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올해로 남한생활 10년째 되는 37살 윤광남 씨에 대한 이야기 이어가 볼게요. 윤광남 씨는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보험설계사인데요. 미래의 안전장치를 소개하고 계약하는 일을 합니다. 쉽게 말해 다양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인데요. 광남 씨는 4년차 보험설계사로 이제는 팀원을 이끄는 팀장이 됐습니다. 2010년에 한국땅을 밟았던 윤광남 씨. 보험설계사를 하기 전 6년간의 한국생활은 어땠을까요?
마순희: 네. 여느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윤광남 씨 역시 보험설계사 일을 하기까지 여러 일들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광남 씨는 처음 남한생활의 초기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후에 다음날부터 일자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요. 건설현장에서 일당을 받으면서 일하기도 하고 식당에서도 일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다가 지인들의 소개로 톨게이트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톨게이트는 고속도로를 비롯한 유료 도로의 특정 지역에서 통행료를 징수하기 위해 설치한 요금소인데요. 여기서 광남 씨는 화물차 단속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 일이 좋았답니다. ‘나도 북한에서 왔지만 무엇인가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고 또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작업 자체가 매일 반복되는 단순 업무이다 보니까 장래를 위해서는 전문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교대제로 일하면서 남은 시간에 중장비학원에 등록하고 6개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광남 씨는 화물차 단속하는 업무를 한지 3년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사장이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더랍니다. 보통 사직서를 내면 바로 처리되잖아요? 하지만 광남 씨의 경우 회사 사장님의 거듭된 만류로 사직서를 세 번이나 제출하고 겨우 퇴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김인선: 회사 대표가 사직서를 내는 직원을 만류하는 일... 흔치 않죠. 3년 동안 광남 씨가 얼만큼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했는지 알겠네요.
마순희: 네, 업무에도 정통하고 회사생활에서도 항상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광남 씨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광남 씨는 보다 전문적인 일을 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에 계속 사직서를 썼습니다. 하도 사직서를 안 받아주니까 ‘나도 빨리 돈을 벌어서 집도 사고 장가도 가야 하니까 제가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을 축하해 주세요’하고 몇 번이고 사직서를 받아달라고 부탁하고서야 겨우 퇴직을 할 수 있었다는 윤광남 씨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사장님이 사직서를 받아 주면서 좋은 회사에 가서 발전하기 바란다고 격려해주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좋은 회사, 그러니까 광남 씨가 앞으로의 전망을 보고 선택한 회사가 지금의 보험회사네요.
마순희: 그렇죠. 광남 씨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험이라는 것을 알게 돼 가입하면서 지점장과 친분을 쌓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 지점장이 광남 씨를 보고 보험설계사 일을 권유하더랍니다. 광남 씨가 미래의 전망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기에 그는 주저없이 보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광남 씨가 보험설계사 일을 하기까지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보험일을 해보려고 찾아갔던 영업소에서 자기네 보험회사에서는 탈북자는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다고 물러 설 광남 씨가 아니었습니다. 일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왜 탈북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인지 이유라도 알고 싶다면서 직접 지점장을 만나야겠다고 사무실에 찾아 갔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하는 말이 서울 쪽에서 탈북자들의 보험사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보험회사라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을까봐 탈북민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랍니다. 광남 씨가 보험회사에 취직하려던 무렵 서울에서 탈북민 보험설계사의 보험사기가 들통 나서 큰 파장을 일으킨 사실이 있었거든요.
김인선: ‘보험사기’는 보험업계의 골칫거리죠. ‘보험사기’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중대 범죄예요. 아픈 척, 다친 척 하는 갖가지 수법의 보험사기가 넘쳐 나지만 2013년, 탈북민 보험설계사를 중심으로 탈북민들이 모여 허위 보험금을 탄 사건은 보험업계를 아연실색하게 한 사건이었어요.
마순희: 네. 부끄럽게도 그런 일이 있었죠. 보험은 일종의 안전장치로 매달 일정금액을 내고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이잖아요. 아픈 곳을 확인하고, 증명서인 진단서를 병원에서 받아오면 보험금을 지급받게 되는데 당시 하루에 받는 보험금이 최대 267달러(30만원), 한 달에 8,900달러(천만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탈북민들이 가짜 진단서를 이용해 보험금을 챙긴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보험회사마다 그런 이유로 더 이상 탈북민 보험설계사를 배출하지 않으려고 한 거죠. 하지만 광남 씨는 ‘한국사람도 사기치고 범죄도 저지르지만 그렇다고 한국사람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탈북자 한두 사람이 사기를 쳤다고 해서 모든 탈북민이 다 사기를 친다는 것은 아니지 않냐, 함께 일해 보지도 않고 속단부터 하지 마시고 자신을 고용해서 지내보고나서 평가를 하라’ 하고 말했대요.
김인선: 진짜 당차게 말 잘했네요. 사실 탈북민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일이 가끔 생기죠. 예를 들어, 비리 경찰에 대한 사건이 터지면 경찰에 대한 인식이 전체적으로 나빠지는 것처럼요.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들을 통해 나쁜 인식은 줄기 마련입니다.
마순희: 맞습니다. 회사의 상사들도 지금은 농담 삼아 ‘그때 저 사람을 받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냐’ 하면서 함께 웃기도 한다는 광남 씨의 말에 이젠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구나 싶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성실과 근면, 노력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한 겁니다. 광남 씨의 열정적이고 진심어린 모습이 전해지면서 회사에서 드디어 취업을 승인했지만 그것은 작은 시작일 뿐 설계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시험을 봐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습니다. ‘보험설계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맞는 수입과 지출, 그리고 특성을 고려해서 그에 적합한 보험상품을 추천하고 판매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최근에는 전문적인 금융 지식도 겸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격증 시험도 쉽지 않답니다. 더욱이 우리 탈북민들은 보험이라는 것을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어도 낯설고 보장 내용도 전혀 들어보지도 못하던 내용들이 많아서 이해하기도 힘들어요. 전반적인 보험이나 금융지식까지는 몰라도 내가 가입한 보험의 내용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광남 씨 역시 처음 접하는 단어들은 하나하나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봐 가면서 밤을 새워 공부했답니다. 역시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그 어렵다는 보험설계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당당하게 회사에 출근하게 된 거죠.
김인선: 남한의 경우, 보험설계사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이 한해 평균 20만 명이라고 해요. 지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시험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광남 씨는 당당히 합격을 하셨네요.
마순희: 네. 시험 합격은 기본이고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한 광남 씨는 열심히 근무하면서 한 지점에 한 명만 뽑힌다는 보험왕 칭호를 3년 만에 받게 되고 지금은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유능한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 헌신이 깃들어 있겠어요. ‘보험왕’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보험, 자동차보험, 일반보험, 손해율, 유지율 등등 여러 가지 항목에서 실적이 월등히 좋아야 한답니다. 평균적으로 보험설계사로 10년 이상 일한 사람이 ‘보험왕’이 되는데 광남 씨의 경우 3년 만이니까 아주 단기간에 왕좌에 오른 거죠.
김인선: 탈북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또 광남 씨의 어떤 노력이 있었기에 보험설계사들의 꿈인 ‘보험왕’이 됐을까... 그것도 3년 만에 말이죠.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순희 선생과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