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바꿀 수 있다, 공무원 송은수 씨(2)

강원도농업기술원 자원봉사단체인 `정나눔회' 직원들이 춘천시내 저소득층 가정에 연탄 900장을 배달하고 있다.
강원도농업기술원 자원봉사단체인 `정나눔회' 직원들이 춘천시내 저소득층 가정에 연탄 900장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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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지난 시간에 이어 경기도 광명시청에서 근무 중인 시청 공무원 송은수 씨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을 공무원이라고 하는데요. 남한에선 인기직업 1, 2위를 다툴 정도로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랏일을 하고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또 점차 직급이 높아지면서 급여도 많아지니까요. 그렇게 다들 꿈꾸는 일을 송은수 씨가 하고 있습니다.

마순희: 맞습니다. 많은 탈북민들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쉽지 않지만 탈북민을 대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노력만 하면 가능하니까요. 가장 많은 탈북민이 살고 있는 경기도 지역에서 2008년도에 전국에서 최초로 탈북민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했고 남한 정부 차원에서도 탈북민이 300명 이상 거주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탈북민 공무원을 채용하도록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탈북민 공무원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겁니다. 채용 기준은 일반 공무원과 같지만 공고일 기준으로 국적취득 3년 이상이고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이어야 가능합니다. 제가 송은수 씨를 처음 만난 때가 2015년이었었는데 그때 은수 씨는 광명시청 소속의 한 동사무소에서 근무한지 4년 차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계약직이었지만 지금은 무기계약직으로 거의 정규직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김인선: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방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송은수 씨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거죠?

마순희: 네, 처음에는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담당으로 업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은수 씨가 하는 주 업무가 지역에서 생활이 어려우신 분들을 도와주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인데요. 일상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금품지원부터 주거안정에 필요한 집수리 등 다양한 일을 모두 다 담당하는 겁니다. 쉽지 않은 업무 탓인지 하나원 나올 때 51kg이었던 체중이 43kg이 되기도 했다는데요. 은수 씨는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사회복지사로의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인선: 제가 만나본 탈북민들 중에도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접하는 것이 사회복지 서비스이고 제일 먼저 상대하는 사람들이 사회복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저도 그랬었는데요. 한국의 사회복지구조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아졌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봉사정신만 있다면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사이버대학을 통해서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 어려운 문제도 아니니까요. 열심히 노력만 하면 가능하다 보니까 의외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김인선: 사회복지라는 게 아동부터 노인, 장애인까지 대상도 다양하고 분야도 다양해서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게 만만치 않잖아요?

마순희: 네, 그러니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죠. 송은수 씨 경우에도 퇴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퇴근은 또 다른 업무, 즉 공부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퇴근할 때 업무지침서나 참고서적들을 챙겨서 집에 오고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서 업무에 정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회복지 분야는 제도가 개선되거나 변경되는 경우가 많아서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업무를 원만히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송은수 씨가 한국에 온지 이제 10년 됐는데 일한 경력 역시 10년 차입니다. 처음엔 일반 회사 사무경리직으로 2년 일했고 그 다음 시청공무원으로 8년을 일했기 때문에 한국에 온지 10년, 일한 경력 10년이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공무원으로는 8년차, 이젠 전문가가 됐지만 처음엔 복지 분야를 처음 접했기에 은수 씨는 하나하나 배우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시간에는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배우는 것까지는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송은수 씨가 맡은 사회복지 분야는 탈북민 외에 남한 사람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말투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생기기도 했답니다. 한 번은 부부가 양육수당 관련해서 상담 받으러 왔는데 은수 씨의 설명을 못 알아들어서 두, 세 번 같은 질문을 하면서 은수 씨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또 한 번은 지역에서 복지서비스를 신청하신 어려운 세대를 방문해 실태를 확인하는 찾아가는 복지서비스에 동참하게 됐는데, 그때 방문한 가정은 어르신 양주가 사시는 세대였습니다. 생각없이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은수 씨의 말투를 듣고 탈북민이라고 느꼈나 봅니다. 자기 동생이 북한군에 사살되었다고 하면서 북한이라 하면 치가 떨린다면서 적대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어르신의 모습에 은수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는데요. 물론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방문 복지에 대한 정신적인 압박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김인선: 가정방문을 안 할 수도 없고…은수 씨가 어떻게 극복을 했을까요?

마순희: 남편이죠. 힘들고 마음 상한 일들이 있을 때마다 은수 씨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된 것은 처음 회사생활하면서 만났던 지금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은수 씨의 스승이자 인생선배답게 하나하나 한국생활에 대해 배워주고 북한의 이야기도 들어 주면서 마음을 풀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금슬 좋은 은수 씨 부부에게 선물처럼 예쁜 공주님도 태어났습니다. 이제 세 살이 됐는데요. 변함없는 남편의 사랑 덕에 은수 씨는 아이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경력단절 없이 공무원으로 계속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은수 씨가 출산 휴가 3개월 후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고 주위에서는 모두들 놀라워했답니다. 북한에서는 산전산후 기간만 끝나면 일하는 것이 거의 상식적으로 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출산 후에도 조리원이나 육아휴직 등 산모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으니까요. 은수 씨도 그런 혜택을 똑같이 받을 수 있었지만 은수 씨의 의지와 함께 남편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헌신을 바탕으로 빠르게 복귀했습니다. 사실 출산 후 3개월이면 아직 붓기도 채 내리기 전이라 출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귀여운 딸애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합니다.

김인선: 가정이 안정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은수 씨가 사회복지사 일에 더 전념할 수 있게 된 거네요. 물론 남편이 큰 힘이 되지만 송은수 씨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따로 있었다면서요?

마순희: 네, 은수 씨가 초기정착교육기관 하나원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특강으로 들어 온 어느 탈북선배가 강의에서 ‘우리가 하나원을 나갈 때에는 나이가 많건 적건, 배운 것이 있건 없건 똑 같이 빈손으로 나간다. 즉, 한국에서의 출발선이 같다는 말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따라서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은 서로 다를 것이다’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5년이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은수 씨의 5년은 컴퓨터 기술 자격이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물론이고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공무원이 되었으니 값진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출발선이 같았던 하나원 동기생들을 다시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면 은수 씨도 당당하게 자신의 선택과 노력과 결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은수 씨는 후배 탈북민들에게 한국에 정착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는 줄이고 정착경험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잘 정착해 나가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통일이 되면 고향땅에 한국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북한에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김인선: 지금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5년 후, 10년 후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무심코 흘려버렸을 말이지만 송은수 씨는 가슴 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실행했고요. 지나간 과거에서 아픔만 찾지 말고 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로 이끌어주는 좋은 선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요? 왠지 좀 더 나은 미래가 선물처럼 열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