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평균수명 100세 시대라고 하죠. 하지만 누구나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 신체적인 건강은 물론 정신적인 건강까지 잘 챙기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어떨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100세까지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우리 탈북민들도 예외는 아니고요. 하지만 북한에서보다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경우 의료상황도 열악하고 식량도 부족하기에 기대 수명이 한국과 비교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2021년 세계보건통계' 자료를 보면, 북한 주민의 기대수명은 2019년 기준 72.6세,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3세로 집계됐습니다. 한국인에 비해 북한 사람들이 10.7년 짧게 사는 것이죠. 성별로 보면 북한 남성의 기대수명은 69.3세, 여성은 75.7세였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약 6년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된 것입니다.
우리 탈북민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100세 시대에 걸맞게 건강을 되찾은 뒤 80대가 가깝도록 열심히 일도 하시고 사회활동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 60, 70대 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는데요. 오늘 성공시대에서 소개해 드릴 분도 마찬가집니다. 남편과 함께 2009년57세에 탈북해서 지금은 춘천에 살고 있는 이금희 씨인데요. 올해 69살입니다. 65살까지는 이것저것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며 지냈는데요. 65살이 되면서 수급자 등록이 되어 집에서 쉬면서 남편과 함께 여가생활을 즐기고 가끔씩 도시 미화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김인선: 네. 65살이 넘은 분들 중에 재산이나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이거나 근로능력이 없는 분들에게는 정부에서 기본적인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기초생활 수급제도가 있으니까요. 65살 이하라 하더라도 한부모 가정이거나 근로능력 여부에 따라 생계급여, 주거급여 등 다양한 지원이 가능하고요. 재산이 있어도 65세 이상의 분이면 누구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점차 개선되고 있습니다. 단, 개인의 요건 따라 지급되는 비용은 다르죠.
마순희: 맞습니다. 탈북민들은 탈북민 초기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오면서 정착금과 주거지원비를 받고 지역사회로 나오는데요. 탈북민들이 거주지 내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각 지역별 하나센터에서, 탈북민을 수급자로 지정해 최대 5년간 제도적으로 지원해 줍니다. 경제활동을 하고 안정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 주는 거죠. 5년 동안 지원금을 다 받았다 하더라도 건강문제 등으로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게 되면 다시 지원이 가능한데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고, 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이용을 못하는 탈북민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탈북청년들은 이런 제도적인 혜택을 잘 찾아 이용하는 편입니다. 생계급여와 교육급여, 의료급여 등 취업이 가능할 때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들 덕분에 정규 교육을 받고 있고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 하나센터나 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전화 상담을 해보는 것 등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적극성이 많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탈북민들이 경제활동이 가능해지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한국 사람과 똑같은 조건으로 권리와 의무를 행하게 되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소득에 따른 세금 납부와 건강보험의 혜택입니다. 이금희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서는 2년에 한 번씩 국가에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해주고 있잖아요? 금희 씨도, 금희 씨 남편도 병원에서 혈액검사와 신체 기관별로 내시경이나 초음파 등의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건강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 검진을 통해서 남편의 폐암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평소 건강했고 일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없었기에 금희 씨는 남편이 암 진단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발견 당시 암이 많이 진전되지 않은 상태여서 수술이 가능했습니다. 금희 씨 남편은 수술도 잘 받았고 지금까지 재발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완쾌됐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에요. 탈북민들은 국가에서 병원비 지원도 잘 되고 있어서 비용적인 부분에 있어서 큰 부담은 없었겠네요. 하지만 저도 지금 가족 중에 아픈 분이 있어서 잘 아는데요. 일하면서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병원에 오가는 일도 그렇고 다른 보호자가 함께 해주면 한결 수월할 텐데, 금희 씨는 어땠을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가족이 함께 하면 큰 힘이 되지요. 금희 씨에게도 끌끌한 두 아들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라고는 금희 씨와 남편뿐이기에 금희 씨는 남편이 폐암수술 받게 되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을 보살폈습니다. 폐암을 초기에 발견하기도 했지만 금희 씨의 이런 노력 덕분에 남편이 건강을 회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선: 부부 사이가 참 희한하더라고요. 남편은 남의 편을 줄여서 하는 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투닥거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의지하게 돼요. 특히 누군가 한 사람이 아플 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힘이 난다고 하는데요. 이금희 씨 부부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두 분은 한국에서 만나신 건가요?
마순희: 아닙니다. 북한에서 함께 탈북했다고 합니다. 금희 씨의 남편은 북한에서 잘 나가는 간부였고 금희 씨는 군부대에서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동네에서도 소문난 화목한 부부였었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겪고 그 과정을 함께 이겨냈기에 관계는 더 돈독해졌습니다. 금희 씨 부부는 비교적 무난한 삶을 살았는데요. 고난의 행군 이후로 생활이 조금씩 어려워지자 금희 씨는 중국에 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여권수속을 했고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에서 하루 일당으로 몇 달 동안 일하면 북한에서 일하는 것의 거의 몇 십 배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금희 씨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세상 형편을 너무도 모르고 살아온 자신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여권 기일이 다 되어 할 수 없이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이후에 다시 금희 씨는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수속을 밟기 어려워 여권도 없이 중국에 들어갔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얼마동안 돈을 벌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법행위로 되어 군대에 잘 복무하던 두 아들이 감정제대(불명예제대)를 하게 됐습니다. 집안을 위해 돈을 벌어 온 것이 죄가 되어 자식들의 앞길을 망쳐 놓았다는 생각에 금희 씨는 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돈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보내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오래 숨어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금희 씨 부부는 한국행을 결심했고 2009년 10월,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김인선: 앞서 금희 씨의 입국 당시 나이가 57살이라고 했었는데요. 예순을 앞두고 용기가 참 대단하신 것 같네요.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는 해도 예순 즈음이 되면 ‘이제 와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금희 씨는 처음 한국에 와서 어떤 도전을 하셨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주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