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온 가족 탈북정착기(2)

하나원에서 탈북 여성들이 어린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하나원에서 탈북 여성들이 어린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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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주하윤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하윤 씨는 가족 전체가 탈북해 남편은 물론 두 자녀까지 동시에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낯선 한국땅에서 정착하기도 힘든 시점에 막내를 출산하셨어요. 시기적으로 산후우울증이 생길 수 있어서 무엇보다 남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하윤 씨의 남편은 하윤 씨의 마음을 몰라주셨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2002년 1월 압록강을 건너서 같은 해 9월에 한국에 입국한 주하윤 씨는 11살, 13살 두 자녀가 있었는데요. 40이 다 된 나이에 막내딸을 보게 됐습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한국사회에 적응하느라 바빴기에 하윤 씨 혼자 갓난아이를 돌봐야 했습니다. 힘든 기색이라도 보이면 남편은 북한에 비하면 환경도 좋은데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애 키우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드냐며 하윤 씨에게 나약해졌다고 나무랐습니다. 물질적인 면으로만 보면 풍요로웠습니다.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생활 걱정이 없는데다 아기용품이나 아기 옷 등도 마음대로 골라서 이용을 하고 1회용 기저귀가 있어서 기저귀를 빨 일도 없었습니다. 모유수유는 했지만 분유도 있고 이유식도 다 갖추어져 있어 부족함이 없는 육아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하윤 씨는 북한에서 두 아이를 키울 때보다 한국에서 막내를 키우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당연히 엄마 몫이라고 생각했던 육아문제가 남한에서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아이 둘 키우기보다

남한에서 아이 하나 키우기가 힘들다?

한국에서는 부부가 함께 아이 양육부터 집안일을 하는 것은 물론 아이가 아프거나 예방접종을 할 때에도 남편이 동행했습니다. 남편이 여건이 안 되면 양가 식구 중 누구라도 함께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집에만 있다 보니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커지고, 한편으론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북한에서처럼 자신이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 혼자 벌어서 다섯 식구가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장하는 아이들이 셋이나 되다 보니 생활비나 교육비 등 모든 것이 원만할 수가 없었기에 하윤 씨는 자신도 일하면서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막내가 세 돌이 지나서부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하윤 씨는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그럼에도 남편이나 자식들의 지지와 도움은 아주 미미했습니다.

김인선: 바깥일까지 시작하면서 하윤 씨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어요. 힘든 선택을 한 것이 아닌지 걱정인데요. 사회생활이 하윤 씨에게 활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막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시작한 일은 뭐죠?

마순희: 네. 정규회사보다 시간이 비교적 여유가 많은 청소일 즉 미화원 일이었습니다. 청소하는 일이라 시키는 대로 나만 잘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는데요.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남북한의 문화 차이나 서로 이해하는 마음의 부족 등 언어소통의 어려움이 많았었고 일하는 것보다 인간관계가 어우러지는 사회생활이 더 힘들었다는 하윤 씨입니다. 그런데 하윤 씨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직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윤 씨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은 바로 늦둥이 막내딸이었습니다. 막내딸은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문을 닫아걸고 대화를 단절했습니다. 큰 애들을 키울 때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일들이라 하윤 씨는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커 갈수록 막내의 막무가내는 더했고 이기적으로 자라는 것도 모자라 부모에게 반항하는 모습, 형제와 다투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그런 막내의 모습이 하윤 씨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비단 하윤 씨 뿐 아니라 우리 탈북민 가족들 사이에서 많이 드러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탈북민 가정,

남한에서 낳은 아이와의 갈등 생각보다 커

김인선: 남한에서 낳아 키운 아이와 북한에서 나고 자란 가족 사이에 문제 있는 경우가 많은가요?

마순희: 네, 가정적인 문제는 남이나 북이나 다 마찬가지로 있겠지만 탈북민 가정 내에서의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국립의료원 상담실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사례인데요. 한국에 정착하면서 아들을 낳아 키우게 된 탈북 여성이 뒤늦게 북한에 있던 스무 살이 넘은 딸을 데려온 경우였습니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정착에 어려움을 느낀 딸이 엄마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고 해요. 엄마가 자신을 버렸고 북한에서 혼자 어렵게 지내면서 공부도 못 했었기 때문에 또래들보다 자기가 더 뒤쳐진다는 거죠. 엄마는 엄마대로 힘들게 돈 벌어서 생활비도 보내주고 브로커비용을 마련해서 한국에 데려왔는데 고마운 마음보다 원망이 더 많은 딸에 대한 서운함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모녀의 싸움이 잦아지니까 한국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이 어디서 저런 아줌마가 와서 우리 엄마와 싸우냐고, 우리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누나한테 소리를 치고 그랬대요. 이런 갈등이 생각보다 꽤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관계가 좋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인선: 홀로 한국에 와서 고생고생을 하며 돈을 모아 북한에 남은 자녀를 데려왔을 때 그 세월의 간극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만만치 않지만, 새로 낳은 자녀와의 갈등도 만만치가 않네요. 아무래도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탈북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심리상담

마순희: 탈북민들이 어려워하는 게 심리상담인 것 같습니다. 집안의 문제를 가지고 센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니까요. 어떤 문제든 집안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때로는 문제가 더 크게 번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탈북민 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윤 씨의 경우에는 본인 스스로 어디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교육이나 상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윤 씨가 한국에 정착했을 때는 이미 한국정부 차원에서 탈북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상담 시스템들을 구축해 둔 상태였고 직장인들을 위한 주말의 아버지학교, 사회문화통합교육, 가정폭력 예방교육 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들을 접하면서 하윤 씨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생겼고 서툴렀던 감정표현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윤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남한문화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서로의 꾸준한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지금은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에는 문제점이 없는지 돌아 볼 여유가 없었는데 돌이켜 보니 가정의 화목은 어느 한 쪽의 노력이 아니라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하윤 씨가 달라진 것처럼 남편도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하윤 씨의 진심이 남편에게도 전해졌겠죠?

마순희: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윤 씨의 변화에 남편도 달라졌으니까요. 북한에 있을 때에 비하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뜰한 남편으로, 자상한 아빠로,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서 이제는 남편의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는 하윤 씨입니다. 입국 당시 10대였던 두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까지 이뤘습니다. 큰 딸은 3년 전에 하윤 씨를 외할머니로 만들어 주었고 아들도 얼마 전에 하윤 씨에게 손주를 안겨 주었습니다. 하윤 씨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막내딸은 언제 문제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라는데요. 너무도 착실해진 귀염둥이 막둥이, 남편과 함께 지금 너무도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가끔 북한에서 함께 어렵게 한국에 온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가족 내에서 여성과 남성, 또 나이 드신 분들과 젊은 사람들의 남한사회에 대한 문화적인 정착과 적응 속도의 차이 등 여러 가지를 극복하지 못 하고 안타깝게 헤어지는 분들도 보게 되는데 오늘 소개해 드린 하윤 씨의 성공적인 정착사례가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인선: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착과 적응의 속도는 달라도 방향이 같다면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하윤 씨가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