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국제 무대를 통해 북한의 자유와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탈북 청년들의 목소리가 꾸준히 커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영어로 말이죠. 탈북민들에게 영어는 어렵고 힘든 분야라고 하는데, 유창한 영어로 북한의 인권 실상을 증언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북한의 인권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마음이 크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지난 9월에도 탈북 청년들이 열흘 동안 캐나다 내 8개 대학에서 북한 인권 실상을 증언했다는 소식이 있더라고요.
마순희: 네. 그 소식, 저도 뉴스를 통해서 잘 알고 있지요. 한국에 정착한 우리 탈북 청년들이 9월 28일부터 캐나다 4개 도시의 8개 대학에서 북한 인권 실상을 증언했는데요. 유창한 영어로 캐나다 대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는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고 감동적이었습니다. 화상으로 연결해서 함께 했던 청년도 있었는데요. 2006년에 한국에 입국한 김은주 씨입니다. 오늘 성공시대에서 소개해 드릴 주인공이지요. 얼마 전 은주 씨와 통화를 했는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의 캐나다 청년들과 북한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북한 인권에 대해서 모르는 학생이 굉장히 많았지만 관심을 가진 학생들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 많이 궁금해 했다는 그 이야기가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인선: 캐나다에 간 탈북 청년들 대부분이 한국 내에서는 이미 이름이 알려졌을 만큼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더라고요. 은주 씨도 마찬가지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김은주 씨는 '11살의 유서'라는 책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대학 재학 중이었던 2013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은주 씨의 책은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는데요. 서울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기자가 탈북민 관련된 책을 쓰게 되면서 은주 씨와 인연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9년 간의 지옥 같은 북한 탈출기'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됐는데요. 한국에서는 '11살의 유서'라는 제목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책을 접하면서 북한의 실상이 그대로 전해져서 '참 책을 잘 썼구나' 감동했는데요. 고난의 행군 시절 은주 씨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은주 씨는 책을 발간한 이후부터 국내외 강연 활동, 국제회의 등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데요. 저도 은주 씨가 참여하는 행사에 함께 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9월에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인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은주 씨를 주인공으로 한 행사가 있었거든요.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의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누는 자리였는데요. 은주 씨는 이날 자신이 왜 탈북했는지와 탈북과정, 한국정착 등 탈북민의 생각과 고민을 전하면서 100여 명의 청중들과 소통했습니다.
김인선: 아픈 상처를,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른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도 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놓는 사람들도 있죠. 그게 덜 고통스러우니까요. 탈북민들에게는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시간들, 그때 겪었던 일들이 큰 상처로 남아 있는데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갑니다. 은주 씨는 자신의 상처를 책에 담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거네요.
마순희: 네, 그렇습니다. 김은주 씨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자신과 가족이 겪었던 일들을 책에 담아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는데요. 책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은주 씨는 11살의 나이에 유서를 썼습니다. 은주 씨는 식량을 구하러 나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배고픔에 지쳐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데요. 그때 엄마에게 마지막 말은 남겨야겠다 싶어서 글을 남겼습니다. 은주 씨는 아오지 탄광으로 알려진 함경북도 은덕에서 살았는데요. 은주 씨가 11살이었던 1997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늑막염이었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건강이 더 악화된 데다가 제대로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까지 겹쳐서 사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남겨진 가족은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는데요. 어느 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은주 씨의 어머니와 언니가 길을 나섰습니다. 은주 씨에게는 15원을 주면서 사흘만 견디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은주 씨는 그 돈으로 두부 한 모를 샀는데 한 시간도 안 돼서 다 먹어버렸습니다. 한 입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저도 모르게 다 먹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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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은주 씨는 엄마와 언니를 애타게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약속한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은주 씨는 점점 굶주림에 지쳐갔습니다. 엄마와 언니가 다녀오겠다고 한 지 6일 째 되는 날, 은주 씨는 죽을 것 같아서 가만히 누워만 있었습니다. 엄마와 언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은주 씨는 하염없이 울면서 누워 있다가 유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기다렸다고, 여러 번 마중도 나갔는데 왜 돌아오지 않았냐는 내용을 힘겹게 적고 은주 씨는 다시 누웠는데 민망하게도 바로 그날 어머니와 언니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빈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은주 씨가 적어둔 유서, 아니 쪽지를 보고 ‘다 같이 죽자’고 하셨다는데요. 그래도 11살 은주 씨는 좋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게 아니어서 그리고 엄마랑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요.
김인선: 11살 소녀에게는 배고픔보다 엄마에게 버려지는 게 더 힘들었나 봅니다. 그런 은주 씨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식량을 구해오겠다고 어린 은주 씨 혼자 두고 떠났었는데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아마도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다 같이 죽자는 말을 하게 된 거 아닐까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게 부모 마음인데 며칠째 굶고 있고, 먹지 못해 기운이 점점 없어지는 자녀를 지켜보는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은주 씨의 어머니는 다음 날 집에 몇 개 안 남아 있는 세간을 모두 장마당에 팔고 먹을 것을 샀습니다. 그 후 은주 씨와 어머니, 언니는 가족제비 생활을 시작했고 강을 건너면 먹을 것이 많다는 말에 1999년 다 함께 탈북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북한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중국행이었는데 그곳에서 인신매매, 강제북송 등 탈북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을 다 경험했습니다. 은주 씨는 그때의 일들도 '11살의 유서' 책에 모두 담았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의 북한의 실상과 중국으로 탈북한 북한 여성들이 겪었던 참상을 사실 그대로 반영한 은주 씨의 책은 영어를 포함해서 8개 국어로 발간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은주 씨는 자신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최대한 시간을 내 찾아가고 있습니다.
김인선: 여러 가지 불행이 계속됐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 은주 씨네는 어머니와 언니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어머니가 인신매매로 시골마을에 팔려가는 일이 생겼지만 어린 은주 씨와 언니는 그 일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은주 씨와 언니도 어머니가 팔려간 집에 같이 갈 수 있었는데요. 농사짓는 일을 하는 일꾼으로 데려간 것이었습니다. 은주 씨에게 동생도 생겼지만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고 신변의 위험도 계속됐습니다. 동생이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 됐던 2002년, 은주 씨 모녀 세 사람 모두 중국 공안에 체포됐고, 결국 북송되었는데요. 다행히 넉 달 만에 세 사람 모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북송되면 많은 탈북민들이 고초를 겪게 되는데요. 은주 씨네는 어떻게 세 사람 모두 무탈하게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