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 어르신 취업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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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요즘 봄철 피로 증후군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계절의 변화나 외부 환경의 변화를 신체가 따라가지 못해서 일시적으로 생기는 생리적 부적응 현상을 봄철 피로 증후군이라고 하는데요. 아이들은 새 학년 적응하느라 피곤하다 하고 어른들은 춘곤증도 심해지고 자고 일어나도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하다고 합니다. 이맘 때가 되면 우리를 괴롭히는 일종의 계절병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마순희: 기자님이 춘곤증을 이야기하시니 저 역시도 요즘 봄철 증후군을 조금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 잠이 없는 편인데 요즘은 밥을 먹고 나면 깜빡하고 조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몸은 피곤해도 이번 봄엔 무언가 새로운 기분을 느낍니다. 그동안은 회사 다니면서 너무 바쁘게 시간에 쫓겨 살아가다 보니 언제 계절이 바뀌는지, 봄인가 하면 어느새 여름이 훌쩍이고 또 금방 겨울이 다가오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내게 되면서 자연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운동 삼아 오르던 산에는 진달래, 매화꽃, 또 산수유까지 모두 피기 시작했고요. 제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산을 찾는 분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왠지 더 밝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저까지 기분이 새로워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요. 실제로 봄철 피로 증후군은 햇볕 쬐는 양을 늘리고 냉이, 달래 같은 봄나물 등 제철음식을 먹으면 좋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맞아요. 봄철 피로 증후군을 이기려면 매일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진 분들은 특징이 있잖아요. 부지런해서 남들보다 이른 시간부터 아침을 시작하는 거요. 탈북민 분들 중에도 부지런한 면으로 손꼽히는 분들이 많으실 테고요.

마순희: 네. 많습니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부터 직장생활, 조직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탓인지 제가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부지런하답니다. 이른 아침에 손전화(휴대폰)로 아침인사 문자들을 보내는 분들도 계신데요. 어떤 분들은 6시도 되기 전에 문자를 보내더라고요. 솔직히 가끔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 때도 있는데요. 부지런함만큼은 본받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분의 하루는 그보다 빨리 시작됐을 테니까요.

60대에 한국 입국해

70대에도 한결같이 새벽부터 하루를 여는 그녀

오늘 소개해 드릴 주인공도 남들보다 빠른 하루를 시작하는 분입니다. 70대 후반의 나이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하성희 씨인데요. 1999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중국으로 탈출해서 거의 10년을 중국에서 보내다가 2009년 한국에서 정착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할 때 나이가 이미 60을 훨씬 넘어섰지만 성희 씨는 청소일로부터 시작해 대안학교 사감일 등 여러 가지 일을 했고요. 현재 70대 후반이지만 하루 몇 시간씩 청소 등을 하면서 건물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청소하시는 분들의 하루는 다른 사람들보다 이른 시간부터 시작되더라고요. 2020년에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연구팀에서 새벽 버스를 타는 분들에 대한 연구 분석을 했는데 결과를 보면 첫 차를 타는 승객들 중 60대 이상이 83%, 직업은 청소 업무가 85.1%였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빠른 첫 차는 오전 3시 50분에 운행이 시작되고 첫차를 타고 내린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은 6시정도 된다는데요. 성희 씨의 하루도 이른 시간에 시작되겠네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하성희 씨의 경우에는 사는 곳은 양천구인데, 청소 일을 하는 곳은 거리가 먼 강남에 위치한 한 건물이기에 매일 새벽 첫 지하철을 타야 했습니다. 당연히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죠. 일은 오전에 끝나지만 그렇다고 성희 씨는 나머지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춘곤증으로 잠이 쏟아진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희 씨의 경우엔 여러 가지 일을 보다 보면 잠깐 조는 시간도 없이 시간이 훌쩍 지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70대 후반인 지금도 불면증도 모르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건강이 따라주니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거고요.

김인선: 맞아요. 청소나 건물 관리를 하는 일은 부지런하고 건강해야 오래 할 수 있더라고요. 다만 청소 일이 고되긴 해도 하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경쟁률이 굉장히 치열하거든요. 관공서 환경미화원의 경우엔 서류전형부터 체력검증까지 통과해야 하고요. 건물이나 아파트에서 미화원 일을 하기 위해 책임자급인 반장이나 소장에게 연줄을 대려고 애쓰는 경우도 많아요. 그만큼 미화원으로 입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인데 앞서 성희 씨는 한국에 입국한 후 제일 먼저 청소 일을 시작했다고 했었잖아요. 성희 씨가 쉽게 취업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노년의 나이에 쉽게 취업했던 비결

마순희: 비결은 부지런함과 도전정신이라고나 할까요? 성희 씨는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부지런히 일자리를 찾으려 노력했고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성희 씨의 경우 2009년, 64세의 나이로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게 되었는데요. 60세 이상이라 하나원에서 나올 때 정착지원금 외에 노령지원금까지 받아가지고 나왔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고 거주지역 노인복지정책의 혜택을 누리며 여유있게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성희 씨는 중국에 남아 있는 세 자식과 북한에 두고 온 딸까지 있는 형편이었기에 남들처럼 편하게 쉴 수가 없었습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64세인 성희 씨가 일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멀지 않은 곳의 아파트에서 청소하는 미화원을 구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성희 씨는 입사를 지원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성희 씨는 망설임이 없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성희 씨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북한에서의 출신성분이 좋았던 분이었기 때문일까요?

북한말투와 사회생활

마순희: 네. 후자가 맞습니다. 사실 하성희 씨는 인텔리 출신으로 북한에 있을 때 전문대학의 경리과에서 근무했습니다. 북한에서 한 자리 했던 사람일수록 한국에서 정착하는 동안 더 큰 어려움을 겪는 편이라고 제가 몇 번 말씀드렸었는데요. 자기보다 못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게 가장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희 씨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고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성희 씨의 마음과 달리 주변 상황 때문에 아파트 청소미화원으로 일을 시작하기가 어려웠는데요. 성희 씨의 숨길 수 없는 북한 말투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성희 씨가 탈북민이라는 것을 알고 업체도 채용여부를 조금 주저했다는데요. 이내 성희 씨를 받아 주었고 성희 씨는 아파트 청소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아무리 각오를 단단히 했어도 인텔리였던 성희 씨에겐 청소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쉽지 않았습니다. 일도 힘들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말과 행동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한국 사람도 일자리 못 찾아 힘든데 왜 하필 탈북민을 쓰는지 모르겠다면서 성희 씨를 대놓고 무시하고 때론 욕까지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성희 씨에게 차례진 곳은 다른 미화원들이 기피하는 제일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입주민들 중에는 몸이나 정신이 불편한 장애인 분들이 계신데 성희 씨가 맡은 아파트 동에 종종 복도에 용변을 보는 장애인분이 계셨던 겁니다. 층계도 유독 지저분했고 지독한 냄새까지 나는 곳을 성희 씨가 청소해야 했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눈물도 났지만 성희 씨는 감옥에서 고생하는 딸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김인선: 성희 씨는 매일 아침, 매 순간 자신과의 싸움을 했을 것 같아요. 출근하지 말까, 다른 일을 찾아볼까 하면서요. 성희 씨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