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의 마음 지닌 요양보호사, 이명숙 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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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이 시간을 통해 참 많은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매번 그분들의 삶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제대로 한 것 없이 시간이 흘렀네요. 어느새 달력이 한 장 남은 12월이 됐고, 심지어 절반가량이 지나고 있어요.

마순희: 네. 맞아요, 성공시대를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다 가네요. 12월이 되면서 부쩍 더 추워졌어요. 젊은이들이나 아이들은 신나게 눈썰매나 스케이트, 스키를 타면서 즐길 생각으로 마음이 들떠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 가다보니 마냥 즐겁고 낭만적인 계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문에서 봤는데 온도가 1도 낮아질 때마다 혈압이 1.3 정도 올라가고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1.72퍼센트 올라간다는 연구결과가 있더라고요. 저도 70대를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 보니 건강이 염려되던데 아프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오죽 하실까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한에는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있어서 병원이나 요양시설, 혹은 가정에서 전문가인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요. 국가 차원에서 요양보호사들이 노인성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돌봐주는 노인요양보험제도는 제가 남한에서 가장 감동하고 또 공감하는 제도이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요양보호사로서, 또 요양센터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명숙 씨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김인선: 요양보호사는 쉽게 말해서 간병인,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지금까지 '마순희의 성공시대'에서 소개한 탈북민 중에도 요양보호사가 계셨어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요양보호사도 소개해드렸고 또 요양보호시설에서 대표로 사업하시는 탈북민도 소개해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아프신 분들을 돌보아드리는 것은 같지만 요양보호사는 일반 간병인과 조금 다르답니다. 요양보호사는 치매나 중풍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돌봐 드리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도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요양보호사는 미래 직종으로 각광받고 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우리 탈북민들 중에도 특히 여성이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배려심이나 봉사정신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기에 결혼이나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도 많이 하고 있어요. 또 요양보호사 중에는 저처럼 60세가 넘어 정년퇴직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김인선: 배려심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요양보호사가 되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자격 조건이 꽤 까다로워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도 공부하고 시험에 응시하면서 도중에 탈락하신 분들을 여럿 보았거든요.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240시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국가자격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해야 받을 수 있는데요. 노인복지법에 따른 요양보호관련 제도나 서비스, 요양보호사 업무와 직업윤리, 자기관리, 노인과 가족관계, 노인부양문제와 해결방안 등 많은 것들을 교육받습니다. 참고로 요양보호사가 240시간의 교육과정인데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같은 경우에는 40-50시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답니다. 그만큼 요양보호사가 공부해야 할 내용이 더 많은 셈인 거죠. 그래도 자격시험을 치르면 80-90퍼센트는 거의 합격을 합니다. 1년에 두 번 진행되는 국가자격시험이다 보니 탈락하신 분들은 또 다음 기회를 바라고 다시 재도전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인 이명숙 씨의 경우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이 도입되기 전에 요양보호사가 됐습니다. 당시 2010년도에는 특별한 기술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으니까요. 40일간의 교육만 받으면 자격증을 받을 때였습니다.

김인선: 그런 걸 보고 시기를 잘 맞았다, 운이 따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운이라는 것도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기회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마순희: 맞는 말씀인데요. 명숙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말의 참뜻을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 명숙 씨가 한국에 나왔을 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취업문제로 생각이 많았답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배치해주기때문에 직업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도 않았고 또 고민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지만 한국에 와서는 다르니까요. 내가 어떤 일을 할지는 모두 내가 선택하는 것이니까 명숙 씨도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해서 즐겁게 일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직업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기에도 모자란데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 명숙 씨에게는 한국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도 고민이었습니다. 더욱이 명숙 씨가 나온 지 1년 뒤에 한국에 온 중국인 남편도 한국음식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습니다. 거의 외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 밥을 해 먹었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명숙 씨는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한국의 음식문화를 배우고 싶어서 금정에 있는 한국 관광호텔전문학교에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 학원에는 제과제빵 교육과정만 있더래요.

김인선: 제과제빵과 요리는 다르잖아요.

마순희: 네. 하지만 명숙 씨는 당장 취직할 곳도 마땅치 않았는데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면 취업도 용이하리라는 생각에 그 학원에 등록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1년 먼저 졸업한 선배들의 말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형 빵집에 취업했지만 1년 넘게 밀가루포대만 나르고 있다고 하더래요. 전문인이 되는 것이 자격증만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명숙 씨는 이 길은 더구나 몸이 약한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양보호사 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필기시험이나 실습 없이 40일 동안 교육만 받으면 되는 마지막 해였다고 했답니다. 당시 내년부터는 국가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신청했다고 하더라고요.

명숙 씨는 그때 학원에 다니면서 인터넷으로 배울 수 있는, 북한의 원격대학 같은 사이버대학 있잖아요. 거기에서 사회복지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요양보호사 학원에서 교육받고 밤에는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하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는데 과로라고 진단을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더군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명숙 씨는 학원을 이수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거죠. 이후 한 요양보호시설에 취직이 바로 됐습니다. 처음 일하러 갔던 요양시설에는 환자가 9명이었는데 두 명의 요양보호사가 교대로 돌봐야했을 정도로 업무가 장난이 아니었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도 집에 돌아가면 대학공부도 했습니다. 쉴 틈이 없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가 비를 맞았었는데 열이 나고 기침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급성 폐렴이라는 판정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답니다. 과로에 면역력도 떨어져서 건강이 말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때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더 잘 알게 되고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환자들을 돌보아야 하는지를 다시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돌보아드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기초체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과 산행도 열심히 해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잖아요. 왠지 이명숙 씨는 좀 더 세심하고 따뜻한 요양보호사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못 다한 그녀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