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의 마음 지닌 요양보호사, 이명숙 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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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남쪽에 들어온 탈북민들 중에서 취업과 정착을 위해 선택한 직종을 보면 남성의 경우 대형 운전면허증을 따서 운전하는 일이 1순위였고요. 여성의 경우엔 요양보호사 교육을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중장비 쪽으로 가는 사람이 만족도가 가장 높고 여성은 요양보호사나 미용 분야가 정착에 유리하고 만족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는데요. 그 말을 증명하듯 성공시대 주인공 중엔 요양보호사가 몇몇 있었어요. 오늘의 주인공 이명숙 씨도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요양보호사인데요. 명숙 씨는 자신도 아파 본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도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요양보호사라고 합니다.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명숙 씨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몸이 허약해서 늘 힘든 일은 할 수도 없고 우울증 증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 사정이 어렵다 보니까 그에 따른 약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권을 떼고 중국에 병 치료 차 갔는데 중국에서도 잘 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토바이 사고까지 당해서 다리도 크게 다쳤었다고 하더군요. 1년 반 동안 치료를 받았었는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그저 남한에 가서 사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길은 험난했지만 북한을 떠나 10년 만인 2008년에 한국 땅을 밟게 됐습니다.

명숙 씨는 취업 문제로 한동안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지인들로부터 요양보호사가 유망한 직업이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명숙 씨는 바로 학원에 등록해 교육을 받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취업도 했습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적성에도 잘 맞았고 성실함까지 보태져 명숙 씨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명숙 씨를 만난 곳이 명숙 씨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한 할머니 댁이었는데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셨습니다. 그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언뜻 보기에도 무척 힘들고 고단해 보였는데 명숙 씨는 차분하고 능숙하게 돌보아 드리고 있었어요. 특히 할머니의 보호자이자 남편인 할아버지는 명숙 씨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왜 이제야 찾아왔느냐’고 ‘이 사람은 벌써 칭찬해 줬어야 하는데 너무 늦게 왔다’ 하면서 말이죠.

김인선: 큰 도움이 되셨나 봐요. 사실 요양보호사가 꼭 필요한 게 가족 간에도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거든요. 오죽하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을까요.

마순희: 맞아요.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다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라 더 힘든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사시는 분들은 늘 받고 있는 것이기에 사회복지사업이 얼마나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좋은 사업인지를 잘 느끼지 못 하실 수도 있지만 저희들처럼 처음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너무나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답니다. 그래서 많은 탈북민들이 대학에서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하고 또 졸업한 후에도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거든요.

명숙 씨의 경우에는 자비를 들여서 일본에 가서 선진 요양시설을 돌아보며 배워 올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답니다. 일본은 특히 노인복지가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하죠. 북한에서는 일본에 일반인들이 간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사회복지, 특히 노인복지 전문 인력이 되고자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서 배우는 그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도 하잖아요. 저도 일본에 두 번 가보았는데 물론 여행으로 갔던 것이지만 생활의 곳곳에서 노인복지정책이나 체계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답니다. 명숙 씨의 경우 일본을 다녀온 후 사회복지사업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대요. 이렇게 명숙 씨는 대학 공부와 봉사활동, 해외연수, 그리고 시설에서 실제 근무하면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지금은 재가요양센터를 직접 운영하는 대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인선: 재가요양센터라면 요양보호사들을 파견하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파견한 요양보호사를 교육도 해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이 관리하는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도 꾸준히 파악해야 하는 일까지 모두 담당하는 것이 바로 재가요양센터의 대표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국제연합기구 UN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국가 인구의 7%이상을 차지하면 고령화시대로 간주하고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이상이면 초 고령사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신문 기사에 실린 내용인데요.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 시대로 진입했고 2017년 8월 말 기준으로 노인인구가 14%를 넘어 고령사회 진입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노인복지 문제가 절박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요양보호사에 대한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2008년 7월부터 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좀 더 나은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자격제도를 신설해서 인력을 양성하고 있거든요. 노인의 건강상태에 따른 등급이 있고 그 등급에 따라 80달러에서 100달러의 정부지원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원금의 85%를 요양보호사의 월급으로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복지를 이용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치매나 중풍을 비롯한 노인성 질환으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다 돌봐 주니까요. 노인요양시설이나 혹은 복지시설에 모시고 가서 치료나 재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가사지원 봉사도 해요. 대상자의 청결 유지, 식사 보조, 배설, 운동 등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업무를 모두 한다고 보면 됩니다.

김인선: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지만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 정말 많네요. 그런데도 많은 탈북 여성들이 이 일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마순희: 노임 면에서나 일자리 안정성 때문이죠. 탈북 여성의 경우 처음에는 배운 것도 없고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직업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병인인데요. 간병인으로 일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같은 간병일을 하지만 요양보호사의 처우가 더 좋다는 것을요. 보호자들 입장에서 볼 때에도 요양보호사는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이기에 더 신뢰가 가겠죠. 그래서 간병일을 하면서 요양보호사 학원에 야간반으로 등록하고 일하면서 배워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아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성실, 봉사의 마음만 있다면 단기간에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거든요. 또 정년이 없는 일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언제까지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우리 탈북여성들도 많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명숙 씨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시간이 되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거의 10여 년을 정기적으로 대안학교를 방문하여 직접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또 북에서 오신 독거 노인분들을 자주 찾아 뵙기도 한답니다. 얼마 전에 명숙 씨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시설을 운영하면서 앞으로 같은 업종의 일을 하게 될 후배들을 위해 디딤돌 하나를 잘 놓는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겠다’ 라고요. 한국정착 10년, 평범한 회사원으로부터 요양보호사로, 사회복지사로, 그리고 지금은 20여 명의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들, 직원을 두고 자신의 사업을 알차게 해 나가는 사업가로 성장한 이명숙 씨의 힘찬 도약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운’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거라고 하죠. 이명숙 씨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운‘처럼 보이겠지만 늘 노력하고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팠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아픈 사람의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이명숙 씨.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해 보게 되네요. 청취자 여러분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하루가 되기를 바랄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