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경상남도 경산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37살 윤광남 씨에 대한 이야기, 오늘 그 마지막 시간인데요. 광남 씨는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나온 후 건설현장 일용직, 고속도로 과적단속, 농장일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고요. 그러다 만일의 사건, 사고에 대비해 저축하는 보험이라는 것을 알게 돼 가입하면서 보험회사 지점장과 친분을 쌓게 됐는데 그분이 광남 씨에게 보험설계사 일을 권유했다고 하네요. 2015년부터 보험설계사로 일을 하게 된 윤광남 씨는 3년 만에 보험설계사라면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보험왕’이 됐고 지금은 경상도 지역본부의 지점에서 팀장을 맡아 일하고 있는데요.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탈북민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우리새싹회’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우리새싹회 회장으로서 봉사회를 잘 이끌어 나가려고 하니 회사 일을 하면서 늘 시간이 부족했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거죠. 그래서 광남 씨는 교대제로 돌아가는 회사보다 좀 더 시간적 여유도 있고 급여도 더 좋은 회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보험회사였던 겁니다.
김인선: 봉사를 좀 더 많이, 더 잘 하기 위해서 하는 일과 회사를 바꿨다는 말인데요. 봉사단체에 그렇게 마음을 쓰는 남모를 사연이라도 있나요?
마순희: 사연이라기 보다 아픔이라고 할까요? 광남 씨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정착을 시작했지만 유독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금방 나온 탈북민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았던 시기였답니다. 경산시에도 탈북민들이 적잖게 있다고 하는데 주변에 새로 정착하는 사람들을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는 게 그렇게 섭섭했었나봐요. 그러면서 이제부터 자신이 정착하면서부터는 경산시에 배치받은 탈북민들 중 어느 누구도 첫날 밤을 외롭게 혼자 보내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광남 씨는 새로 오는 탈북민들이 있으면 저녁시간에라도 꼭 찾아가서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는데요. 만나서 고향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기도 하고 직장생활하면서 느꼈던 정보나 어려움들도 서로 나눌 수 있기에 만나면 반가운 거죠.
그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후배들을 위해 함께 동참하게 되면서 하나, 둘 대열이 늘어났다고 해요. 그렇게 모임을 가지면서 지내다가 광남 씨는 같이 모이는 탈북민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복지관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자원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는데요. 복지관도 탈북민들의 자원봉사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고 함께 모인 탈북민들도 좋은 생각이라고 응원해주었기에 ‘우리새싹회’라는 탈북민 봉사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죠. 처음에는 복지관에서 탈북민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것으로 소박하게 시작했는데요. 2012년 12월에 정식으로 ‘우리새싹회’라는 탈북민 봉사단 발대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김인선: 발대식을 통해 봉사단 창설을 알릴 정도면 회원수가 꽤 되겠는데요?
마순희: 그렇죠. 작게는 2~3명으로 시작하는 단체도 있는데 ‘우리새싹회’는 창설하면서 50명의 회원이 모였으니까요. 주된 업무는 금방 나온 탈북민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인데요. 남한에 처음 정착한 탈북민들은 아무 것도 없는 빈집에서 시작해야 하거든요. 여름에는 냉장고가 없고, 겨울에는 물을 끓여먹을 주전자가 없어요. 이러한 것을 ‘우리새싹회’ 봉사단이 해결해주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이 9달러(1만원)의 회비를 부담하면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정착 초기의 탈북민과 함께 재래시장이나 일용품들을 싸게 살 수 있는 상점에 직접 방문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원하는 것으로 고르게 했습니다. 180달러(20만원) 정도의 금액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사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선택하는 거죠. 이밖에도 ‘우리새싹회’ 봉사단은 탈북민들의 결혼식과 돌잔치, 병문안을 하는 일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제가 광남 씨를 만나러 경산으로 내려 간 날에도 광남 씨는 퇴근 후에 노인복지시설 봉사활동으로 집에 없었습니다.
김인선: 일하랴, 봉사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만 지내느라 연애할 시간은 있나 몰라요.
마순희: 연애가 아니라 결혼도 했는걸요. 광남 씨의 결혼도 ‘우리새싹회’와 관련이 있더라고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친구를 사귀게 됐는데 그 친구는 윤광남 씨의 첫 보험에 든 고객이자 자신의 여동생을 광남 씨에게 소개까지 해줬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여동생은 지금 광남 씨의 부인인데요. 두 사람 사이엔 두 돌 된 아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통화를 했더니 올 8월에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라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김인선: 일도 사랑도, 사람도, 그리고 가정도.... 윤광남 씨는 모든 걸 다 갖췄네요. 앞서 중국에 남겨두고 오게 된 여동생만 함께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어요.
마순희: 아차! 광남 씨 여동생 얘기를 미처 전하지 못했는데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길을 다 함께 떠날 수 없어서 누이동생은 두고 광남 씨와 어머니만 먼저 2010년도에 한국에 왔었는데요. 목숨을 건 여정을 거쳐서 한국에 정착한 후에 곧바로 누이동생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누이동생은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누이와 어머니가 광남 씨 집 가까이 살고 있어서 자주 집에 놀러 오기도 하며 여느 가정처럼 화목하게 살고 있답니다. 가족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에 광남 씨는 무엇이든 자신감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고 하는 일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하는데요. 중국에서 여동생을 데려왔을 때에도, ‘우리새싹회’ 봉사단체를 지역 기관에 소개하고 연결해 줄 때에도 그랬다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윤광남 씨였습니다.
김인선: 광남 씨는 하고자 하는 일, 목표로 삼은 일은 기필코 해내고 마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보통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우더라고요.
마순희: 네, 정말 그렇더라고요. 통일이 되면 북녘 고향에 1호 보험사 지점을 세우고 고향사람들이 보험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지금 하고 있는 ‘우리새싹회’ 활동을 통해서 봉사단을 확장시키고 더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윤광남 씨는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잘 정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탈북민에게 조언을 한다면 탈북민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라는 것과 최소한 6개월 정도는 이 사회를 알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배우고 익힌 후 제대로 된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를 알아보고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거죠.
김인선: 하지만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조급한 마음에 어디라도 우선 취업부터 하려고 하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급하게 일자리를 구하면 며칠 하다가 혹은 몇 개월 일하다가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로임이 적어서, 대우가 부당해서 등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만 맞는 일자리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남 씨는 입버릇처럼 ‘처음에는 돌아다니면서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아무것도 모르고 직장에 가면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니까 학원에도 다니고 부업도 해보면서 사회를 경험해야 한다고, 경험이 없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서 며칠 후 그만 둘 바에는 단기적으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광남 씨는 보험설계사 일도 열심히 하고 ‘우리새싹회’ 회장으로 지역사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봉사도 앞장서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는데요. 8월에 태어날 둘째의 순산 소식과 함께 광남 씨의 온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북녘 고향에 1호 보험사 지점을 세우겠다는 그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인선: 그 꿈이 이루어져서 윤광남 씨의 고객이 북쪽에도 생겼으면 좋겠네요.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사람의 마음까지 얻은 보험설계사, 윤광남 씨를 통해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도 오늘 하루,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과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