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주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마순희: 저야 늘 그렇듯이 잘 지냈지요.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며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지내는데요. 지난주에는 제가 활동하고 있는 여성단체에서 전국 통일스피치대회 본선대회를 진행했기에 행사 준비와 참여로 평소보다 더 바쁜 한 주를 보낸 것 같습니다. 행사장을 찾아오는 청중들을 위해 이정표를 붙이는 일을 하면서 서울 시청 주변을 돌게 됐는데요. 날씨가 부쩍 서늘해지고 알록달록 단풍까지 보여서 가을이 깊어가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일요일에는 풍요의 계절을 만끽하며 억새축제로 한창인 하늘공원에도 다녀왔었답니다.
김인선: 근사한 한 주를 보내셨네요. 저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지난 주말에 잠깐 시내에 나갔는데요. 서울 종로구에 조계사라는 절이 있거든요. 그 주변을 지나게 됐는데, 여러 가지 소원 성취 글귀가 걸려있더라고요. 대부분이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글이어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자녀들의 대학 합격을 위해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애쓰는 모습은 남이나 북이나 다 비슷하죠?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북한엄마들이 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자식들만큼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해내는 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똑같겠지만 모든 것이 열악하고 힘든 북한이 조금 더 크지 않을까 감히 표현해 봅니다. 많은 북한의 엄마들이 자식이 굶는 모습을 더는 지켜만 볼 수도 없다는 막다른 골목에 선 심정으로 중국행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자식과 영영 이별을 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조금이나마 자식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북한의 엄마들입니다.
오늘 성공시대에서 소개해 드릴 주인공도 그런 북한 엄마 중의 한 분입니다. 오직 두 아들의 행복을 위해 중국행을 택했고 결국은 한국으로까지 올 수 밖에 없었던 정서윤 씨인데요. 북한에서 정서윤 씨의 삶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 후에 두 아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살림을 유지해 나가는 일상이었지만 자식들이 커 가는 모습을 위안 삼고 자식들이 유일한 희망이고 자랑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였습니다. 사는 건 고달파도 두 아들 모두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수재였답니다. 1등을 놓칠 새라 밤새워 공부하는 아들들을 보며 서윤 씨는 마음껏 뒷바라지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김인선: 공부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많은 엄마들은 한참 공부해야 하는 10대 청소년이 집에 있으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부터 보양식, 각종 간식은 물론이고 한약이나, 영양제까지 준비하는데요. 서윤 씨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거죠?
아이들 배불리 먹이기 위해 탈북 결심
마순희: 맞습니다. 간식은 고사하고 한참 먹을 나이였던 두 아들에게 배불리 밥이라도 먹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서윤 씨는 자신이 중국에 가서라도 돈을 벌어 아들들을 살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중국에는 사촌 언니들이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의 도움을 받으면 돈을 벌어서 다시 북한으로 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정서윤 씨는 2009년 1월 사사여행자로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김인선: 여행자 신분으로는 중국에 오래 머물지 못하잖아요? 서윤 씨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테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도강증의 기한은 1개월이었기에 서윤 씨는 떠날 때 이미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2년 동안만 지내면서 돈을 벌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었는데요. 당국에 돌아가면 처벌은 받더라도 한 밑천 벌어 가지고 가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김인선: 다들 돈을 벌어오겠다는 마음으로 중국으로 향하지만 북한여성들을 기다리는 건 인신매매 등 수많은 위험인데요. 중국 내 친척이 있는 경우엔 연고가 아무도 없는 탈북민들과는 상황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좀 더 안전한 일자리를 찾거나 어느 정도 신변보호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서윤 씨는 중국에 사촌 언니들이 있으니까 중국생활이 많이 어렵진 않았겠어요.
도강증 유효기간 만료 후의 삶
마순희: 어느 정도는 맞는 말씀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서윤 씨는 아무 지인도 없이 떠난 경우와는 달리 중국의 사촌 언니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기에 조금은 나은 상황이었고 또 중국행도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하는 길이 아니라 증명서를 가지고 떠난 길이었기에 신변의 위험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촌 언니의 주선으로 일자리 찾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식당에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요. 증명서의 유효기간인 1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서윤 씨 역시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됐습니다. 아무리 중국 내 친척이 있다고 해도 위험은 늘 뒤를 따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기에 서윤 씨는 식당 일을 계속 이어서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눈 꾹 감고 참으면서 2년만 버티고 나가자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주방보조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중국요리도 익혀 나가며 수걱수걱 일을 찾아서 했습니다. 눈치 빠르게 어려운 일도 서슴없이 맡는 서윤 씨의 성품에 사장님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모두 잘 대해 주었습니다. 서윤 씨는 그렇게 점차 자리 잡아 나갔고 6개월 후엔 사장님의 신뢰로 주방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급여도 점점 올라갔고 월 2500위안 정도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중국에서 식당 일을 할 때는 월 700위안을 받았었거든요. 서윤 씨가 2009년부터 중국생활을 했으니까, 저는 8년 전의 상황이었는데요. 원화 가치가 아무리 많이 올랐다 해도 월 2500위안이면 엄청난 금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임도 많았지만 식당에서 일했기에 서윤 씨는 먹고 사는 문제에 돈을 쓸 일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가족을 위해서는 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보내겠다는 마음뿐이었기에 로임을 받는 족족 북한으로 내 보냈습니다. 북한으로 돈을 보내면서 서윤 씨는 한국에서 북한으로 돈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전달하는 일까지 하게 됐습니다. 돈을 보내려는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김인선: 안정된 직장에 주방장까지 됐고 부업으로 한국과 북한을 연결해서 돈을 전달하는 일까지 2년 동안 했으니 서윤 씨가 계획한 만큼 충분히 돈을 벌었겠어요. 그런데 서윤 씨는 처음 계획대로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가는 대신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선택했는데요. 서윤 씨 심경에 변화가 생긴 사연이 뭘까요?
남편의 배신으로 고향으로 못 돌아가
마순희: 네. 처음 결심했던 대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깡그리 북한으로 내 보내던 서윤 씨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충분히 돈을 벌었기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서윤 씨를 좌절하게 하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그동안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서윤 씨가 돌아오기만 하면 추방시킨다고 추방자 명단에 적어놓고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생활고를 해결하려고 나섰던 자신을 추방시키겠다는 나라에 대한 원망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싹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중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에서 북한으로 돈을 보내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며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에 대해 알게 된 서윤 씨였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도 한국에 가서 당당한 신분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가면 사랑하는 두 아들도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김인선: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인해서 계획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2년 동안 열심히 돈 벌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서윤 씨에게 남편의 배신이라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겼고 그로 인해 서윤 씨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것처럼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기에 걱정이네요. 탈북민들이 한국행을 하는 동안 겪게 되는 변수는 훨씬 더 많으니까요. 서윤 씨의 한국행 여정은 어땠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