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정다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2006년에 한국에 입국한 다희 씨는 3개월간의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을 마친 후 곧바로 식당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거주지 배정과 함께 한국 정부로부터 받았던 탈북민 정착지원금을 브로커 비용으로 바로 갚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만 했으니까요. 중국에서 지내던 5년 동안 식당 일도 경험을 해봤기에 한국에 와서도 익숙한 식당 일을 선택했고 다희 씨는 일 잘하는 연변 아주머니로 통했다고 했죠?
연변 아주머니로 불리던 여자에게 일어난 일
마순희: 그렇습니다. 말투 때문에 조선족이냐는 말을 자주 듣게 됐는데 다희 씨는 애써 탈북민이라고 밝히지 않았기에 연변 아주머니로 불렸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식당 일은 밤 11시가 되어야 끝났지만 다희 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했습니다. 3년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하던 다희 씨는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는데요. 식당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척추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게 된 것입니다.
김인선: 미끄러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척추에 부상을 입게 되는데요. 갑자기 몸을 구부리거나 무거운 물건을 운반할 때에도 척추 손상이 올 수 있다고 해요. 구부정한 자세로 긴 시간 있다 보면 척추가 옆으로 휘어지는 '척추측만증'이 생기기도 하죠. 어떤 이유로든 척추에 손상이 생겼을 경우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데요. 치료가 늦어지거나 통증이 심한 경우 철심을 이용해 척추를 고정하는 수술이 필요할 수 있거든요. 다희 씨처럼요.
마순희: 네. 사실 다희 씨의 경우에는 척추의 이상이 북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에서 다희 씨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선반공으로 근무했는데요. 무거운 쇠붙이를 다루기도 했고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쇠를 깎아야 하다 보니 척추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긴 시간 일하면서 척추에 손상이 간 거죠. 발꿈치가 저리는 현상도 있었고 통증도 있었지만 아팠다 안 아팠다를 반복하는 정도로 증상이 심하지 않았던 지라 다희 씨는 일을 많이 해서 생긴 근육통 정도로 여겼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지내는 5년 동안에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한 가족들의 비극적인 소식에
180도 달라진 그녀의 삶
북한에서처럼 무거운 쇠붙이를 다루지 않았지만 식당 일을 하면 식자재 등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다희 씨의 몸에 무리가 갔던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지 3년이 되던 2009년에 다희 씨는 척추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으며 강제 휴식기간을 갖게 됐습니다. 건강 문제로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생계급여 수급자로 선정되고 생활비도 지원받았습니다. 살아가는데 있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다희 씨의 마음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이어 북한에 남아있던 어머님과 오빠, 그리고 동생까지 건강이 좋지 않았었는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다희 씨는 몸도 마음도 지탱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김인선: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게 됐는데 북한에서 좋지 않은 소식까지 들려왔으니 다희 씨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힘들 때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가족인데 이제 아무도 없네요.
마순희: 다행히 다희 씨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남편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다희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다희 씨가 입원해 있던 국립의료원의 북한이탈주민 상담실 상담사 분들도 매일 아침 병실에 찾아와주며 상담해 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을 함께 받았던 하나원 동기생들도 시간을 내서 다희 씨를 찾아와 주었고 적십자 봉사자 분들은 수술로 거동이 불편했던 다희 씨의 손과 발이 되어 보살펴 주었습니다. 자기를 생각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 주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치유될 수 있었다며 다희 씨는 지금도 주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북5도청에서 인생을 바꾸다
다희 씨의 손과 발이 되어 보살펴 주던 봉사자 분들이 통일에 대비해 설치된 행정기구인 이북5도청의 특별교육프로그램 통일학교를 권유해 주었고 다희 씨는 컴퓨터와 비즈공예를 배웠습니다. 처음엔 작고 섬세한 비즈공예가 낯설고 과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인지 걱정도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재미도 있고 섬세함이 필요한 기술도 하루하루 늘어갔습니다. 다희 씨는 비즈공예 교육을 수료한 것은 물론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하나하나 예쁜 작품들을 만들어 낼 때마다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도 함께 높아졌고 다희 씨는 비즈공예 전문가로서의 기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작은 실패와 시련에도 좌절하고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삶의 의욕을 상실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희 씨는 시련을 겪은 후 심적으로 더 단단해지신 것 같아요. 척추 수술 이후 새로운 시작도 하고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이 되셨으니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통일학교에서도 교육기간 동안 보였던 다희 씨의 성실한 생활태도와 적극적인 학구열을 높이 평가했을 정도였습니다. 자격증 취득까지 마친 다희 씨의 모습을 본 통일학교 측에서는 교육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다희 씨를 발탁하는 높은 신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2013년부터 다희 씨는 비즈공예 강사를 시작했는데요. 자신이 교육생으로 수업을 받던 교육 장소에서 다른 분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책임감 뿐 아니라 부담감까지 컸지만 다희 씨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기 전 무조건 자신이 먼저 공예품을 만들어보며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운지를 확인했습니다. 수강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며 최선을 다 해 가르쳤기에 교육생들도 모두 만족해했고 통일학교 내에서 다희 씨의 입지도 굳건히 자리잡았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성공의 비결’
비즈공예 강사로 일하며 다희 씨는 전문성 뿐 아니라 마음에도 많은 변화를 생겼다고 하는데요. 생각을 바꾸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다희 씨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 자신은 돈 밖에 몰랐던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입당을 목표로 남보다 몇 갑절 더 많이 일했고 노력하느라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었고 중국에서는 식당 일, 청소 일, 공장 일, 돈이 된다면 가리지 않고 몸을 혹사했답니다. 한국에 온 초기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식당 일을 했었던 것 같다며 다희 씨는 얼굴을 붉혔는데요. 건강을 잃은 다음에야 돈보다도 건강이, 자신의 행복이 먼저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건강이 받쳐주면 돈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벌 수 있다며 우선 대학에 진하거나 여러 기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말을 다희 씨는 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본인도 그런 과정을 통해 50살에 강사가 되었다면서 말입니다.
김인선: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을 하고 다들 멋진 노년의 삶을 꿈꾸는데요. 많은 분들이 새로운 공부를 하고, 좋아하는 것을 배우거나 즐기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인생목표로 삼더라고요. 그런데 다희 씨는 이미 그런 삶을 시작한 것 같은데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다희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 가졌던 생각을 빨리 버리고 대한민국에 필요한 인간형으로 다시 거듭나야 한다고요. 다희 씨는 한국에서 필요한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사회복지학 공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다희 씨도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더라고요. 통일학교의 강사자리는 젊은 세대에게 양보하게 됐지만 비즈공예 수업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작은 공방을 차리고 싶다는데요. 누구보다 건강의 소중함을 잘 아는 만큼 몸을 잘 챙기면서 다희 씨가 원하는 꿈을 이루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김인선: 매일매일 더 나은 모습이 되어가는 다희 씨처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지는 나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