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윤혜진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혜진 씨는 2013년, 40살 때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북한을 떠난 계기가 한국드라마 때문이라고 했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아버지가 북한 과학원에서 근무하셨던 덕분에 혜진 씨는 평양에서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며 자랐습니다. 혜진 씨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과학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북한에서는 특히 평양시에서는 생활이 일정수준이 되는 사람들 누구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고 CD로 한국이나 외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었고 혜진 씨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친오빠와 언니의 연줄을 통해 한국의 드라마를 즐겨 봤는데 영상물을 보다가 북한당국에 발각되어 혜진 씨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엄청난 고초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혜진 씨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갈망을 멈출 수 없었고 탈북을 했습니다. 지인의 친척 도움으로 중국에서 신분을 속이고 일자리까지 잡을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혜진 씨는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됐고 모진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수용시설에서 나온 이후에도 혜진 씨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이 더 굳어졌습니다.
김인선: 그래서 혜진 씨 홀로 다시 탈북을 시도했었다고 했어요.
마순희: 네. 다시는 북송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혜진 씨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떠났고 라오스, 태국을 거쳐 2013년에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선택한 한국행이었던 만큼 혜진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 생활을 하면서 배움으로 시간을 채워 나갔습니다. 이후 혜진 씨는 강원도 춘천시에 한국정착을 시작했는데요. 거주지가 정해지자 마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자리부터 찾았습니다.
김인선: 하루라도 빨리 정착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일자리부터 찾는 탈북민들이 있는데요. 너무 조급하면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고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살아가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탈북민 사기치는 건 탈북민 선배?
마순희: 다행히 춘천에는 먼저 정착한 탈북민들이 함께 활동하는 봉사단체가 있었습니다. 혜진 씨는 자연스럽게 그 단체 사람들과 어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아직 정착했다고 말하기에는 한참 못 미치는 탈북민들이 모였지만 서로 마음을 모아 봉사단을 운영하며 지역사회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하고, 정착하면서 겪는 어려운 점과 좋은 경험 등을 함께 공유해 가면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었습니다. 혜진 씨도 그 모임에 동참하게 되면서 도움도 받고 여러 가지 정보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원 있을 때에 누군가가 '사회에 나가면 사기를 치는 것도 탈북자 선배라고 하더라'라는 말을 해서 혜진 씨는 봉사단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처음엔 망설이기도 했다는데요. 하나원 내에서 먼저 정착한 탈북민들을 만나는 것을 조심하라는 조언만을 믿고 봉사단체에 나가는 것을 꺼렸다면 정착하는 게 더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어려움도 잘 이해해 주고 여러 가지 정보로 도움도 주는 선배들을 만나는 것이 큰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채용정보도 알려준 덕분에 혜진 씨는 한국정착 2년 만에 춘천 시청의 공무원이 됐습니다.
김인선: 아무리 채용정보를 알게 되어도 자격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취업이 쉽지 않죠. 탈북민 특별전형으로 모집을 한다 해도 시청의 공무원이라면 한국에 정착한지 오래된 탈북민들 중에도 지원을 하는 경우도 많았을 테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안정되고 자긍심이 느껴지는 일자리인 만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탈북민이라도 필요한 요건들을 갖춘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해당 부서 업무에 필요한 용어나 업무를 할 줄 알면 유리하잖아요? 정보통신과에서 채용하다 보니 북한에서 과학원에 다녔던 혜진 씨의 경력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뿐 아니라 혜진 씨는 한국에 와서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취득해 뒀기에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탈북민 직업 찾기 위한 시행착오는 기본
그렇다고 혜진 씨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한국에 정착하면서 서울에 있는 요리학원에 등록하고 요리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경험한 후 혜진 씨는 컴퓨터학원에 다시 등록했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던 것입니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두고 온 고향 생각, 가족들 생각에 그리움이나 외로움에 빠지게 돼서 혜진 씨는 스스로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그날 배웠던 것을 다시 복습하고 공부하며 부지런히 컴퓨터 활용법을 배웠고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자격증도 딸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한 통신업체에 바로 취직이 됐는데 채용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입사했던 탈북민들이 잘 적응을 못 하고 일을 그만두는 일이 있었다며 회사 측에서 혜진 씨를 채용하는 데 있어 많은 우려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혜진 씨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은 후에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면접관들의 우려가 오히려 혜진 씨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네요. 일하는데 있어서는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마순희: 혜진 씨가 처음 입사한 통신업체는 위성방송 회사인데요. 전화로 고객 상담을 하는 일이 혜진 씨의 주 업무였습니다. 고객 대부분이 이용에 불편이 있거나 문제가 있을 때 전화를 하다 보니 험한 소리를 하는 고객들도 많았는데 혜진 씨의 말투 때문에 사기를 치는 게 아니냐는 고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업무에 익숙해질 때쯤에는 그 정도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1년 반 정도 위성방송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시청에서 자격증과 경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하여 춘천시청 정보통신과에서 근무하게 된 것입니다. 전 회사에서 했던 일과 비슷했기에 업무가 어렵지도 않았고 시청에서의 업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확하고 규칙적이기에 혜진 씨는 남는 시간도 그대로 흘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대학 4년 과정을 공부하고 학위취득이 가능한 사이버대학에 입학해서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공부에 열중했고 틈나는 대로 봉사단 활동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북한에선 주어진 삶대로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선택하는 나의 삶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사회복지학사 자격증을 비롯해 여러 자격증들을 취득했고 지금은 대학원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가하는데요. 어렸을 적에 북한에서 주어진 생활은 부모님을 잘 만난 덕에 행운처럼 차례진 것이었다면 지금의 삶은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생활이기에 새로 태어나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혜진 씨입니다.
김인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혜진 씨네요.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가 외로워서 아닐까요? 정착에 가장 필요한 게 든든한 가족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마순희: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지금의 남편이 혜진 씨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6년 동안 흉금을 터놓는 좋은 친구로 지내다가 1년 전에 결혼하여 가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은 그렇게 길게 연애를 하는 경우가 없는데 남남북녀의 만남이라 가능한가 봅니다. 6년이라는 긴 시간을 연애하며 서로를 알아간 덕분인지 혜진 씨 부부는 문화적 차이나 갈등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40대 끝자락에 이룬 가정에서 혜진 씨가 앞으로도 더 많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응원합니다.
김인선: 꿈은 꾸는 게 아니라 이루는 거래요. 꿈을 꾸기만 하면 잠만 잔다는 거죠. 혜진 씨처럼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원하는 삶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