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제주도 사투리가 더 편한 탈북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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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지난 5일은 어린이날이었고 8일은 어버이날, 그리고 다가오는 21일은 부부의 날이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5월은 다른 달에 비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는데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에도 5월만큼은 자주 만나는 것 같아요.

탈북민들에게

명절만큼이나 외로운 가정의 달 5월

마순희: 네. 같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게 되지는 않는다는 요즘이지만 5월은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보니 다른 달에 비해 좀 더 많이 가족과 만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 탈북민들 중 누군가에게는 명절만큼이나 외로운 달이기도 합니다. 혼자 5월을 맞는 분들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 느껴지는 날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희 탈북민들은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가까이 사는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카네이션도 달아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면서 홀로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드리고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한국에 정착했다 하더라도 따로 떨어져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런 분들도 한 번씩 찾아 뵙고는 합니다.

김인선: 그래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을 하나 봐요.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자녀들이 평균적으로 한 달에 3.3회 꼴로 부모를 찾아 뵙고, 일주일에 2.2회꼴로 통화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하는데요. 이렇다 보니 요즘은 자녀들 보다 사회복지사 같은 시설에 계신 분들이 더 많이 연락하고 찾아 뵙는 것 같아요. 탈북민들 중에도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마순희: 네, 그렇습니다. 멀리 있는 자식들보다 가까이에서 돌보아 드리고 있는 요양보호사로, 혹은 자주 찾아 뵙지 못 하는 자식들을 대신해 부모님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시설에서 잘 돌보아 드리는 탈북민들이 많습니다. 저도 노인복지센터에서 일해 보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어르신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사랑으로 돌보아 드리고 있는 많은 요양보호사들이 계신데 오늘의 주인공도 그 중 한 분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15년 됐고 요양보호사로 근무한 지는 14년이 넘는 이다정 씨에 대해 소개해 드릴게요. 다정 씨는 2008년 11월에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으니 거의 정착 초기부터 지금까지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셈이랍니다.

탈북민들 중 요양보호사가 많은 이유

김인선: 정착 초반에 바로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취업교육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 정부에서 탈북민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지원하는데 남성들에게는 중장비 쪽으로 가는 분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여성들에게는 요양보호사나 미용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내실 있는 교육 과정이 마련됐는데요. 특히 요양보호사 과정의 경우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부터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많은 탈북여성들이 자격증 취득을 할 수 있었고 취업으로도 이어졌잖아요?

마순희: 네. 그렇습니다. 탈북민을 채용하거나 교육생으로 실습의 기회를 주는 업체에는 정부의 지원금 혜택이 있다 보니 저희들이 요양보호사로 취업하기는 용이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쉽게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일정 시간 교육만 받고 수료만 해도 요양보호사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에 성실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요양보호사가 될 수는 있었지만 요양병원이나 센터 등 기관에 들어가려면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출퇴근이 가능한 곳인지 시설의 위치를 알아야 하는 것부터 채용공고가 났는지 수시로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탈북민들의 취업을 지원해주는 복지사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는 사람에게 기회가 더 많은 법이죠.

하나원을 퇴소한 탈북민의 고민

무엇보다 지원자가 많다 보니 탈북민들끼리 한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하나원을 퇴소한 직후 바로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요. 2008년 40대 후반에 한국 정착을 시작한 다정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초기 정착금으로 나오는 300만원(2,600달러)은 전부 브로커 비용으로 주고 나니 다정 씨에게 남은 돈은 8만원, 60달러가 전부였습니다. 그 돈은 하나원에서 생활할 때 한 달에 4만원씩 주던 용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은 돈이었습니다. 집도 배정받고 기본적인 생필품도 지원받았기에 하루라도 빨리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다정 씨는 모든 것이 두려웠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무서웠고 나가자니 길을 몰랐습니다. 택시를 타면 이상한 곳에 데려갈 것만 같았고 버스를 타도 어느 곳으로 갈지 몰라서 선뜻 탈 수 없었습니다. 버스 타는 것이 두려워서 다정 씨는 한두 시간이 걸려도 걸어다녔다는데요. 5일장이 열리는 곳까지 매번 그렇게 걸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저도 경기도 연천이나 강원도 인제 쪽으로 놀러갔을 때 5일장이 열려서 구경한 적이 있어요. 서울에서는 5일장이라는 게 없어서 신기했거든요. 다정 씨가 사는 지역은 어디에요?

마순희: 네, 다정 씨가 사는 곳은 제주도입니다. 탈북민들 상당수가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을 거주지역으로 선호하고 먼저 한국에 정착한 가족이나 지인이 지방에 있는 경우에나 타 지역을 선택하는 편인데요. 다정 씨는 아무 연고도 없는데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도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도 우습다는데요. 다정 씨가 제주도를 거주지로 신청한 이유는 정말 단순했습니다. 처음 하나원에서 거주지 신청을 받을 때 40대 후반인 자신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차라리 자그마한 섬에 가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제주도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탈북민이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하지만 생각한 것과는 달랐습니다. 섬은 병원 같은 부대시설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심도시로 나갈 수 있는 교통편도 불편했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혼자여서 외롭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제주에 정착한지 한 달쯤 지날 무렵, 12월 연말 행사가 있다고 해서 참석했고 자신 말고도 많은 탈북민들이 참석해서 무척 놀랍고 반가웠다고 합니다. 먼저 제주도에 정착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다정 씨는 마음의 위안을 얻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버스 노선도 알게 되고 혼자서도 원하는 행선지까지 가는 버스를 잘 찾아서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시간이 걸려도 걸어갔던 5일장에도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됐고 버스 기사와 인사를 나눌 정도까지 됐습니다.

김인선: 요즘은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유행할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도 많고,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말이 잘 통하는 편이지만 제주 토박이들을 만나게 되면 제주 사투리가 아예 다른 나라 말처럼 어지간해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많아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제주도 방언은 외국어보다 더 알아듣기 어렵다고 할 정도거든요. 가뜩이나 탈북민들은 언어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다정 씨는 말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보네요.

버스 기사에게 일자리를 소개 받은 다정 씨

마순희: 네, 물론 제주도 방언이 심한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 서로 다른 중국에서도 잘 버텨온 다정 씨에게 못 넘을 산은 없었습니다. 토박이들이나 알아들을 법한 말을 하면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하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정 씨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거리낌없이 물었고 제주도 방언도 조금씩 배웠습니다. 버스를 타고 처음 5일장에 나가던 날에는 버스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다정 씨는 무슨 일에든 적극적이었습니다.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다정 씨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던 기사님은 연락처를 달라고 했고 며칠 후 기사식당에서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전화연락을 해 왔다고 합니다. 다정 씨는 두 말없이 승인했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다정 씨의 사교성이 굉장하네요. 버스 기사님의 추천으로 취업을 했다는 분은 처음이거든요. 기사식당에서의 직장생활이 기대되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