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보다 최선을, 김영희 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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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영희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게요. 영희 씨는 2000년 한국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데요. 장사를 하는 사장님도 아니고 사업을 하는 분도 아닙니다. 올해 60살이신데요. 지금도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분이십니다.

마순희: 네. 김영희 씨는 2000년 남편과 두 아들까지 다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지만 6개월 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두 아들을 키우게 됐고 그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컴퓨터 학원,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일자리를 잡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아서 직업소개소에 소개비를 내면서 하루하루 일당을 받으며 일하기도 했습니다. 김밥집이나 여러 식당을 전전하다가 집과 멀지 않은 손칼국수집에 취직하게 됐고 그곳에서만 12년을 일해 왔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가 시간에는 주변의 상가에서 건물 관리를 해주는 등 부업까지 겸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사이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은 영희 씨의 뒷바라지로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중견 기업에 취직도 했습니다.

김인선: 자녀가 대학졸업 하거나 취업이 됐을 때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던데, 김영희 씨는 여전히 일을 하신다면서요?

마순희: 맞습니다. 장성한 두 아들이 영희 씨에게 그만 쉬셔도 된다고 아무리 권해도 영희 씨는 100세 시대에 60이 쉴 나이냐고 말하며 여전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의도에 있는 돈까스집에서 식당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김영희 씨는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성공시대의 주인공이랍니다. 영희 씨는 아직도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기 위해선 경제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두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아들들이 장가갈 때 집을 장만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김인선: 두 아들 모두 취업을 하고 돈벌이를 한다고 했잖아요. 자기 능력으로 결혼하고 그래야죠.

마순희: 그런 문제들은 다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고 자식들이 아무리 말해도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은 거죠. 무엇보다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건 영희 씨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데요.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몸담았던 손칼국수집 사장님이 중병이 들어서 식당을 하지 못 하게 되면서 영희 씨도 일을 중단하게 됐었답니다. 처음에는 매일 하던 출근을 하지 않으니까 편하고 좋기도 했지만 얼마 지난 후부터 도무지 집에 있을 수가 없더래요. 경제활동을 안 하니까 자꾸만 자신감을 잃게 되더랍니다. 매일 집에 있다 보니 세수도 안 하는 때가 많게 되고 어쩌다 나가려면 번거롭고 귀찮아서 나가기를 포기하고 집에만 있게 되기도 하고요. 그대로 있다가는 자신이 더 망가질 것 같아서 서둘러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쉬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게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마순희: 그렇죠. 하지만 영희 씨의 경우엔 12년을 한 식당에서 열심히 일한 성실성이나 전문성 같은 것들이 인정된 것 같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걱정하는 아들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염려하는 아들들의 바람대로 영희 씨는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전처럼 두 가지 일을 하지 않고 식당에서만 일을 하는데,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는 퇴근하기 때문에 영희 씨는 적당한 일자리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김인선: 자격증을 따거나 학위를 취득해서 좀 더 나은 조건이나 환경에서 일하려고 노력하는 탈북여성들이 많은데... 김영희 씨는 조금 남달랐던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많은 탈북민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사례마다, 사람마다 정착하는 법이나 과정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성공이나 명예를 바라지만 영희 씨는 두 아들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고 꿈꾸었습니다. 빠른 성공이나 정착을 위해 자녀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영희 씨는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영희 씨 지인들이, 혼자 몸으로 돈 벌고 애들까지 돌볼 상황이 안 될 거라며 두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을 제안했다는데요. 영희 씨는 손사래를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하면서도 애들을 돌볼 수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손칼국수집에서 일하게 된 거랍니다.

물론 지금은 탈북학생들을 위한 지원프로그램도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탈북민 정착교육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이나 하나센터, 탈북민 전문상담사나 학교의 탈북학생전담 전문가가 없을 때였기에 모든 것을 탈북민 스스로 해 나가야 했을 때였습니다. 그런 걸 보면 간절히 필요하면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영희 씨 스스로가 일자리도 찾고 잘 적응해 나갔고 두 아들 역시 학교생활도 잘 적응하고 공부를 하는 짬 시간에 부업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서 보태면서 대학과정을 마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남한에 이런 말이 있어요.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면 행운이 온다는 말인데요. 사람들이 그 네잎클로버를 통해 행운을 찾으려고 수많은 세잎클로버를 함부로 밟고 지나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세잎클로버는 ‘행복’이래요.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찾느라 ‘행복’을 놓친다는 이야기인데요. 영희 씨는 이미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 같아요.

마순희: 네, 행운을 위해서 수많은 행복을 함부로 밟고 지나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탈북여성들이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인데요. 자녀와의 문제가 꽤 많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 어쩔 수 없이 두고 왔던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여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다고 다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아마도 헤어져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거기에 못지않게 원망이나 미움, 배신감 같은 것들도 없지는 않았겠지요. 그 감정들이 정착해 나가면서 하나, 둘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불화를 낳기도 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일하면서 애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되기도 하여 탈북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나 시설 등에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희 씨처럼 자신이 끝까지 키우는 사례들도 많아서 많은 분들이 영희 씨의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생각됩니다.

김인선: 아이를 양육하면서 회사에 다니는 게 어렵기는 해요. 그래서 일하는 엄마를 위한 보육지원 같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거죠.

마순희: 세월이 흐르면서 제도적인 뒷받침은 꾸준히 발전하는 것 같더라고요. 남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탈북여성들 역시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남북하나재단이나 여성가족부 등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지원 사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정보들을 제대로 알고 활용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근무할 때에도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민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학습지 지원, 화상영어교육 지원, 산모도우미 지원 등 준비된 여러 가지 지원 사업들이 많았는데 몰라서 이용 못 하는 경우들도 많았거든요.

지금도 남북하나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지원 사업들이 공지돼 있고요. 그 정보들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서 이용하면 됩니다. 몰랐다는 말만 반복하는 탈북민들은 지역의 전문상담사나 정착도우미 등 탈북민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탓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일일이 다 알려 줄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직접 남북하나재단이나 여성가족부, 지역의 복지관 등 관련기관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원 정보들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한 정착 후 붕괴되는 모자, 모녀관계가 적지 않은데 영희 씨 사례는 오히려 정착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돈독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영희 씨야 말로 행운을 찾아서 행복을 밟고 지나지 않는, 그 행복을 더 소중히 여기고 굳건히 지켜 나가고 있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김인선: 최고가 되려는 욕심보다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선택한 김영희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공에 대한 기준을 고쳐봅니다. 식당 사장님보다도 더 멋진 성공적인 삶을 사는 종업원 김영희 씨였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