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김은주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은주 씨는 탈북민의 인권 실태를 알리는 활동가이자 북한과 중국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책도 출간한 분이셨죠?
마순희: 네. 김은주 씨는 대학 재학 중이었던 2013년에 '11살의 유서'라는 책을 발간했는데요. 고난의 행군 시절의 은주 씨와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97년에 아버지가 영양실조로 돌아가셨고 남겨진 은주 씨와 어머니, 언니는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되었는데요. 그때의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3일만 기다리고 있으면 어머니와 언니가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고 길을 떠났는데 5일이 넘도록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은주 씨는 굶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에 유서 같은 쪽지를 썼습니다. 어머니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에 서러운 마음이 들었고 자신의 마음을 나중에라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하는데요. 유서를 쓴 바로 그날 어머니와 언니가 은주 씨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식량을 구해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은주 씨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기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집에 몇 개 안 남은 물건을 장마당에 내다 팔아 먹을 것을 사 먹었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즐긴 겁니다. 이후부터 세 사람의 가족제비 생활이 시작됐는데요. 중국에 가면 굶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에 1999년 다 함께 도강을 했습니다.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는데 은주 씨 모녀는 탈북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을 다 겪었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낳아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지 1년 이 채 안 됐을 때 세 사람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고 북송됐는데요. 중국에서 지낸 지 3년 만이었습니다.
김인선: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잠시 고초를 겪긴 했지만 오래지 않아 풀려났다고 했죠?
마순희: 맞습니다. 북한 주민으로 조회가 안 되면 최종 이송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당시 아사자가 많은 탓에 행방불명으로 3년 지나면 사망 처리가 됐는데, 은주 씨 모녀도 해당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넉 달 만에 풀려났고 재탈북을 선택했습니다. 다시 들어간 중국에서도 세 사람은 늘 함께 했습니다. 2006년 은주 씨는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한국행을 하게 되는데요. 언니가 중국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남아 있겠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은주 씨는 몽골을 거쳐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 입국 당시 은주 씨는 21살이었는데요. 뒤늦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 탈북 청년들이나 탈북 자녀들의 경우 북한에서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었던 경우가 많은데 은주 씨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늘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은주 씨는 뒤늦은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는데요. 정착한 지 1년 만에 정규 학교를 졸업한 것과 동일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검정고시로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는데요. 동기생들보다 은주 씨의 나이가 5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은주 씨는 고등학교 과정을 큰 무리 없이 마쳤고 원하던 대학에 입학도 했습니다. 은주 씨는 뭐든 열심히 했습니다. 대학 생활 초기에 은주 씨는 미국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단 지원서부터 넣었다고 하는데요. 어학연수에 지원하려면 학점도 좋아야 하지만 영어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은주 씨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대학 공부를 따라가기에도 벅찼던 은주 씨에게 토익이나 토플 같은 영어 시험은 볼 형편도 못 되었고 본다 해도 점수가 나오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은주 씨는 어학연수에 꼭 가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담당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 은주 씨의 겁 없는 도전정신과 당돌함을 보고 교수님이 적지 않게 놀랬다고 하는데요. ‘근자감’이라는 별명을 지어주더랍니다. ‘근자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줄인 말인데요. 무엇을 좀 모르지만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은주 씨에게 꼭 맞는 별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인선: 은주 씨가 과연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요?
마순희: 네. 탈북민 지원제도도 한 몫을 했겠지만 은주 씨의 겁 없는 도전정신과 당돌함이 통했습니다. 은주 씨는 바라던 대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그 경험을 바탕 삼아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주 씨는 막힘 없는 영어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데요. 대학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고 봉사자로서 꾸준히 활동했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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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은주 씨는 남한의 대학생들이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데요. 그런 현실은 은주 씨로 하여금 북한에 대해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삶을 드라마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은주 씨는 말하는데요. 드라마가 현실과 조금 벗어난다 해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남한에 대해 알아가고 간접적으로나마 어떻게든 접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한 사람들은 북한 영화가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 문화를 거의 접할 일도 없습니다. 은주 씨가 볼 때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잘 알지 못한 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데요. 남북한 사회를 다 경험해 본 은주 씨는 서로가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중간 다리 역할을 자신과 같은 탈북민이 해야 한다는 게 은주 씨의 마음인데요. 보람을 느끼면서도 좀 더 심적으로 여유 있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번씩 든다고 했습니다.
김인선: 대외활동을 하느라 바쁘겠지만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야죠. 은주 씨에게 좋은 인연이 생겼을까요?
마순희: 네. 은주 씨는 활동을 하면서 같은 탈북민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대학 졸업 후 그 남자와 결혼도 했습니다. 은주 씨는 결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는데요. 결혼 전에는 시민단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일을 했던 은주 씨였습니다. 주부도 엄마도 좋지만 은주 씨는 일을 하고 싶어서 직장을 찾았는데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은주 씨를 잘 아는 FSI 공동 대표님이 함께 일하자고 손을 먼저 내밀어 주었다는데요. FSI는 탈북민들의 영어교육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은주 씨는 지난 해부터 FSI에서 근무 중인데요. 탈북민들의 교육과 정착생활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과 미국 국방부에서 지원받는 보조금으로, 영어를 배우고 싶은 탈북민에게 영어 말하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주 씨가 이렇게 자신의 일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된 데에는 남편의 공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남편의 외조 덕분에 은주 씨는 지금도 한번씩 대외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은주 씨는 북한의 인권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이고 미래라고 생각한다면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은주 씨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언제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는데요. 제가 본 인터뷰 기사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말에 은주 씨는 “나는 한국인입니다” 라고 답을 했다는데요. 맞습니다! 우린 모두 한국인입니다. 북한인권이 개선되는 그날까지 한국인으로 활동을 멈추지 않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김인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은주 씨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