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암을 이겨내고 제 3의 인생을 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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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나이 들면서 주변에 암에 걸렸다는 분들 숫자가 늘어서 걱정입니다. 제 주변으로도 여럿 있는데요. 다행히 의학의 발달로 암은 예전처럼 불치병으로만 여기진 않죠.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건강한 삶을 사는 분들도 많으시니까요. 탈북민들 중에도 큰 병을 이겨내고 멋지게 살아가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목숨 걸고 탈북을 하고 또 한국행까지 어려운 걸음을 한 우리 탈북민들이 한국에서만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정착해서 어려움 없이 살아갔으면 참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살 때에는 의료체계가 열악했고, 탈북 후 중국이나 제3국 등에서 살 때에는 불법체류자로 숨어 지내는 신세다 보니 작은 병원조차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고열과 통증이 심해도 약을 구해 먹는 정도였지,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처럼 병을 미리 예방하는 건강검진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습니다. 탈북민 대다수가 이런 환경에서 지내왔었기에 한국에 왔을 때 아픈 분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암을 이겨내고

3의 인생을 살고 있는 탈북여성

탈북민이 한국에 입국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종합검진을 받게 되는데요. 이때 많은 분들이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알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크고 작은 병을 알 수 있습니다. 질병이 발견되는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게 되고 많은 탈북민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데요. 때때로 뒤늦게 큰 병을 얻는 사례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분이 그런 경우인데요. 처음 한국에 도착해서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이상이 없었는데 한국 정착 9년 차이던 2009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이영선 씨입니다. 지금은 유방암을 이겨내고 멋지게 살아가는 이영선 씨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인선: 여성들에게 발병되는 암 중에 유방암 발생률이 가장 높다고 해요. 미국에서는 유방암이 오래 전부터 여성 암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요. 한국에서도 2001년부터 지난 2022년까지 여성 암 중 가장 많은 암으로 보고됐는데요. 지금까지도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가 자기 몸을 잘 확인해야 합니다. 발병 원인을 확실히 규명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으니까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게 최고의 예방책이고 또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될 수 있는 질병인데요. 의외로 검진을 안 받는 분들도 많거든요. 영선 씨는 어땠나요?

병원 기피하는 탈북민들 많아

마순희: 네. 영선 씨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안 받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탈북민들 중에는 죽을 만큼 아파야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벼운 증상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영선 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통증이 느껴졌을 땐 생리 시기가 되었나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고 평시보다 다르게 가슴 부위에 통증이 느껴졌을 때에는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영선 씨는 당시 어린 아들을 키우면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이 힘든 거라고 가볍게 넘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슴의 통증이 잦아졌고 영선 씨의 모습은 늘 힘들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이 제발 병원에 좀 가라고 권유할 정도였다는데요. 영선 씨도 지속되는 통증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증상이 시작된 후 한참이 지나서 찾은 병원에서는 유방암 3기가 넘었다는 진단을 내렸고 영선 씨는 그날로 병원에 입원하여 바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위암이나 대장암 등은 최소 두, 세달 정도 기다려야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있지만, 유방암의 경우 진단받고 바로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김인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사고이고 불행이라고 말은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영선 씨가 감정적으로는 덜 아팠기를 바래봅니다. 수술 이후 항암치료도 받아야 하고 자신과의 힘든 싸움이 시작되는데요. 영선 씨는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두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마순희: 네. 영선 씨는 유방암 진단 후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두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매일 한 줌씩 빠져 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절망에 빠졌고 잘 먹어야 회복이 된다 하지만 음식 삼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처방 받은 구토억제제를 먹어도 음식물을 뱉어내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기에 하루하루 힘든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영선 씨는 2년간의 투병생활 내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불행이'라는 원망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더 힘들었습니다.

만약, 이때 병원비에 대한 걱정까지 보태졌다면 영선 씨는 더 견디기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환자인 영선 씨 스스로 견뎌내야 할 고통은 컸지만 암 치료비의 거의 대부분을 나라에서 지원해 주어서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염려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병에 걸렸을 때 보상금이 나오는 보험상품에 가입해 두어서 암 진단금부터 입원비까지 지급받을 수 있었기에 부담없이 현대적인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선 씨 몸에 있던 암세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는데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던 중에 암세포가 목 주변 임파선으로 전이되어 2차 수술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재수술까지 받게 되는 상황이 영선 씨에겐 너무 큰 고통이었겠어요. 힘들겠지만 병마와 싸워 이겨내려면 영선 씨 본인의 의지가 강해야 하는데, 이미 많이 지쳐있는 상태잖아요. 특히 탈북해 혼자서 병마와 싸우다 보면 더 쉽게 지칠 것 같은데, 영선 씨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분들이 주변에 좀 있었을까요?

함께 탈북한 가족의 보살핌으로

이겨낸 병마

마순희: 네, 그렇습니다. 영선 씨가 다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병 치료에 전념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의 곁을 지켜준 사람은 가족이었습니다. 딸의 힘든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신 이는 친정 부모님이셨고, 또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아들이 곁을 지켰습니다. 가족 모두가 힘겨운 영선 씨의 치료과정을 함께 해 주었고 때로는 지나치게 예민한 그의 투정까지 모두 이해하고 받아 주었습니다. 그런 가족 덕분에 영선 씨 스스로도 마음가짐을 달리했습니다. 처음에는 절망하고 또 원망도 하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만 누구를 원망한다고 해서 이미 생긴 병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마음으로 병을 받아들이고, 치료에 전념하기로 한 것입니다.

또 종교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요. 힘들어서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면 교회를 찾아 기도를 하며 심신을 위로 받고, 마음의 안정을 잡아 나갔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가족의 응원, 그리고 종교의 힘으로 영선 씨는 힘든 시기를 잘 견뎌냈고, 2년간의 투병 후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건강을 찾은 영선 씨는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는데요. 암 투병을 시작하기 전 일했던 곳에서 아파트 경리주임으로 다시 회사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건강을 되찾고 일상으로 복귀했다는 말을 들으니까 제가 다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런데 아파트 경리 일을 하려면 회계 업무는 물론 컴퓨터도 다룰 줄 알아야 하거든요. 영선 씨의 경우 그런 기본 요건들을 다 갖추었다는 말이잖아요. 영선 씨의 예전 일상은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병마와 싸워낸 이영선 씨가 새로운 삶을 어떻게 개척해 나가는지, 다음 시간에 들어볼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