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사랑, 요양보호사 김희경 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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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선선한 가을 하늘이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요즘인데요. 이맘때가 되면 날씨가 좋다고 오랜만에 등산하다가 손목, 발목 다치는 경우가 늘죠. 특히 연세 있으신 분들은 날씨가 선선해지면 건강에 유의해야 하더라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여행을 하거나 산행을 하다 보면 사계절 다 좋기는 하지만 특히 가을철은 여행하기에도 건강관리하기에도 더 좋은 계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맑게 탁 트인 하늘과 서늘한 바람이 어서 오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아서 저절로 밖으로 나서게 됩니다. 아파트 단지 그 어디나 크고 작은 공원이나 유원지들이 있어서 평상시에도 산책을 즐기지만 산행은 또 다른 맛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짬짬이 산책하면서 걷기 운동도 많이 하고 더 나이 들기 전에 산행이나 여행도 즐기려고 하는데요. 물론 다치지 않도록 안전에 유의하면서 말입니다. 또 서론이 길어지는 것 같죠? 오늘의 주인공 소개해 드릴게요. 오늘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재가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60대의 김희경 씨의 사례를 전해 드릴까 하는데요. 희경 씨는 강원도 춘천에서 요양보호사로 7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요양보호사라면 성공시대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해서 이제 저도 잘 알아요. 치매나 중풍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돌봐 드리는 전문가잖아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증까지 취득해야 가능하니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요양보호사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인 김희경 씨는 요양보호사 자격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취득하기 쉽지 않은 간호조무사 국가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이 됩니다. 먼저, 노인복지시설 같은 특정 시설에서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보살핌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고요.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의 집으로 방문해서 보살핌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방문을 통한 요양보호사를 재가요양보호사라고 하는데 김희경 씨가 바로 재가 요양보호사입니다.

김인선: 김희경 씨의 경우, 처음부터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한 게 아니라면서요?

마순희: 네. 처음에는 1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다가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재가요양보호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중국에서 살던 딸과 손주를 한국으로 데려오게 되었는데요. 중국에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딸이 한국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손주를 봐주면서도 일할 수 있는 것이 재가요양보호사였던 것입니다. 재가요양보호사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들의 요양 등급에 따라서 두 시간, 혹은 세 시간 근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정해서 한 집이 끝나면 다음 집으로 갈 수도 있고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희경 씨는 2012년에 한국에 입국한 뒤 1년간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고 지금까지 7년차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전문가입니다.

김인선: 대상자의 등급에 따라 하는 일도 달라지고 돌봄의 정도가 달라지잖아요. 희경 씨가 돌보는 분은 어떤 분이세요?

마순희: 네, 희경 씨는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1급을 받은 83세의 어르신을 돌보고 있습니다. 1급이라고 하면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는 분들이에요. 이분들에게 몸 청결과 옷 갈아 입히기, 식사 도움 등의 신체활동지원부터 취사와 생활필수품 구매, 청소, 세탁 등의 가사활동지원 등을 주로 해주고 있습니다. 희경 씨가 처음 보살피던 어르신의 경우 침상에서 움직이지 못 하시다 보니까 욕창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호조무사 공부까지 했던 희경 씨가 자세도 수시로 바꾸어 주면서 정성을 기울여 돌봐 드렸더니 몇 개월 지나서부터는 어르신의 상태가 많이 호전됐고 어르신은 물론 보호자들도 너무 고마워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긍심을 갖고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합니다.

김인선: 요즘 인생은 60부터라고들 말하지만 60대의 희경 씨가 더 연세 드신 분들을 돌본다는 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순희: 물론 힘들기는 하죠. 하지만 5, 60대 탈북여성들이 요양보호사하기에 좋은 점도 많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5, 60대라고 하면 특별한 기술없이 일자리 찾기가 쉽지는 않답니다. 젊은이들처럼 다시 대학공부를 하든가 전문기술을 배워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나 미화원으로 청소하는 일 밖엔 차례지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요양보호사나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되면 일자리 걱정을 안 해도 된답니다. 아시는 것처럼 100세 시대라고 노인들의 수명이 점점 길어짐에 따라 전문 간병이나 서비스를 받아야 할 대상자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요양보호사는 전문지식을 배운,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이라 보호자들도 믿고 환자를 맡기게 되고 또 일반 간병인들보다 더 높은 수당을 받기도 하거든요.

저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전문지식을 배우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자신들도 많은 것을 배우게도 되고 인생 경험도 하게 된다고 해요. 참고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가족 내에서도 요양 등급을 받은 환자가 있으면 가족을 간병하면서도 나라에서 돈을 받을 수도 있어서 요즘에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퇴직한 남성분들도 자격증시험에 많이 도전하더라고요. 나이가 들면 인생 경험도 그 만큼 많은 것이 유리한 점이기도 하고요.

김인선: 무슨 일이든 경력이 쌓이면 나름대로의 요령이 생기잖아요. 희경 씨만의 비법이라고 할까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볼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청취자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정도 전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순희: 희경 씨는 돌보시는 어르신들을 자신의 부모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보살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치매가 있으신 분들은 한 번 한 말을 곱씹고 또 곱씹고 하기도 하고 방금 드시고도 밥을 안 드셨다고 하기도 해서 처음에는 난감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주면서 친자식처럼 조금이라도 불편을 덜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 보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특별히 돌보아 드릴 수 없거든요. 거의 방치하다시피 되는데 저는 북한에서 가장 소외된 분들이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나이가 들었다고 집에만 계시지 마시고 소일거리라도 찾으시거나 산책이라도 하시면서 시원한 가을 바람이라도 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인들을 자주 만나 담소도 나누시고 간단한 오락이라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밖의 일들이 바쁘다고 하더라도 집안에 건강이 안 좋으신 어르신들이 계시면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후회는 언제나 때 늦은 법이더군요. 저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운신도 못 하시는 어머님을 자주 찾아가 뵙지도 못 했다는 자책감에 지금도, 아니 평생 자책하게 되고 마음이 아프거든요.

김인선: 네, 저도 명심하겠습니다. 요양서비스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까요, 외출 시 동행을 하거나 부축을 하는 등의 개인활동 지원도 있고 말벗이나 의사소통 도움 등의 정서지원 서비스도 있네요. 몸이 불편한 분들과 말벗이 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죠. 아픈 가족이 있다면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 드리고 다음 시간에 김희경 씨 이야기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