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23번 이사 다닌 여자의 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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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김인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인희 씨는 두 아들과 남편까지 가족 모두가 함께 탈북한 경우였었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많은 사람들이 탈북을 했던 시기에 인희 씨 가족도 함경북도를 떠나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학령기 두 아들이 학교에 안 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웃이 있을까 봐 의심의 눈길을 피해 이사를 자주 했는데 2년 8개월 동안 23번이나 옮겨 다녔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이라는 인권단체를 알게 되면서 도움을 받게 됐는데 제3국을 거치지 않고 한국까지 바로 올 수 있었습니다. 집도 서울로 배정받고 한국생활의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남편은 가장으로 생계를 위해서 하루벌이직장(일용직)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고 두 아들은 학교생활에 충실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얻지는 못했지만 인희 씨도 김밥집에서 일했습니다.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인희 씨가 있어서 안심하고 가게를 비울 수 있다고 사장님이 말할 정도로 똑 부러지게 일을 했습니다. 이대로만 살아간다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살아가던 어느 날, 멀쩡히 출근했던 인희 씨 남편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막 6개월이 됐을 때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된 인희 씨

김인선: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인희 씨는 마냥 힘들어하고 슬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인희 씨는 어린 두 아들을 위해 눈물을 삼키고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초등학생이었고, 홀로 두 자녀를 돌봐야 했기에 인희 씨는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출퇴근도 용이하고 근무시간도 5시간 정도로 길지 않은 손칼국수집이었습니다. 출퇴근을 합쳐 10분이면 충분했기에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맞춰 끼니를 챙겨줄 수 있었고 여유 있게 집안 살림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인희 씨의 모습에 칼국수집 사장님은 다른 일자리도 주선해 주었습니다. 손칼국수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건물관리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에 한번 건물을 깨끗이 청소하고 살피는 일로 칼국수집 일을 마친 후에 충분히 병행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크게 힘들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보수도 괜찮은 편이었다는데요. 무엇보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는 투잡을 하다 보니 경제적인 상황도 나아지면서 인희 씨는 두 가지 일 모두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14년 넘게 투잡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식당 일부터 건물 관리까지 아무리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도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 아마 몇 달 못하고 그만 두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이 힘든 것도 이유겠지만 몸이 안 따라줘서 못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다행히 인희 씨는 건강상에 문제는 없으신 것 같아요.

작지만 소박한 미래를 꿈꾸게 된 이유

마순희: 맞습니다. 탈북 여성들 중에는 북한에서부터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탈북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돼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40살 나이에 입국한 인희 씨의 경우엔 큰 병치레를 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보내고 혼자 힘으로 두 아들을 양육해야 하기에 살기 바빠서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인희 씨의 나이도 60살이 넘었는데요. 지금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칼국수집 사장님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가게를 접는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인희 씨는 지금까지 칼국수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14년을 일하면서 칼국수 끓이는 비법도 알았을 테고 가게를 운영하는 것도 충분했을 텐데 인희 씨는 칼국수집을 인수해 직접 운영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이라는 건 자신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데요.

인희 씨는 자신의 나이와 상황에 맞게 길지 않은 시간만 일을 하는 시간제 부업 일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그런 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큰 아들은 강렬한 박자에 맞춰 빠르게 읊조리듯이 노래하는 가수, 래퍼로 활동 중인데요. 전 세계 누구나 어디에서나 동영상을 올리고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 유튜브에서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가끔은 먹는 방송, 먹방을 하기도 하는데요. 음식을 먹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먹기도 하더라고요. 가끔 인희 씨도 함께 출연해서 북한 음식 만드는 것도 소개해 주면서 재미를 더해 주는데요. 함께 방송을 하자는 아들도, 기꺼이 함께 하는 인희 씨도 참 멋진 것 같습니다.

김인선: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면 이름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면… 하고 바라는데요. 인희 씨는 자녀들의 진로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깨어있고 앞서 있었던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사실 인희 씨도 두 아들이 탄탄한 직장에 취직했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며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주위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겨졌고 인희 씨는 두 아들이 그런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인희 씨는 자신의 삶이 성공적인 삶에 속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에서 정착을 잘 해냈기 때문이라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정착을 하는데 있어 창업이나 귀농을 선택하든가 번듯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처럼 자그마한 식당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형편에 맞게 일자리를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 모두가 성공적인 정착이라는 것입니다. 어느덧 인희 씨가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23년이 되었습니다. 낯선 한국 땅에서 남편의 사망을 지켜보고 혼자 힘으로 어린 두 아들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인희 씨는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인선: 아무리 힘든 상황도 주변에서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겨낼 수 있고 또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인희 씨가 살아가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마도 인희 씨 곁에 좋은 분들이 많았다는 얘기 아닐까 싶은데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거주지역에서 탈북민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하나센터 상담사분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탈북민 지원제도와 한부모 가정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희 씨는 대한민국이었기에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아갈 수 있었고 또 나라에서 대학등록금과 장학금까지 주면서 다 공부하도록 해 주었는데 모든 것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그저 힘자라는 대로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것이 국민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인희 씨입니다. 어려움은 모두의 곁에 있다는 말과 함께 아무리 어려워도 노력을 하면 다 잘될 거라며 환하게 웃는 인희 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인희 씨의 밝은 모습에서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스스로 해 나가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늘도 열심히 출근길을 걷고 있는 김인희 씨의 행복한 내일을 함께 응원합니다.

김인선: 60살이 넘은 나이에도 인희 씨가 건강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건강한 생각에 건강한 육체가 어우러지는 것 아닐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