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에게 자격증이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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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문가란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가란 씨는 한식, 중식, 일식 등 조리사 자격증부터 피부미용 자격증까지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한 분이셨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2002년에 한국에 입국한 문가란 씨는 북한에 두고 온 자식을 데려오려고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후 곧바로 식당 일부터 시작했고, 2년여 만인 2004년에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가란 씨는 당시 11살이었던 아들을 탈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우선으로 했고, 시간제로 식당 일을 했습니다. 대신 밤 시간을 이용해 직업훈련 과정의 폴리텍대학에서 조리학 공부를 하면서 한식, 중식, 양식 등 요리를 배우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관련된 일을 하면 아들의 뒷바라지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란 씨는 예약제로 운영되는 피부미용 분야에 관심을 돌렸고 피부미용사, 피부관리사 등 3개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자격증 취득 후 피부 관리실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런데도 가란 씨는 틈나는 대로 배울 수 있는 건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혔습니다. 2013년 탈북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통일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에서 현장취업을 위한 실습 중심 교육으로 커피 바리스타 양성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을 알게 된 가란 씨는 그 즉시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바리스타 양성교육을 받는 동안에 탈북민들에게 일정한 교육수당도 보장해 주고,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는 취업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의료비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4대 보험에 가입한 회사에 취업하면 일정 기간 급여 외에 연수수당을 지급해 준다고 하니 도전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다양한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바리스타가 탈북 여성들에게는 선망의 직업이라고 하던데 가란 씨도 그런 꿈이 있었던 건가요?

마순희: 처음엔 딱히 취업을 목표로 해서라기보다 한국인의 일상 생활에 없으면 안 되는 커피문화에 대해 배우고 익히면 생활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도전을 하게 됐다는데요. 다양한 혜택이 많은 만큼 교육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커피의 이름도 갖가지였고, 맛도 다양했고, 만드는 방법 역시 복잡했습니다. 게다가 처음 접하는 커피를 직접 만들면서 하나하나 맛도 봐야 했습니다. 생소한 분야이고 커피 맛을 보면서 커피의 종류를 익혀야 했기에 어려움은 더 컸습니다. 특히 탈북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가 영어인데요. 커피와 관련된 모든 용어가 다 영어잖아요. 가란 씨는 커피와 관련된 기본적인 내용조차 모르기 때문에 전부 외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커피바리스타였기에 가란 씨는 기술을 익히고 창업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노력 없이 잡을 수는 없다고 마음을 잡았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배움에 최선을 다했는데요. 원두의 종류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커피 맛을 구분해 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커피 맛을 익히기 위해 하루에 마신 커피 양만 해도 얼마일지 가늠이 안 간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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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선: 자격증 취득까지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셨을까요. 각성 효과가 있는 카페인 성분 때문에 커피를 많이 마시면 잠 못 주무시는 분들 많은데, 가란 씨도 고생 좀 하셨겠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가란 씨는 커피에 대해 정말로 모든 것을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의식적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맛을 익혀 왔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잠이 잘 오지 않는 불면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도 가란 씨는 억지로 잠을 청하기보다는 잠이 안 오면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는 것으로 이겨 나갔다고 하니 정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고요. 지금은 가란 씨도 커피를 즐기면서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하는데요. 처음엔 모든 커피가 쓰게만 느껴졌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시음과 훈련으로 추출방식에 따라, 원두에 따라 신맛과 단맛, 과일맛 등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의 성실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가란 씨는 2013년 11월부터 탈북민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통합을 돕는 남북하나재단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사실 다양한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바리스타로 활동하는데 자격증이 필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바리스타 공개채용이나 교육기관의 소개 등을 통해 호텔이나 서양식 식당(레스토랑), 커피전문점에 채용되려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유리하죠. 가란 씨가 자격증을 취득했기 때문에 바로 바리스타로 근무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자격증은 관련 분야의 이론과 실기 공부를 마쳤다는 증명서이기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취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실성과 전문성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가란 씨는 카페 운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요. 몇 가지 커피와 음료, 간단한 간식 정도 판매하는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무난히 해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주력으로 판매하는 커피는 상온의 생수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 오랜 시간 추출하는 더치 커피였습니다. 3시간 이상의 시간 동안 천천히 추출되고 장기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뽑아낸 커피에 물이나 우유 등을 첨가해서 손님들에게 제공하면 되는 거죠.

김인선: 첫 시작은 순탄했지만 수많은 대형 커피전문점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아무래도 그렇죠. 하지만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꽤 오래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가란 씨가 만든 더치커피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진행했고 커피열매 모양으로 만들어진 가뭇한 커피콩 빵도 만들어 손님들에게 선보이는데요. 카페를 다시 찾게 하는 일등공신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나재단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커피점에서 3-4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 원하면 카페 창업 지원도 받을 수 있었지만 가란 씨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11살 어린 아들은 어느덧 30살이 넘었는데요. 대학 졸업 후 교원이 됐습니다. 가란 씨는 코로나로 손님도 적어져서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던 시기도 있었고, 건강상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 신세도 잠깐 지었지만 카페를 운영하는데 손을 놓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얼마 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10년 세월 애착을 가지고 운영해 오던 커피전문점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올해 나이 60살, 가란 씨가 조금 빨리 정년퇴임을 하게 된 셈입니다. 지금은 건강 회복에 주력 중인데요. 수영을 즐기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가란 씨는 그동안 취득했던 자격증들 덕분에 봉사활동 현장에서 인기가 대단한데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현장에서는 전문 요리사로,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피부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미용상담가로, 봉사자들 사이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주는 바리스타로 변신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가란 씨는 새롭게 시작하는 봉사단의 지역 대표가 됐는데요. 주변의 탈북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지역공동체의 대표자로 거듭나려는 가란 씨의 새로운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김인선: 가란 씨는 자격증을 통해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것 같아요. 그녀의 삶을 통해 자격증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요.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부터 가져야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겠죠?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