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10년 전 꿈꾸던 10년 후 나의 모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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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김은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은희 씨의 탈북 계기는 한국에 먼저 정착한 10대 아들이 엄마랑 함께 지내고 싶다는 말 때문이었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은희 씨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남편을 잃고 친정어머니와 아들을 보살피며 어려운 살림을 책임지고 살아갔지만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요. 아들이 어느 날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은희 씨가 살던 고장이 중국과 두만강을 사이에 둔 국경도시다 보니 10대의 아들이 친구들이랑 중국에 비교적 쉽게 넘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의 3년이 지났을 무렵 은희 씨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줬습니다. 아들은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이 좋은 세상에서 엄마랑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고 그 말에 은희 씨는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정착지원금으로 브로커선을 연결해 준 덕분에 은희 씨는 2003년 탈북해 2004년 11월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입국 당시 은희 씨의 나이는 47살이었고 아들은 18살,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은희 씨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생활에 정착을 해야 했고 건강상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일자리부터 찾았습니다.

김인선: 하지만 아무런 자격도 경력도 없는 40이 넘은 아줌마를 받아주는 회사는 거의 없거든요.

먹고 살 일 해결되니

부끄럽지 않은 엄마,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픈 마음 생겨

마순희: 네. 취직이 어려웠던 은희 씨는 자격증이나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식당 일이나 주유소 일처럼 부업부터 시작했습니다. 1년 정도 그렇게 단순노동을 하면서 은희 씨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돈을 벌 수 있어서 의식주 문제는 해결됐지만 은희 씨는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앞날을 꿈꾸었습니다. 밤새워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을 보면서 아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과 자신도 하나라도 배워서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김인선: 은희 씨 개인적으로는 힘든 상황이었겠지만 심리학적으로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삶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의식주와 같은 생존에 필요한 본능적 욕구가 해결되면 신체적, 감정적,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이게 해결되면 친구를 사귀고, 가족을 이루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해요. 그것도 해결되면 인정받고 싶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진다는데 은희 씨가 바로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게 아닌가 싶네요.

마순희: 네. 은희 씨가 그랬습니다. 언제까지나 부업만 하면서 살기에는 자신의 미래가 너무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은희 씨를 더 힘들게 했고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희 씨는 식당 일과 주유소 일을 서서히 줄이고 낮에는 탈북민들에게 무료로 컴퓨터 교육을 시켜주는 학원에 다녔습니다. 밤이면 부업을 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런 은희 씨의 모습에 지인들은 일자리 정보를 주었고 은희 씨는 자격증을 취득한 후 처음으로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그 일자리는 병원의 경리직 사원이었습니다. 10개월의 계약직이었지만 은희 씨는 당당히 면접을 통과해 취직에 성공했습니다. 주어진 근무기간 동안 성실히 근무를 하고 은희 씨는 그 경력을 바탕으로 제조업체의 경리직 사원으로 바로 취직이 됐습니다. 경력이 있으니까 취직하기가 훨씬 수월했다고 은희 씨는 말했습니다. 은희 씨는 남들이 한 걸음 걸을 때 열 걸음, 스무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했고 제조업체의 3년 근무 경력을 통해 좀 더 나은 조건으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또 다른 회사에서도 경리직으로 4년 이상 근무했습니다.

근근이 살아가는 부업보다

자격증 취득 후 경력 쌓아야

탈북민의 미래 달라져

김인선: 삶의 목표나 살아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다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답을 찾아간다는 거요. 은희 씨는 자신만의 답을 잘 찾아가는 것 같은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타치폰 사회관계망 계정에 자신만의 구호나 짧은 다짐 등을 기록하는데요. 은희 씨의 계정을 보면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은희 씨가 임하는 삶의 자세, 미래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희 씨가 직장생활 7년을 마무리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탈북민들의 성공적 정착과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카페창업과정에도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사업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입국 초기에 막연히 카페를 창업하고 싶었던 은희 씨였잖아요? 창업지원 프로그램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은희 씨는 고민 없이 지원을 했고 교육과정을 거쳐 카페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희 씨를 비롯해 탈북민 10여 명이 교대로 카페를 운영할 수 있었는데요. 이 기간의 경험을 통해 개인 카페를 창업하거나 바리스타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나재단에서는 3년간 창업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을 지원했습니다.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이었지만 은희 씨는 카페에 첫 발을 디뎠을 때를 잊지 못 한다고 합니다. 탈북해서 처음으로 하나원에서 했던 인터뷰,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카페를 창업하고 싶다고 했었던 순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운명처럼 인터뷰를 한 그날로부터 정확히 10년이 되던 그날 은희 씨는 카페에 서 있었습니다. 은희 씨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합니다. 원하던 꿈을 이루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로 꿈만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하나원에서 답했던 10년 후 나의 모습

10년 후 지금 그대로 이뤄

김인선: 박수 한 번 쳐드려야겠네요. 10년 후 나의 모습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그대로 이룬 사람은 못 본 것 같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은희 씨는 왜 카페를 하고 싶었을까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면 많은 탈북민들이 그렇듯이 커피 맛도 쓰다고 잘 안 먹을 때였을 텐데 말이죠.

마순희: 네. 탈북민 누구나 그러하지만 은희 씨는 한국에 와 보니 북한에서는 보지 못 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은희 씨의 눈길을 끈 것이 커피나 과일 음료를 파는 카페였다고 하는데요.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카페를 창업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커피는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하는 거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고 가끔 마시는 정도였지만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은희 씨는 커피 마시는 것도 일부러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커피를 만들어내는 바리스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커피 맛에 대한 전문지식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지금은 커피를 엄청 즐기게 됐다는데요. 어느덧 은희 씨가 카페를 운영한 지도 올해로 8년이 됐습니다. 큰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은희 씨는 지금 10년 전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카페 사장님이 되어있고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할 수 있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10대였던 은희 씨의 아들도 어느덧 30대 중반 나이가 되었습니다. 대학원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중견기업에 근무 중이라고 하는데요. 아들 장가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지금도 회사 일에만 열중한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아들 자랑에 미소 짓는 은희 씨입니다. 은희 씨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자격증 부자가 됐습니다. 대학 졸업은 물론 사회복지사 자격증, 심리상담사 자격증과 함께 한식조리사 자격증과 바리스타 자격증 등 여러 분야의 자격증들을 골고루 갖추었는데요. 자신이 준비되어 있어야 어떤 기회가 오더라도 잡을 수 있다는 은희 씨만의 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희 씨의 멋진 모습에 늘 감동하는데요.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김은희 씨의 힘찬 발걸음에 진심 어린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김인선: 누군가와 비교를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은희 씨네요. 은희 씨의 말처럼 지금부터 앞으로의 10년 후를 위해 뭐든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