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엄마, 톨게이트 직원 한수정 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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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톨게이트, 그러니까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수정 씨에 대한 이야기, 오늘 그 마지막 시간이네요. 수정 씨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건너간 중국에서 여느 탈북여성과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나마 수정 씨는 어차피 결혼을 해야한다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남자를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데요. 그렇게 선택한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입니다.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만났지만 수정 씨의 평생 인연이 된 거죠. 한국에 온 수정 씨는 6개월 후 남편과 11살 된 아들을 데려 왔다는데요. 사실 혼자 몸으로 정착하기도 벅차잖아요.

마순희: 그럼요. 벅차죠. 우리 탈북여성들 속에는 중국에서 함께 살던 남편이나 자식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갑절로 노력해야 한답니다. 남한 남자와 가정을 이룬 탈북여성과는 차원이 다르죠. 남편에게 한국생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혼자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조선족이나 같은 탈북민과 가정을 이룬 경우엔 남편과 자식까지 함께 정착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정 씨도 다니던 식당을 그만두고 남편의 취업을 걱정해야 했고 매일 아들의 학습지도에 전념하였습니다. 보통 탈북자녀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수정 씨는 아들을 일반학교에 보내게 됐습니다.

김인선: 수정 씨의 아들은 일반학교에 입학시킬 정도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나보군요?

마순희: 네. 아빠도 조선족이고 한족학교에 다니다 보니 한국말을 못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말이 더 편하긴 했답니다. 급한 경우엔 한국말 대신 중국말이 먼저 튀어나왔다는데요.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아들을 위해 수정 씨가 함께 공부했습니다. 한글자모표와 구구표를 벽에 붙여놓고 열심히 공부시켰다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수정 씨가 정규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아들의 형편을 말씀드리고 반에서 제일 공부도 잘 하고 심성도 착한 학생과 한 자리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다는 겁니다. 일반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탈북민 중엔 탈북자녀라는 것을 또 중국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숨기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수정 씨의 노력 덕분이겠죠? 아들도 학교생활을 너무도 잘 해주고 있고 남편 역시 직장을 갖게 됐다는데요. 두 사람의 안정된 모습을 본 후 수정 씨는 지금의 고속도로 요금소에 정식으로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그런데 수정 씨는 요금소 직원 외에 다른 수식어가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맞아요. 회사원 한 수정 외에 시인 한수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오늘의 행복이 크면 클수록 죽을 만큼 힘들었던 지난날을 잊을 수 없었기에 자신의 심정을 글로 적기 시작했답니다. 가장 행복한 날에도, 가장 어렵고 힘든 날에도, 그리고 북한에서 동생의 사망소식을 들은, 그런 가슴 아픈 소식을 들은 날에도 쓰고 또 썼고요. 그 글들이 제법 쌓이고 쌓여서 2년 전에 빛을 발했는데요. 시집 ‘달빛에 그린 고향’을 출간한 것입니다. 수정 씨는 시집의 첫 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섬 하나의 크기만한 그리움을 두고 온 나의 마음을 시에 담아 올려 봅니다.’

선생님에게 시집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가지고 나왔는데요. 한 편, 한 편의 시마다 두고 온 고향의 정든 산천과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한 수정 씨의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그대로 녹아 있답니다. 저도 시를 읽으면서 수정 씨의 심정이나 저의 심정이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더군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인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글은 쓰지만 수정 씨처럼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수정 씨의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인선: 찬찬히 수정 씨의 시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기억에 남는 한 구절 소개 좀 해주신다면요?

마순희: 네. 사랑하는 고향을 떠나던 그날의 심정을 담은 시 한 구절을 소개해 드릴게요.

떠나 온 그날 밤은

낙엽도 다 떨어져 진 늦가을 그 밤

바람도 혼자 놀다 깊이 잠든 새벽

조용히 문밖을 나서다

찬바람 맞으며 밤 밝히던 새벽달이

이별의 설움을 아는 듯

말없이 배웅하고 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이 길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삼키며 뒤돌아보니

꼭 닫힌 사립문,

창문사이로 눈물 맺힌 어린 동생

가냘픈 두 손 들어 손 저어 주는 듯

잘 가라 바래워 주는 이 없어도

언덕 밑 작은 시냇가

흐르는 물소리 정답게 들린다.

김인선: ‘밤 밝히던 새벽달이 이별의 설움을 아는 듯 말없이 배웅하고 있다’ 이 부분이 제 가슴에 울림을 주는데요. 표현력이 예사롭지 않은 한수정 씨예요. 이제부터 시인 한수정 씨라고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수정 씨의 두 번째 시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마순희: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수정 씨는 ‘달빛에 그린 고향’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이후에도 짬짬이 시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산행’, ‘친구’등 그 이후에 쓴 시들은 참여 문학이라는 잡지에 게시되기도 했다는데요. 앞으로 수정 씨는 한국에서의 행복한 정착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들을 계속 써 나갈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시를 쓰면서 본업에도 충실한 한수정 씨인데요. 보통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근무하는 경우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퇴사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탈북민에게 주는 고용지원금이 3년간 지급되기 때문인데요. 회사 측에선 새로운 탈북민과 계약을 하면 고용지원금을 또 받을 수 있지만 기존의 탈북민 직원과 계약연장을 하면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 없으니까요.

김인선: 고용지원금은 취업보호대상자를 채용하는 고용주에게 정부에서 지원하는 금액을 말하는데요. 탈북민을 채용했을 경우에만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3년의 계약기간만 채용을 하는 거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고용지원금 제도는 2014년경에 없어졌습니다. 대신 제도를 보완한 고용촉진 장려금제도가 있는데요. 탈북민 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취약계층인 고령자, 여성가장, 장애인, 청년실업자, 장기실업자 등이 해당됩니다. 이런 제도와 상관없이 요금소에서 일하는 탈북여성의 경우 자의로 계약연장을 안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 보니 다른 자격증 취득을 하거나 공부를 더 해서 좀 더 전문적인 일을 찾게 되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수정 씨는 금년까지 8년 차로 꾸준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예외가 될 만큼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거죠. 요금소에서 함께 일하는 탈북 후배들이 언어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기면 선배답게 큰 갈등으로 커지지 않도록 잘 이끌어 나가기도 하고요. 남편과 아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 유능한 회사원 선배로, 또 앞날이 창창한 신인 시인으로! 두 마리가 아닌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고 있는 당찬 한수정 씨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수정 씨의 이야기는 우리 탈북민들의 정착사례 모음집인 ‘공감’이라는 책자에도 실려 널리 소개되고 있답니다.

김인선: 수정 씨가 시를 쓰게 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한의 한 속담이 떠오르네요. ‘제 눈에 안경이다’라는 속담인데요.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도 제 마음에 들면 좋게 보인다는 뜻이거든요. 한국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이 모여 시집을 완성했다는 수정 씨의 말. 두고두고 기억하겠습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시인 엄마이자 고속도로 요금소 직원인 한수정 씨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함께 해준 마순희 선생과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