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행복지수, 청소미화원 전인숙 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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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지하철 역사 내에서 청소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69살 전인숙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인숙 씨는 2007년, 한국에 입국했고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와서 6개월 정도 지난 후부터 바로 식당일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보니 힘들어서 다른 일을 찾았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인숙 씨는 특별한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되고 나이가 많아도 가능한 청소일, 미화원이 된 겁니다. 미화원은 5-60대 탈북 여성들이 요양보호사 만큼이나 많이 선택하는 직업 중의 하나인데요. 본인만 건강하고 성실하다면 정년이 따로 없이 70대가 넘어서도 얼마든지 취직할 수 있고 또 일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인숙 씨도 56살에 시작해서 69살인 지금까지도 미화원으로 있는데요. 취업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아파트에서 미화원으로 1년을 일했고 이후 집 가까이 지하철 9호선이 새로 생기게 되면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지하철 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네. 그런데 인숙 씨의 근무 시간이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라고 했잖아요?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 중에 취객이 많은 시간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청소 업무가 더 많을 거예요.

마순희: 맞습니다. 만취한 승객들의 토사물까지 청소해야 하니까요. 밤 10시부터 막차 운행시간인 새벽 1시까지는 화장실을 비롯해 지하철 내 곳곳을 수시로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인숙 씨 같은 지하철 미화원들 덕분에 우리가 늘 깨끗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데요. 저는 전인숙 씨가 성심성의껏 청소일을 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인숙 씨는 북한에서 군관가족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오던 사람이거든요.

그랬던 사람이 한국에 와서 노동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인숙 씨는 현실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자각하고 대처해 나간 것 같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교사 출신이지만 50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배우고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한국에서 그 직업을 이어나가기는 무리라는 것을 인숙 씨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판단으로 결단력 있게 청소일을 시작한 인숙 씨였고 지하철 9호선이 새로 개통되던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 회사에서 꾸준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내려놓는 게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특히 과거의 시간을 현재와 비교하면서 마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데 인숙 씨는 자신의 경력, 어쩌면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았나 싶어요.

마순희: 경력은 버렸지만 자존심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켜낸 것 같더라고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 전인숙 씨는 실지로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에 대해서는 무조건 자신이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성심을 다해서 열심히 했다는데요. 노력하다 보니 회사도 그의 노력을 알아줬습니다. 130명이 넘는 회사 직원 중에 모범 사원으로 두 번이나 표창을 받았는데요.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 건물이나 아파트의 경우는 미화원들의 나이 제한이 없지만 지하철 미화원의 경우 원래 65세까지 일하게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인숙 씨는 69세가 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에 대한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김인선: 하루에 수만 명이 오가는 지하철역이다 보니까 뒤돌아서면 일거리가 생기잖아요. 저도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미화원분들이 수시로 쓸고 닦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요즘엔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기존 업무에 소독업무까지 하시더라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인숙 씨 역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특히 코로나비루스 때문에 금년 여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마스크를 쓰고 청소를 하다 보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매일 쓸고 닦는 일상 청소부터 소독까지 해야 했으니 업무도 더 많아졌습니다. 특히 미화원을 괴롭히는 것은 아무데나 뱉어 놓은 가래침이라고 하는데요. 코로나비루스가 비말로 전염되기에 일하면서 더 조심스럽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일한 만큼의 로임을 받는다는 것이 좋다는데요. 청소라는 게 단순한 업무라 기본적으로 로임이 적은 일에 속하지만 인숙 씨의 경우에는 야근조라 야근수당까지 나와서 급여가 비교적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하루 6시간 노동이지만 제할 것 다 제하고도 200만원(약 1,770달러) 정도 된다고 하네요.

김인선: 전인숙 씨를 비롯한 모든 환경미화원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역사를 깨끗이 소독해야 모두가 안전해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에 우리의 일상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지하철이 역마다 하루 몇 천, 몇 만 명씩 오고 가는 곳이다 보니 무엇보다 미화원분들의 건강과 안전이 걱정입니다. 신도림역 휴게실에서 함께 식사하고 휴식했던 미화원 8명이 집단으로 감염된 사례도 있었잖아요?

마순희: 네. 저도 기사를 통해 접했어요. 역학조사 결과 확진자들이 근무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항상 도시락을 싸와 휴게공간에서 함께 먹고 휴식을 취했다고 하더라고요. 전인숙 씨의 경우 야간 근무자니까 저녁식사는 집에서 하고 나오는데요. 그래도 도중에 다 같이 모여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요즘은 더 조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인숙 씨의 아들, 딸의 걱정이 많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어지간하면 일을 그만두시는 게 어떻겠는가 하고 건의했다고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인숙 씨의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답니다. 앉아서 나라에서 주는 생계비나 받아 먹으면서 살 수는 없다는 마음이기에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열심히 최선을 다 하면서 일하겠다는 겁니다. 인숙 씨의 이런 확고한 생각 때문에 자식들도 더는 집에서 쉬시라는 권유는 못 한다는데요. 그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전화도 드리고 어머니의 건강에도 관심을 돌리면서 함께 코로나시대를 이겨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탈북 당시 딸의 나이가 25살이라고 했으니까 올해 38살이 됐겠네요. 어머니에게 일을 그만두시라고 말할 정도면 본인의 생활도 안정이 됐다는 얘기 같은데요?

마순희: 맞아요. 인숙 씨를 닮아 똑 부러지는 아들과 딸 모두 한국에 잘 정착하고 있습니다. 29살에 한국에 정착한 아들은 10여 년을 운전과 자동차 정비를 하는 일을 하다가 몇 년 전부터 다른 일을 시작했다는데요. 기술을 배워 보일러 관련 일을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만났을 때에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결혼 같은 것에 전혀 관심하지 않는다고 인숙 씨가 큰 걱정이라고 했었는데요. 그 아들과 딸이 지금은 모두 가정을 이루어서 인숙 씨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인숙 씨는 딸까지 결혼시키고 나니 평생의 큰 숙제를 해결했다고 하면서 지금은 일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인숙 씨가 젊은이들보다도 더 활기차게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식들도 더 안심이 될 겁니다. 노년에도 건강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인숙 씨처럼 저 역시 주어진 제 일을 신명나게 하겠습니다.

김인선: 지금 이 순간 손에 쥔 일을 얼마나 치열하게 신명을 바쳐 해 나가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해요. 그래서 누군가는 '삶은 선택이다'고 말하는데요. 인숙 씨의 삶은 늘 멋진 선택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