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장사의 신 함경도 아지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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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물가도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안 오른 게 없는데요. 특히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먹는 외식, 춘장으로 고기와 채소 등을 볶아 면에 비벼 먹는 짜장면 가격은 지난해보다 10%나 올랐더라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제가 체감하는 물가는 그보다 더 오른 것 같더라고요. 저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요즘엔 시장에 나가도 7.5달러 정도 되는, 한국 돈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나가서는 별로 살 것이 없다고들 말하거든요. 외식 물가의 경우에는 혼자서는 거의 하지도 않고, 딸들이랑 먹을 때면 애들이 다 알아서 주문하고 계산하다 보니 식당의 음식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자조모임이라고 우리 탈북민들을 위한 동네의 작은 소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주변 분들이 말해줘서 음식 값이 많이 올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 동네에 면사무소라는 식당이 있는데 짜장면 한 그릇에 8천원(5.9달러)이거든요. 그런데 지난해에는 6천원(4.4달러)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식당에 가든 그동안 가격 부담 없이 맛있게만 먹었었는데 새삼스레 딸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 값이 오른 것처럼 다른 물가도 가격이 다 오른 것 같아요. 동네 미용실만 보더라도 머리염색이나 파마하는 가격도 올랐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엔 웬만하면 머리 염색을 미용실에 가서 하지 않고 동네 친구들끼리 서로 해 주고 있는데요. 서툰 솜씨지만 돈도 안 쓰게 되고 오히려 더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김인선: 맞아요. 많은 분들이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더라고요.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구내식당이나 저렴한 식당을 일부러 찾아간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가격이 착해서 착한 식당이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물가가 올라도 음식 값을 거의 올리지 않는 식당을 의미합니다. 탈북민 중에도 착한 식당을 운영하는 분이 계시다면서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우리 탈북민 중에도 착한 식당을 운영하는 분이 계신데요. 바로 경기도 광명시에서 순댓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수진 씨입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수진 씨의 식당은 유명한데요. 식당을 연 지 1년도 채 안 됐을 때였습니다. 수진 씨는 2016년에 식당을 열었는데요. 순댓국밥 한 그릇에 3900원(3달러)이라는 가격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당시 순댓국 한 그릇은 평균 7천원(5.3달러)이었거든요.

김인선: 손님 입장에서 든든한 순댓국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면 좋지요. 수진 씨네 식당에 가면 순댓국 한 그릇 가격으로 두 명이 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싸게 팔면 밑지기 쉬운데, 수진 씨가 한국 물정을 잘 모르고 음식 장사를 시작한 건 아닐까요?

마순희: 당시 수진 씨 주변에서도 선생님 같은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장사를 시작하는 수진 씨에게 많은 사람들이 4000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순댓국을 팔면 남는 게 있겠느냐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하는데요. 수진 씨는 싼 가격에 많이 팔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밥 값은 저렴해도 싼 재료를 쓰지 않았습니다. 좋은 재료에 정성을 쏟았는데요. 국물 맛을 결정하는 고기만 하더라도 순댓국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썼습니다. 아시다시피 사골은 계속 우려야 하잖아요. 우리고 물을 붓고 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데 수진 씨는 그 과정들을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걸 손님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길 옆에다가 가마솥 두 개를 걸어놓고 거기서 직접 소뼈와 고기를 끓이는 것입니다. 수진 씨의 영업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손님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니 소문이 나면서 식당을 낸 지 얼마 후부터는 2호점을 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수진 씨의 순댓국밥집은 손님으로 붐비는 맛집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올해로 수진 씨가 순댓국밥집을 운영한지 이미 7년차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수진 씨네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김인선: 여전히 장사가 잘 된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경기와 재료 값 상승으로 음식 값을 안 올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업주들이 많거든요. 착한 가격으로 장사하다가 폐업을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수진 씨네 식당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남새 가격부터 고기 값 등 재료비가 안 오른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수진 씨는 반찬으로 나가는 김치도 직접 담그다 보니 부담이 더 컸습니다. 중국산 김치를 사서 쓰면 훨씬 더 저렴하니까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순댓국 보통 양은 6천원, 좀 더 많은 양 '특'은 7천원으로 가격을 올렸다고 하는데요. 15살 미만의 학생들에게는 7년 전 가격 그대로 3천900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15세 이상인 경우에만 6-7천원을 받고 있는데 짜장면 한 그릇에 8천원(5.9달러) 하는 주변 시세에 비하면 아직도 많이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수진 씨네 순댓국밥집에 가보면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답니다.

김인선: 음식점이 워낙 많다 보니 요식업에 도전하는 자영업자의 약 70%는 3년을 유지하지 못하고 폐업을 결정하게 된다는 통계가 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수진 씨는 벌써 7년째 한 자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과연 수진 씨의 성공비결이 뭘까요?

마순희: 네. 자신만의 조리법 개발과 성실한 자세, 그리고 꾸준한 체력관리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순댓국밥 사장님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수진 씨의 비결에 대해 말씀드리려면 먼저 수진 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수진 씨는 1999년 26세의 나이로 혼자 중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어가지고 북한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중국에 간 수진 씨는 연길 시내의 한 식당에서 일했는데요.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성실함으로 사장님과 동료들에게 평판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수진 씨의 그런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사람도 있었고, 수진 씨는 한 조선족 직원의 밀고로 1년여 만에 체포되어 북송되었습니다.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나온 후 수진 씨는 2001년에 다시 탈북했습니다. 이번에는 연변보다는 비교적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좀 더 깊숙이 들어와 산동성에서 숨어 살면서 농사 일도 하고 식당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하시겠지만 수진 씨는 조선족 남자를 만나서 살게 되었는데요. 아이도 낳고 10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보니 수진 씨는 지인의 권유로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중국에서 지내다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바로 온 탈북민보다 한국 정착이 수월한 편이라고들 하는데요. 11년을 중국에서 살다가 온 수진 씨는 정착이 쉽지 않았습니다. 같은 한국말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중국말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런 수진 씨를 보고 주변에서 중국말을 잘 한다고 무역회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난생 처음 해 보는 회사생활이 쉽지 않았고 회사 업무와 동료들 사이에서 좌충우돌 하다가 결국 다섯 달 만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수진 씨가 다음으로 취직한 곳은 주유소였는데 무역회사에서보다 직원들과도 잘 지냈고 업무도 힘들지 않아서 2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수진 씨는 주유소에서 그보다 더 오래 근무할 수 있었는데요. 사장님이 수진 씨를 그만 두게 만들었습니다.

김인선: 2년이나 근무했는데 그만 둔 이유가 뭘까요. 혹시 수진 씨가 주유소 사장님한테 부당한 처우를 받았던 걸까요? 수진 씨의 한국 정착 이야기, 그리고 순댓국집 성공 비법에 대한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