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들을 위해 사는 탈북민 임수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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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국에선 올해 추석 연휴에 몇 년간 코로나비루스로 고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까지 나서면서 추석 연휴 기간 하루 평균 이동 인원이 632만 명에 달했습니다. 고향 오가는 고속도로도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시간이 더 걸렸고요. 그런데 고생스럽더라도 고향 가는 남한 사람들이 부럽다는 탈북민들이 많더라고요.

마순희: 물론입니다. 저도 그렇고요. 설이나 추석이면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의 부모형제를 찾아가는 남한 사람들을 볼 때면 고향생각과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그래서 탈북민들 중에는 명절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명절 전에 각 지역의 복지관이나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하나센터, 그리고 봉사단체들에서 가정방문도 하고 명절 선물도 갖다 주면서 위로를 해 주지만 고향에 찾아 갈 수 없는 아픔은 치유가 될 수 없으니까요. 저 역시 사랑하는 세 딸과 함께 있어도 형제, 자매에 대한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내색을 안 하려고 해도 명절이 되면 마음이 더 힘들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혼자 계시는 분들은 고향생각에 더 울적해지고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탈북민들을 위해 사는 여자 임수향

홀로 계시는 분들의 마음이 충분히 헤아려지는 만큼 명절 때는 더 자주 전화도 하고 챙기기도 하면서 외로운 마음들에 힘이 되어 주는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분도 그런 고마운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1998년 탈북해서 2007년에 한국에 입국한 임수향 씨인데요. 올해로 50살, 한국정착 15년차가 됐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임수향 씨는 자신이 가장 어려워하고 아파하는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것으로 외로운 마음의 탈북민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분입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정착하다 보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한국 정부에서는 탈북민들을 위한 각종 보호담당관 제도와 지역협의회, 정착도우미 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거주지에 전입한 탈북민이 지역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라는 제도가 있는데요. 임수향 씨가 바로 전문상담사로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탈북민들의 인생을

한순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 상담사

김인선: 탈북민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 중에 탈북민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 큰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취지로 한국 정부에서는 남한 전역에 탈북민 전문상담사를 배치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데요. 탈북민 전문상담사는 크게 정신적인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활심〮리상담사, 그리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는 취업상담사 이렇게 두 분야로 나뉘는데요. 임수향 씨의 경우엔 생활심리상담사인 거죠?

마순희: 맞습니다. 임수향 씨의 경우에는 생활심리상담은 물론 종합적인 상담을 하는 전문 상담사인데요. 상담을 하다 보면 생활심리상담이나 취업상담 외에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건강이나 의료, 교육, 복지 등 각 분야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고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임수향 씨를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활동하는 상담가라고 자신있게 표현할 수 있지만 사실 초창기에는 상담가라기보다 안내자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수향 씨는 한국정착 2년이 지난 2009년에 제1기로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탈북민들과 마음을 나누는 전문상담사로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탈북민의 의료혜택을 지원해주는 국립의료원 상담실이 수향 씨의 첫 근무지였습니다.

저도 수향 씨와 함께 1년 정도 일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국립의료원을 거쳐 탈북민들의 전반적인 정착지원을 해주는 남북하나재단 종합상담센터 상담사로 근무했는데요. 수향 씨는 그 후에도 국립의료원, 서울의료원 등 탈북민 전담 병원 상담실에서 상담 안내 업무를 계속했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많은 탈북민들이 상담사를 찾게 되는 곳에서 상담을 한 거죠. 한국에 처음 정착을 시작하는 탈북민에게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이 건강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물론 탈북민들은 의료급여수급자로 거의 모든 병원들에서 무료나 다름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의료혜택이 가능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탈북민을 위한

의료혜택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탈북민 많아

상담사의 도움을 받고 현대적인 한국의 의료체계에 대해 알게 되고 혜택을 받으며 이용할 수 있게 되는데요. 건강검진은 물론 정밀하고 체계적인 검사까지 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탈북민들이 많다 보니 처음에는 상담이라기보다 안내 역할을 많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에 서로 다른 표현법으로 의료진과 탈북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그때마다 수향 씨가 중개자 역할을 많이 했었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처음 접하는 탈북민들과 점차 친숙하게 되고 건강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수향 씨가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김인선: 남한 출신의 상담사분들도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상담사가 같은 탈북민이라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 받는 느낌이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마음을 좀 더 쉽게 터놓을 수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그만큼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많습니다. 탈북민분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남한 사회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많아야 하죠. 처음부터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처음엔 탈북민 교육기관의 도움이 컸죠. 하지만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는 수향 씨의 노력이 필요했고요.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에는 수향 씨가 현장에서 업무를 하면서 직접적인 체감을 통해 필요한 요건들을 알게 되고 하나하나 채워 나갔습니다. 사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상담이라는 "상"자도 모르고 온 사람들이잖아요? 수향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수향 씨의 경우 북한에서는 함경북도의 한 두만강 유역 도시에서 역 안내방송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1998년 어느 날 20대였던 수향 씨는 휴가를 이용해 중국으로 건너갔는데요. 막연히 중국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돈도 벌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목숨 걸고 중국행을 선택하는 북한주민들도 많지만 '고난의 행군' 시절 이후로 국경을 넘나들며 장사를 하던 탈북민들이 상당히 많았기에 수향 씨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수향 씨의 눈에 중국은 북한에서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였습니다.

휴가 때 놀러 간 중국서 10년

북한과는 다른 풍족한 생활에 동생들도 탈북시켜

아시는 것처럼 중국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탈북민의 생활이 달라지는데요. 수향 씨의 경우에는 중국에서 큰돈을 들여 호구(호적)도 만들고 비교적 마음 놓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향 씨는 처음 생각했던 계획을 수정하고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가는 대신 북한에 남아 있던 두 동생을 모두 중국으로 데려왔는데요. 당시 수향 씨가 중국생활을 시작한지 9년이 되던 2006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은 수향 씨처럼 호구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안 됐고 수향 씨는 동생들이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상태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향 씨의 호구를 만드는데 도움을 줬던 브로커에게 한국에 가면 집도 주고 살아갈 수 있게 다 해 준다는 말을 듣게 됐고 수향 씨는 그 말을 믿고 동생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이후 수향 씨는 2007년도에 중국 국적으로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김인선: 중국에서 10년 동안 잘 살았던 수향 씨가 동생들의 신변문제로 한국행을 선택했는데요.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임수향 씨의 한국정착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