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요즘 대한민국이 떠들썩합니다. 북한에서도 노동신문 등을 통해 전해진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시민들은 분노했고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데요.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정국이 혼란스러운 이 와중에도 한국의 시위 문화만큼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입니다. 공연장에서 들었던 응원봉을 들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한국 노래, K팝을 개사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구호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2030 세대'인 청년들이 있는데요. 한국에선 이처럼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탈북 청년들 중에도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들 정말 많으시더라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우리 탈북 청년들 중에도 통일과 인권 등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요. 요즘 제가 젊은 세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쩌면 저렇게도 똑부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정통하고 있는지 감복하게 되는데요. 오늘 성공시대의 주인공도 그런 청년들 중 한 사람입니다. '대학생 통일블레싱 코리아' 합창단으로 미국 순회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던 멋진 탈북 청년 김남일 씨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남일 씨는 1988년 생으로 올해 37살인데요. 22살 때인 2010년에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김인선: 노래, 연설, 글, 그림 등 다양한 매체로 한반도의 통일을 말하는 다재다능한 탈북 청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김남일 씨는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 분인지 궁금한데요?
마순희: 네. 김남일 씨를 표현할 수 있는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데요.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탈북 청년이라고 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은 확실히 듭니다. 남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공부도 잘했고, 건강한 정신으로 잘 성장해서 대한민국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남일 씨는 대학 시절부터 대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했는데요. 대학 2학년이었던 2014년에는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통일 블레싱 코리아'라는 합창단으로 미국 순회 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남일 씨는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합창 공연을 펼칠 때마다 미국사람들과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간절히 기원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수많이 보았고, 그때마다 남일 씨는 '저들은 왜 남의 통일을 저리도 간절하게 염원하는 것인지, 저 사람들에게 한반도의 통일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인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미국에 대해 적대적으로 인식하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북한에서는 미국사람들에 대해 나쁜 놈이라고만 배웠으니까요. 남일 씨는 북한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미국 순회 공연을 하면서 직접 느낄 수 있었고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미국인과 한인 교포들을 보면서 통일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자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싶고 자신의 나태함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 때부터 남일 씨는 탈북민이자 젊은 대학생인 자신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남일 씨는 미국 순회 공연을 다녀 온 다음해부터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는데요. 대학에서 소조활동의 일환으로 선교회 활동을 했는데 3년 때부터 회장을 맡아 선교회를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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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선: 대학 과정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탈북 청년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요. 또 등록금은 탈북민 지원제도나 장학금으로 해결되지만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틈틈이 부업을 하느라 대외활동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탈북 청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남일 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과 공부 외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네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남일 씨는 북한과 달리 한국에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키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데요. 그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는 게 남일 씨의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남일 씨는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실천했습니다. 남일 씨가 회장직을 맡은 선교회는 학교 내의 탈북 청년들과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는 기독 청년들이 함께 기도하고 활동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남일 씨는 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중국 선교 활동도 조직했고, 학생들이다 보니 주로 방학을 이용해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두만강 연선 너머로 보이는 고향을 바라보면서 남일 씨는 회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통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남일 씨는 회원들의 안내자 역할과 동시통역을 맡기도 했는데요. 10년이 넘는 시간을 중국에서 지내며 공부했던 터라 부담 없이 중국어를 소화해 낼 수 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김인선: 중국에서 살다가 온 탈북민들이 많아도 모두가 중국어에 능통한 건 아니더라고요. 신분을 숨기고 숨어 살아야 하다 보니까요. 남일 씨는 어떻게 중국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나요?
마순희: 김남일 씨는 2000년 12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따라 탈북을 하게 되었는데요. 남일 씨의 어머니는 중국에서 살다가 청소년기에 북한에 나갔었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중국에 친척들이 많았는데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자 남일 씨 어머니는 남일 씨와 누나들을 데리고 친척들이 있는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12살에 탈북하게 된 남일 씨는 중국에서 소학교부터 고등중학교 과정까지 다닐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그런데 중국 내에서 탈북민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공부가 하고 싶어도, 학교가 나가고 싶어도 호적이 없어서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마순희: 네. 탈북민 자녀의 신분으로 중국학교에 다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남일 씨가 중국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어머니의 옛날 호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친척들이 돈을 모으고 노력해서 호적을 만들 수 있었고 남일 씨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으로 도망 다니는 탈북자의 신분 때문에 늘 걱정은 되었지만 막내아들 만큼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남일 씨 어머니의 염원이 컸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경제활동을 했고 남일 씨는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남일 씨는 하얼빈 1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요. 하얼빈 1고등학교는 흑룡강성과 하얼빈에서 제일가는 고등학교요, 수재들만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남일 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기 하나를 공부시킨다고 고생하는 가족의 기대와 응원에 부흥하고자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서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남일 씨는 하얼빈 1고등학교에서도 매번 1등을 놓치지 않았고 학교의 교사들은 남일 씨를 북경대나 청화대 대상이라고 자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탈북민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었고 남일 씨의 누나들은 북한에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남일 씨와 어머니는 야반도주하듯 하얼빈을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에 잡혀간 누나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한국행 뿐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김인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했던 남일 씨였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는데 하루아침에 도망자처럼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네요. 너무나 급작스럽게 선택한 한국행이라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텐데 무사히 한국에 올 수 있었을까요? 김남일 씨의 한국행 이야기 그리고 정착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