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의 우을증 탈출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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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변함없이 한 주 만에 인사드리는데 해가 바뀌었어요. 마 선생님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 모두 올 한 해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시길 기원 드리겠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온 가족이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모든 청취자 분들에게도 대한민국 서울에서 새해의 인사를 보냅니다. 새해 모두 행복하세요, 그리고 각자 하시는 일들도 잘 되시고 무엇보다 건강한 한 해를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인선: 저희처럼 2025년의 시작을 새해 인사와 함께 새 마음으로 1년을 시작했을 텐데요. 새로운 각오를 말과 글로 잘 표현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말과 글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서 삶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성공시대 주인공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그래서 2025년 첫 주인공은 누구일지 기대되고 설렙니다. 오늘의 주인공, 어떤 분인가요?

마순희: 오늘 2025년의 첫 주인공은 자신이 세운 목표와 계획을 하나하나 이루어 내시는 멋진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2006년에 한국에 입국한 이샘 씨인데요. 이분을 2014년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당시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로 저처럼 방송 출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일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샘 씨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는데요. 앞으로 작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2021년에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나 손전화로 볼 수 있는 전자책으로 <탈북자, 나를 발견하다>를 발간하면서 이샘 씨는 작가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인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모두가 책을 발간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데요. 꾸준히 글을 써야 하고 출판사 혹은 이샘 씨처럼 전자출판물로 공개되는 공간을 알아보고 출간이 가능한지 따져야 하는 등 부수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더라고요. 쉽지 않은 그 일을 이샘 씨는 해내신 거예요. 작가로 등단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어 내기까지 우여곡절도 제법 많았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14년 첫 인터뷰 할 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작가의 꿈을 이루기까지는 약 8년이 걸렸는데요. 인터뷰를 그때 해서 그렇지 그 꿈은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목표였습니다. 이샘 씨는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이 가장 어려웠던 1997년 25세에 21살 여동생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는데요. 돈을 벌어 식구들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넌 순간부터 모든 것이 이샘 씨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연고가 없이 강을 건넌 거의 모든 탈북여성들이 그러하듯 이샘 씨도 중국인 브로커에 의해 원치 않는 중국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사랑하는 동생과는 생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이샘 씨는 중국 조선족 남자와 결혼하여 딸을 출생하게 되었지만 거의 10여 년을 불법 체류자로 북경, 상해 등에서 숨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김인선: 중국 내에 있는 탈북민들은 늘 북송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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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순희: 맞습니다. 이샘 씨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중국에 온 지 5년 만인 2002년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 북한에 잡혀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100여 일만에 극적으로 탈출하여 재탈북에 성공하게 되었고 딸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북한으로 끌려갈 위험한 고비도 몇 차례 넘겨야 했습니다. 결국 이샘 씨는 2006년 8월 한국행을 결심했는데요. 태국을 거쳐 어려운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을 경유해서 대한민국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낯선 땅이라고 여겼던 한국에서 이샘 씨는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됐는데요. 헤어진 후 생사를 알 길 없었던 여동생이 기적같이 몽골을 거쳐 이샘 씨보다 2개월 먼저 한국에 입국한 상태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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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이샘 씨는 2006년 11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며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보통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 생활을 3개월 정도 하고 사회에 나오는데, 이샘 씨는 다 마치지 않고 조기에 사회에 나와 한국 정착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원 교육생들 중에 먼저 나온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조기에 퇴소시켜 내보내야 할 정도로 탈북민 교육생들이 넘치던 시기였는데, 이샘 씨는 2개월 먼저 한국에 들어온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인선: 하나원에서 초기 정착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나와도 막상 사회에 나오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 말하는 탈북민들이 많더라고요. 다행히 이샘 씨에게는 두 달 먼저 한국에 들어온 여동생이 있었으니 얼마나 든든했을까요?

마순희: 네. 가족이 있다는 건 탈북민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신분확인이 빨라지면서 번거로운 신분확인 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입니다. 이샘 씨는 2006년 11월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받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더는 '불법체류자', '도망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생이 있었어도 아무도 없는 사막에 홀로 버려졌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감정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샘 씨를 힘들게 했고 결국 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으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음식을 먹으면 토하는 증상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엔 아무것도 안 먹어도 구토증세가 나타났고 증상이 심해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조차 없는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이샘 씨는 점점 더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나갔습니다.

김인선: 마음의 병이 제대로 걸린 것 같아요. 탈북민들에게는 낯설다고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건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인데요. 방치하면 이샘 씨처럼 증상이 점점 심해질 수 있어요.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과 약물치료 등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는 점,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잖아요? 거주 지역 내에 탈북민을 전담으로 담당하는 상담사도 계시고요.

마순희: 네. 지금은 정부기관 뿐 아니라 탈북민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에서도 다양한 심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만큼 도움을 주는 곳이 많은데요. 이샘 씨가 한국정착을 시작하던 2006년경에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생기기 전이었습니다. 거주지 보호담당관이라는 담당 형사님, 그리고 한 달 정도 생활 도움을 주는 도우미들이 전부였습니다. 2010년부터 탈북민들의 지역정착생활을 지원하는 하나센터와 전문 상담사 제도가 생겼거든요. 그러니까 그 전에는 그런 도움들을 받을 수 없는 때였기에 이샘 씨가 더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지원은 받을 수 없었지만 교회의 한 권사님이 이샘 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는데요. 매일같이 집 문을 두드려 맛있는 밥을 사 주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했던 이샘 씨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샘 씨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함께 웃고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진심으로 이샘 씨의 마음을 이해해 주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김인선: 위로 받고 이해 받는 기분, 굉장히 큰 힘이 되는데요. 이샘 씨가 겪고 있던 마음의 병은 호전될 수 있었을까요? 이샘 씨의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