남한에선 많은 주부들이 애들 재워놓고 절절한 사랑 얘기 가득한 드라마 보는 걸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주인공 중에서도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을 특히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이번 성공시대 주인공이 드라마 주인공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인생은 역전의 드라마'라는 말이 있던데 오늘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인생역전을 이루어낸 김명옥 씨입니다. 북한에서 살 때는 기업소에서 통계원으로 일했던 그녀가 지금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포도농사를 하고 있는데요. 통계원이 과일농사 전문 농사꾼이 되기까지 명옥 씨야 말로 인생역전의 주인공인 거죠.

김인선: 보통, 인생역전의 주인공을 보면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고 어렵게 성공을 했더라고요. 명옥 씨는 어떤가요?

마순희: 그렇죠. 기업소에서 통계원으로 일했던 명옥 씨에게 닥친 첫 번째 좌절은 탄광 노동자로 일하던 남편이 사고로 사망한 것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기업소가 합치면서 통계원 자리도 잃게 된 일이었습니다. 명옥 씨는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면 배급소 출납원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반 기업소에서는 배급이 완전히 끊겨서 쌀 구경할 수 없어도 탄광만은 가끔이라도 배급이 나왔기에 배급소에서 출납원으로 일하면 밥을 굶을 걱정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있는 재산을 다 털어 모아서 당시에 힘 있다는 한 간부에게 뇌물을 고였는데 그 간부가 돈만 받고는 입을 싹 닦는 바람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고 돈만 날리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전 재산을 다 날렸어도 명옥 씨는 좌절할 수 없었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기에 두 자녀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돈을 많이 번다고 소문이 난 혜산으로 돈벌이를 떠났는데요.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져서 결국 중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명옥 씨는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돈 벌려 왔다고 말할 정도로 천진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서 북한에 내 보내면 식구들이 그 돈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아글타글 모아 내보낸 돈은 화폐개혁으로 휴지조각이 됐고 브로커들의 사기 등으로 돈만 날리는 상황이 되자 차라리 자녀들을 데려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명옥 씨는 오랜 노력 끝에 2011년 12월에 두 자녀를 데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꿈꾸던 명옥 씨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하나원을 나와 경기도 김포에 정착을 시작한 명옥 씨는 근처 자동차 관련 공장에 취직을 했는데 회사에 취직한 3일째 되는 날 뜻하지 않은 사고로 왼 손 네 손가락을 잃게 되는 대형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인선: 그런 날벼락이 있을까 싶네요. 일 시작한지 3일 만에 다친 거면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위험한 일을 했던 거 아닌가요?

마순희: 맞습니다. 명옥 씨는 한국에서 잘 정착하려면 무슨 일이라도 다 경험해 봐야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취직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원을 나온 첫날부터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했다는데요. 정착 6개월 정도 지난 후에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직해서 철판 절단 작업을 하는 일을 했는데 '아차'하는 순간의 부주의로 네 손가락 절단이라는 대형 사고가 생긴 겁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김인선: 남한의 전체 장애 인구 중 90%는 사고나 질병에 의해 후천적인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인데요. 대부분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가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다고 말하더라고요. 명옥 씨도 그랬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성한 사람도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이제 장애인이 되었으니까요. 또 혼자도 아니고 두 자녀까지 있으니 공부를 시키면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서 매일 술을 마시기도 했답니다. 명옥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몇 번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만큼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갔습니다.

김인선: 그럴 때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고향 생각도 많이 났겠어요.

마순희: 그렇죠. 하지만 다행인 건 명옥 씨에게는 남북하나재단의 담당 전문상담사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탈북민들이 정착과정에서 접하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전문상담사는 남한 전 지역에 다 있는데요. 명옥 씨 담당 상담사 선생님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엄마가 그렇게 맥을 놓고 있으면 두 자식은 어떻게 하냐며 함께 울어주기도 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도 해주며 명옥 씨를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른 명옥 씨는 하나재단의 상담사의 주선으로 컴퓨터학원에 등록하고 불편한 손으로 어렵게 세무회계 자격증도 땄습니다. 자격증 취득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습니다. 세무회계 자격증이 있어도 장애가 문제가 된 거죠.

김인선: 사실 남한에서도 요즘에야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권익보호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그래도 아직까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고들 하죠.

마순희: 네. 그렇더라고요. 저도 명옥 씨의 일로 관심을 갖고 알아봤더니 남한의 보건복지부에서 3년 간격으로 장애인 실태조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지난해 자료를 보니 '취업을 하기도 쉽지 않고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에 있어서 차별이 있다고 느낀다'는 장애인이 79.9%였습니다. 2014년의 경우 72.6%였으니 7.3%가 더 높아진 거죠.

잘 살아보겠다고 두 자녀까지 데리고 대한민국에 왔는데 졸지에 생각지도 않았던 불의의 사고로 네 손가락을 잃고 장애인이 되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도, 주변에서 느껴지는 차별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여기 저기 자격증을 들고 취업을 시도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았고 자신만을 바라는 철없는 두 자식을 생각하면서 무조건 이겨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봤지만 안 되더랍니다. 매일이다 시피 술을 마시고 운동량도 줄어드니까 몸무게가 70키로가 넘어섰고 반복되는 좌절감에 다시 우울증 증세를 보였습니다.

김인선: 우울증.. 심리적 고통이 크다보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해야겠지요.

마순희: 그렇죠. 모든 것이 불의의 사고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증은 더 심해져갔고 더는 김포에서 살고 싶지 않더래요.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먼 전라북도 익산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상황은 매 한 가지였습니다. 세무회계사 자격증을 들고 고용지원센터, 희망리본일자리센터를 비롯해서 전북 장애인일자리센터 등 여러 곳을 찾아 다녀봤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고 도무지 명옥 씨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또 다시 좌절하고 힘들어 했겠네요.

마순희: 다행히 그때마다 명옥 씨가 무너지지 않도록 따뜻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전문상담사 송은하 씨였는데요. 대한민국에는 그 보다 더 한 중증장애인들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다면서 명옥 씨에게 끊임없이 희망과 용기를 줬답니다. 명옥 씨가 취업을 하려고 여기저기 발 닳게 뛰어다니다가 실망할 무렵 송은하 상담사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는데요. 혹시 귀농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먼저 온 탈북 선배들 중에는 귀농을 해서 성공한 사례들이 많다면서 귀농을 해보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묻더랍니다. 처음엔 잠시 망설였지만 상담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상담사와 함께 귀농귀촌센터를 찾아가서 상담도 받고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직접 농가들을 찾아다니면서 농사에 대해 이야기도 듣고 선도농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포도농사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했답니다. 늘 곁에서 힘을 주는 송은하 상담사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 같다며 명옥 씨는 그분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김인선: 그래서 '사람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나 봐요. 북쪽에선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남쪽에선 사람에게 힘을 얻는 김명옥 씨. 지금은 포도농장 주인이 된 그녀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